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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독자들의 되새김질을 위한 영화, '상실의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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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영화화됐다. 영화 ‘상실의 시대’는 원제 ‘노르웨이 숲’ 대신 한국에서 소개됐던 ‘상실의 시대’라는 책 제목 그대로 영화관에 올랐다. 책이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으니 좀 더 인지도 있는 제목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여러모로 이로웠을 것이다. 영화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아니라 감독 트란 안 훙의 ‘상실의 시대’다. 여느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그렇듯 ‘상실의 시대’ 또한 여러 팬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지만 모두가 걱정하는 그런 영화였다.
영화의 주인공 와타나베는 단짝 친구 키즈키와 그의 여자친구 나오코와 어울리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어느 날 키즈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는 충격을 받고 대학 진학과 함께 도쿄로 떠난다. 대학생이 된 와타나베는 우연히 나오코와 재회하게 된다. 나오코와 점점 가까워지고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나오코의 20번째 생일사건 이후 연락이 뜸해지면서 그는 ‘미도리’라는 새로운 여자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키즈키의 죽음으로 정신병에 걸린 나오코가 병이 더 심해졌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책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수많은 일화와 깨달음의 읊조림을 통해 20대의 사랑과 방황 그리고 상실을 전한다. 영화는 무리하지 않았다. 책이 건네는 큰 줄기만을 느낄 수 있도록 잔가지를 흔들림 없이 잘 쳐냈다. 감독은 균형을 잘 잡고 있다. 특별히 애착이 가고 좋아하는 장면보다는 커다란 줄기를 어지럽게 하지 않는 뼈대의 이야기들만을 담아냈다. 대표적으로 레이코의 사연은 연출가라면 무척 욕심이 나는 네러티브를 가졌지만 레이코는 특정한 캐릭터라기보다는 나오코의 조력자로만 그려질 뿐이다. 미도리의 사연도 꽤 단순화된 형태로 나타났고 나가사와도 마찬가지다. 감독의 이러한 영화적 선택들은 영화가 가진 시간과 표현의 한계를 인정한 적절한 타협점이었다.
많은 가지가 쳐진 다소 단순화된 네러티브는 일본영화 특유의 잔잔한 전개방식으로 진행됐다. 키즈키의 죽음도 그를 받아들이는 와타나베의 모습도 모두 덤덤하고 잔잔하다. ‘응, 물론이야.’ 영화 속에서 수십 번은 나온 와타나베의 이 대사는 그의 착한 캐릭터를 보여줌과 동시에 영화 자체의 흐름을 대변하는 대사이기도 했다. 영화는 그 어떤 사건 사고도 격렬하거나 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가 어떠한 부탁에도 ‘응, 물론이야.’라고 말하듯 영화도 그렇게 모든 것이 괜찮은 듯 흘러가고 있다.
절제된 잔잔한 흐름. 그 속에서 ‘상실’이 가져다주는 깊은 상처와 방황의 흔적을 관객들이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깊은 심연의 고통과 공허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 이런 식의 군더더기 없는 접근 방식은 독자였던 관객들에게는 큰 줄기를 놓치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들이 내뱉는 절제된 대사 속에 숨겨진 내용을 다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와타나베는 착한 척하는 우유부단한 바람둥이일 뿐이다. 나오코의 병적인 괴로움이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음에 공감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더군다나 너무나도 설명 되지 않은 레이코나 나가사와 같은 캐릭터는 의문 덩어리다. 실제로 책 속에서 와타나베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인데 그들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단순화돼 그들이 무엇을 위해 영화 속에 존재하는지 그 당위성을 설명할 수 없다. 허울뿐인 캐릭터들의 맥락 없는 행동들은 사실 깊은 맥락을 가진 뿌리 깊은 공허의 손길이었다. 와타나베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영화처럼 수동적인 인간이 아니다. 그는 많은 고민과 생각을 갖고 이 상실의 시대를 묵묵히 견뎌내던 주체적인 청춘이다. 영화는 영화적 선택으로 몇몇 캐릭터를 죽인 것이다.
책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보증된 이야기를 그려내기 때문에 쉬워 보이지만 사실 다른 작품보다 위험부담이 크다. 원작보다 뛰어난 작품이 나온다는 것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시간적, 공간적 한계들 때문에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영화 ‘상실의 시대’는 책을 읽은 독자에게는 젊음과 청춘의 시간들 속에서 그들이 겪었던 사랑과 상실을 다시금 되새김질 할 수 있는 즐거운 기회를 제공한다. 상상 속 이미지들은 무리 없이 잘 그려졌다. 하지만 책 ‘상실의 시대’의 유명세에 휩쓸려 그 두꺼운 책을 두 시간여 상영되는 영화로 대신하고자 마음먹은 사람이 있다면 삼가는 것이 좋다. 책을 읽지 않은 관객들은 영화가 원작의 모든 것을 담아냈을 거라 믿으며 책 자체에 실망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는 영화 속 와타나베처럼 시종일관 이야기하고 있다. ‘응, 물론이야. 영화가 책을 다 담아낼 수는 없어’라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책을 읽은 독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 김아름(심리‧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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