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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본견문록] ‘지진 이야기’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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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13  18:5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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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 ‘지진’

“아무 경고도 없이 서 있는 곳이 구토를 느낄 것 같은 롤러코스터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가장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소리••••••.”
땅이 50cm 가량 솟구치며 옆으로 1m를 움직였던 진도 7.2의 청천벽력(靑天霹靂). 20초에 불과했지만, 6000명 이상이 죽어간 지난 1995년의 고베(神戶) 지진 당시, 어느 생존자가 남긴 체험담이다.
진도 1도짜리까지 포함하면 1년에 무려 1500여 번의 지진이 일어나는 나라. 예로부터 ‘벼락,’ ‘화재,’ ‘아버지’와 함께 가장 두려운 대상으로 꼽혀 왔으며, 꿈속에서조차 잊고 살기가 불가능했던 나라. 그래서일까? 후지(富士)산을 안내해주던 일본인 지인(知人)은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이 ‘지진’이라고 서슴없이 말해 주었다.

사실, 일본인의 독특함을 이해하려면 그네들의 역사 못지 않게 그네들의 자연도 살펴봐야 한다. 험한 지형을 누비던 고구려인과 평야 민족, 백제인의 기질이 상이(相異)했고, 북한인과 남한인, 호남인과 영남인의 성향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일본에 살면 지진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바쁜 나날 속에 잊고 지내지만 책상과 마루, 침대와 천장이 덜덜 흔들리는 경험이 되풀이 되다 보면 어느새 지진에 대한 불안은 머릿속 깊숙이 자리잡게 된다. 이에 관한 필자의 경험담. 어느 날. 식탁에서 저녁을 먼저 먹고 있는데 마루가 양탄자를 위아래로 흔드는 것처럼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침, 부엌에서 있던 아내는 아이들이 뛰노는 줄 알고 뛰지 말라고 소리치다 사태를 파악하고는 금새 파랗게 질려버렸다. 그로부터 몇 주 뒤. 학교에 출근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초음속 비행기가 학교 상공을 지나가는 듯한 굉음을 느꼈다. 지진임을 직감하며 ‘다음 지진이 오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가운데 몇 초간 별별 생각을 다 떠올렸다. ‘아이들은 내진(耐震) 설계가 잘 된 학교에 있을 테니 괜찮을 테고, 집사람이 집에 있다면 15층짜리 건물이라 위험한데, 차라리 밖에 나와 있다면.’ 하지만 후에 들은 얘기로 건물 밖에 있어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란다. 큰 지진이면 건물의 유리창이 다 깨져 유리조각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가운데 빌딩들이 길가를 덮치기에.

좁고 기둥 많은 나무집은 필연적인 생존 조건

그래서일까? 한국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일본의 ‘만숀’(맨션의 일본식 발음)은 우리네의 주거지와 그 모양새 및 구조가 판이하게 다르다. 우선, 성냥갑처럼 폭이 좁으며 옆으로 긴 한국의 아파트와 달리, 일본의 만숀들은 정사각형이나 기역자 형태로 건물을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크기가 조금 높다 싶은 만숀들은 많은 경우, 위로 올라갈수록 피라미드 모양으로 층 면적을 줄임으로써 항진(耐震)효과를 높이고 있다.
지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기둥과 벽을 많이 세우다 보니 주거 공간이 좁아지는 것도 다른 특징으로 거론할 수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만숀도 현관에서부터 기역자 형태로 만들어진 좁은 통로를 지나야 마루와 안방으로 닿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그래서일까? 넓고 기둥 없는 텅 빈 공간에 들어서는 일본인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실제로, 지진이 발생할 경우, 건물 안의 사람들이 대피 장소로 제일 먼저 찾는 곳은 로비나 복도가 아닌 화장실이라고 한다. 장소는 좁고 기둥과 칸막이가 많으니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란다. 그런 일본인들이기에 한국에 와서 우리의 아파트 모양새와 집 크기 및 구조를 들여다보며 대경실색(大驚失色)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지진으로부터 살아남으려는 일본인들의 생존본능은 예로부터 목재 사용으로 귀결돼 왔다. 바위와 흙, 벽돌과 시멘트보다 나무가 외부 충격에 훨씬 강한 까닭에서다. 아직도 도쿄 시내 곳곳에는 언제 지었는지 짐작하기조차 하기 힘든 목조 건물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문제는 나무로 지어진 집들이 지진에만 강할 뿐, 냉방은 물론, 소음과 내구성 등에서 무척 취약하다는 것. 방바닥에 다다미를 깔았기에 온돌을 들여놓을 수가 없으니 겨울이면 집 전체가 냉장고로 변하는 데다, 발걸음을 내디디면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세계 최악의 주거 환경은 그렇게 수천 년 동안 일본인들의 보금자리이자 피난처로 자리잡아 왔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지진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나무가 곧잘 화재를 불러들인다는 것. 평지가 적은 일본에서 좁게 지어진 나무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운데, 한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도시 전체가 화마(火魔)를 입는 비극을 일본 역사는 숱하게 증언하고 있다.

