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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유가 없는 곳에 바르지 못한 일이 있을 수 없다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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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13  18: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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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의 아버지’ 장 자크 루소 (Jean Jacques Rousseau). <사회계약론>은 루소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계약론>의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문명의 진보가 부와 권력 그리고 사회적 특권의 인위적인 불평등을 초래함으로써 인간의 본원적 행복과 자유를 어떻게 타락시켰는가를 증명하지만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제정한 법과 제도 또한 이러한 불평등을 영속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한 책이다. 무엇보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루소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은 사치 때문이 아니라 불평등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본래 평등했던 인간이 어떻게 불평등의 길로 들어섰는가를 체계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나는 문명의 삶과 자연의 삶 중에서 어느 것이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이 되는지를 묻고 싶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기 삶을 한탄하는 사람들 밖에 찾아볼 수 없으며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자기 삶을 포기하려고까지 한다. (중략) 나는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미개인이 일찍이 삶을 한탄하여 자살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 (중략) 소유가 없는 곳에 바르지 못한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루소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가장 주목했던 문제는 ‘소유’다. 문명의 삶이든 혹은 자연의 삶이든 삶의 방식 그 자체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핵심은 소유의 방식에서 우리가 실제로 소유하려 하는 것이 무엇인가이다. 일단 문명의 삶 자체를 등한시 하는 루소의 태도에는 공감할 수 없었으나 “소유가 없는 곳에 바르지 못한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는 그의 말에는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 소유하기를 갈망하기에 혹시 내게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려 하지는 않는지, 방법이 잘못 되어 다른 사람의 것을 옳지 못한 방법으로 얻으려 하지 않았는지 성찰해야 한다. 더불어 허영심, 질투, 시기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람들이 다 가져야 하니까 나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살다보면 공정하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력은 내가 더 많이 한 것 같은데 결과는 별로 열심히 하지 않은 친구가 더 잘 나오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해서 외모, 재능, 실력 등까지 다른 사람과 ‘똑같은’, ‘공평한’ 것은 어느 것 하나도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루소에 따르면 사람 간의 격차를 가장 크게 만드는, 다시 말해 인간관계를 가장 불공평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돈이다. 돈 혹은 재물을 기준으로 사람들은 계층을 나누었고 각자 하는 일이 달라졌으며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한 쪽은 군림하고 한 쪽은 그 밑에서 신음해야 했다.

한편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인간은 왜 불평등한가뿐만 아니라 불평등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자연 상태의 미개인은 평등했다. 남의 눈을 신경 쓰지도 않았고, 구태여 남을 이길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내 개인적인 욕구만 채우면서 살면 될 뿐 다른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만일 다른 사람, 주위 환경이 자기 자신에 조금 맞지 않는다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살면 그만이다. 그들은 착할 필요도, 사악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미개인들이 동굴 속 안락함을 알게 되면서 그 속에서 작은 사회가 형성되고, 남을 신경 쓰게 된다. 이 속에서 사회의 발전, 사고의 발전, 기술의 발전이 생겨나면서 농사를 짓게 됐고 재산이 생겨나자 많이 가진 사람, 조금 가진 사람으로 나뉘게 됐다. 언어가 발달하게 되면서 뛰어난 웅변술을 가진 사람이 리더 (예: 소피스트)가 됐고 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부유층 계급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부유층들은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공정한 수단이 필요했고 이를 ‘국가와 법’으로 제정하면서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할 수 있게 됐다. 더불어 가지지 못한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본인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므로 그 속에 예속되어 복종할 수밖에 없게 된다. 루소는 이런 상태는 전제군주제 속에서 정점을 찍게 되며, 이후에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의 자연 상태는 앞서 제시한 모습이 아니라 타락한 상태다. 자연 상태에서는 누구나 속박에서 전적으로 자유롭다. 이 때 정부의 계약은 전제군주제에 의해 너무 많이 파기되어 있으므로 사람들이 전제군주를 몰아내려 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폭력에는 전혀 항의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혁명의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실제로 루소의 이 논리는 프랑스 혁명 발발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고, 때문에 사람들이 루소를 ‘프랑스 혁명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다.

루소의 주장과는 달리 사람마다 특성과 환경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므로 완전한 평등은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아낌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는 루소가 제시한 연민과도 부합한다. 루소는 인간은 동포의 괴로움을 보고 싶지 않다는 선천적인 감정에서 자기 행복에 대한 욕구를 완화하게 된다. 연민은 인간의 반성하는 모든 습관에 앞서는 것이므로 더욱 보편적이고 인간에게 유익한 미덕이며 대단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많이 벌면 세금을 더 많이 내야하고, 돈을 벌 능력이 없어지면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경제적 평등에서 시작해서 정치적, 종교적 평등까지 보장 되어야 한다. 불평등한 사람이 모여 모두가 골고루 혜택을 받는 것이 루소가 말한 평등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 오세현(정치행정ㆍ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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