80년, 100년, 120년, 150년 등 온갖 주기설에 시달려

그런 땅에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비극을 잘 표현한 만화가 「드래곤 헤드」다. 지난 1994년부터 2000년까지 고단샤(講談社)의 주간지 <영매거진>에 연재된 만화에서는 지진과 화산 폭발로 종말을 맞은 열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좀비’처럼 변해버린 군상(群像)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문명과 야만은 재난 하나에서부터 갈라진다는 점에서 윌리엄 골딩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 「파리대왕」(1983)을 연상시키는 「드래곤 헤드」는, 무정부의 혼돈 상태에 놓인 인간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미쳐버릴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파리대왕」에 등장하는 영국 소년들은 ‘현실적 가상’에 불과하지만, 「드래곤 헤드」에 등장하는 일본인들은 ‘가상적 현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던 지난 1923년의 간토(關東) 대지진 당시, 흉흉해진 민심 속에 무려 6000 명에 달하는 한국인들이 학살당했다. 우물에 독을 풀어 일본인들을 죽이려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흥분한 일본인들은 한국 동포들을 거리로 끌고 나와 죽창 등으로 찔려 죽였다. 이러한 혼란상을 틈타 일본 군부(軍部) 역시,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등 눈에 가시 같던 일본인들을 수천 명씩 살해했고.

그런 일본인들의 지진 공포가 2000년대 들어, 다시 고조되고 있다. 80년, 100년, 150년, 200년 등 온갖 주기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리히터 규모 8.0의 ‘도카이(東海) 대지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풍문 때문이다. ‘도카이’란 도쿄만 주위의 바다를 지칭하는 것으로, 시코쿠(四國) 앞바다인 남해나 및 미에(三重) 및 아이치(愛知) 현 앞바다인 동남해와 달리, 시즈오카(靜岡) 및 가나가와(神奈川) 현 앞바다에서 발생하는 지진을 의미하는 것. 역사적으로 볼 때, 1709년의 겐로쿠 대지진(진도 8.1) 이후, 1923년에 다시 간토 대지진(진도 7.9)가 발생하면서 ‘도카이 지진’은 일본인들에게 종말에 가까운 대재앙을 의미해 왔다. 결국, 일본 정부는 지난 2004년, 정부 산하의 지진조사위원회를 통해 향후 30년 간 간토 대지진과 같은 리히터 규모 8의 지진이 일어날 확률은 0~0.8퍼센트에 불과하다고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대지진이 다시 발생하면 어쩌죠?”
“그냥 죽는 거죠, 뭐.”

대대손손 최악의 지진대에서 살얼음을 걷듯 살아 온 일본인들은 오늘도 동네 신사(神社)에 들러 하루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일상을 전개해 나간다. 

/심훈 (언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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