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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견문록] “태양의 제국? 태풍의 제국!”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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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13  19: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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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멈추어다오”

1980년대 말은 전국을 열풍(熱風)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가수, ‘이지연’의 전성시대였다.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로 혜성같이 등장해 빼어난 미모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브라운관을 점령한 그녀는 당시, 모든 한국 남성들의 우상(偶像)이자 여신(女神)이었다. 그런 그녀가 무명의 기타리스트와 결혼하며 우리 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선사했던 노래가 ‘바람아 멈추어다오’였다.

이야기가 다소 길어졌다. 가수 이지연으로 글머리를 연 이유는 이번 호 주제가 바람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의 왼쪽 끝자락에 위치한 데다 계절풍인 몬순 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온갖 바람이 건드리고 지나가는 나라가 일본이다. 사시사철은 물론, 밤낮도 가리지 않고 불어 닥치기에 열도(列島)의 진정한 패자(覇者)는 “태양이 아닌 바람”이라는 것이 필자의 B급 견해이기도 하고. 오죽 바람이 많았으면 바람을 부르는 이름만도 계절에 따라 50여 가지가 넘으며, 지역에 따라서는 그 명칭이 무려 2,000개에 달할까? 그러고 보니, 건물 사이에서 부는 바람조차 ‘비루카제’(‘비루’란 빌딩을, ‘카제’란 바람을 일컫는 일본어임)란 이름을 지니고 있다. 해서, 날씨를 통해 바람을 예측하는 구전(口傳)도 예로부터 부지기수였다. 예를 들어, “아침 해가 옅은 청색이면 큰 바람이 일고, 노란 색을 띠면 폭풍우가 오며, 일출(日出)에 노란 구름이 걸치면 북풍(北風)이 강하게 온다”는 식으로.

외세 침략에서 일본 지켜준 고마운 바람

사실, 일본에 바람이 많다는 것은 전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조선 초, 수 차례의 방문을 통해 누구보다 일본 사정에 정통했던 신숙주는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마침 일본 국왕에게 통신사를 보내려 하였으나 비바람이 심하고 먼 곳이어서 일본에서 사신으로 온 여러 추장들 중에서 사신을 삼고자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화 배경도 실은 일본을 상징하는 무대장치에 속한다. 우리에게는 ‘미래소년 코난’과 ‘이웃집 토토로’로 더욱 잘 알려진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작품인 영화에서는 풍력(風力)을 에너지원으로 평화롭게 살아가던 바람 계곡 주민들의 투쟁기를 그리고 있다.

전세계 누적판매부수 2억1천만 부(2001년 기준)라는 경이적인 기록의 일본 만화, ‘도라에몽’(후지코 후지오 작) 역시,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통해 열도 특산물인 바람에 대한 에피소드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2003년 일본에서 상영된 ‘노비타와 이상한 풍술사’가 그것으로 영화에서는 ‘태풍의 아이’라는 바람 캐릭터가 등장해 주인공 일행을 바람족 마을로 인도한다. 물론, 여기에서도 악역은 우주를 점령하려는 폭풍족이 맡는다. 그런 애니메이션에서는 손바람에서부터 회오리바람은 물론, 폭풍과 태풍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바람들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돌이켜 보면, 지리적으로 비바람이 심할 수밖에 없었던 일본은 그 명(明)과 암(暗)을 동시해 맞봐야만 했다. 밝은 면을 거론하자면, 거친 비바람 속에 외세(外勢)가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기에 독창적인 문화 발전이 지속 가능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어느 학자에 따르면, 한반도는 유사 이래 1000번 이상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는데,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외세의 침입을 받은 적이 없었다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때문에, 인류 역사상 최강국이었던 몽고가 두 차례에 걸쳐 고려 연합군과 열도 침공을 시도했을 때에도 풍전등화(風前燈火) 속의 일본을 지켜준 것은 훗날 ‘신의 바람’(神風-카미카제)으로 명명된 태풍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기울어가는 전세를 뒤집기 위해 카미카제 특공대를 편성해 미 항공모함의 사령탑에 달려들던 제로기들도 ‘신의 바람’을 다시 한번 일으켜 보겠다는 군국주의자들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온갖 재난 몰고 와 주민들의 단결 요구

하지만, 어두운 면을 들여다 보자면 이웃 국가들로부터 잊혀진 채, 철저하게 ‘나 홀로’ 섬에 남게 했던 원인 제공자 역시,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바람이었다. 이러한 자연 환경이 섬나라인 일본을 더욱 독특하게 진화시키는 데 한몫 했음은 물론이다. 일본을 주변국들로부터 떼어 놓았던 신풍(神風)은 또, 두고두고 후손들의 희생을 야기하며 오늘날까지 열도에서의 삶을 고단하게 하고 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조사해 보니, 한 해에 동남아시아의 태평양 상공에서 발생하는 태풍 수는 평균 27개 정도. 이 가운데 3개 정도가 일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본토 인근(300km 이내)까지 접근해 오는 태풍을 포함할 경우에는 매년 11개 정도의 태풍이 일본을 지난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름엔 사흘에 한 번 정도 큰 바람이 불어 닥치곤 한다. 수시로 찾아오는 바람은 또, 하늘의 상황도 시시각각 바꿔놓는다. 아침에는 화창했던 하늘이 점심엔 돌연 시커메지면서, 저녁에 천둥 번개가 쳐도 이상하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 바람에 자주 고뿔이 들어서였을까? 일본에서는 “감기에 걸렸다”라는 말을 “바람에게 덜미를 잡혔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감기를 일으킨 바람이 신풍(神風)과 같을 수는 없어 사악한 바람(邪風)으로 표기될 따름이다. 열도를 괴롭히는 바람은 비와 만나 ‘비바람’(아메카제)이 될 경우, ‘고생’과 ‘가난’을 의미하는 단어로 통용되기도 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런 거센 바람이 비와 함께 태풍으로 들이닥치며 산사태와 홍수, 전염병과 이재민 등 온갖 재해를 동반해 왔다는 점. 그러니 수천 년 동안 반복돼 온 자연의 위력 앞에 섬나라 사람들은 직수굿하게 엎드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더불어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 협동을 통한 재해복구는 지속적인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었을 터.

해서, 생사가 걸린 상황을 자주 맞닥뜨려야 했던 입장에서 마을에 도움이 안 되는 주민은 예로부터 ‘이지메’와 ‘무라하치부’(마을의 공동 작업에 태만한 자 등에게 가해진 집단 응징. 수해가 발생해도 일절 거들어주지 않았음)라는 따돌림으로 다스려온 것이 일본의 슬픈 역사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거센 바람은 또, 애니미즘과 결부된 일본인들의 신토(神道) 사상을 종교로 승화시키는 역할마저 톡톡히 해낸다. 지금도 5월 5일 어린이날이면 어김없이 잉어 모양의 깃발을 만들어 사내 아이들의 건강을 비는 ‘코이노보리’ 축제도 기실, 드센 바람의 힘을 빌어 자손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려는 제례 의식이다. 그러고 보면, 바람을 활용해 음식점들이 가게 앞에 깃발들을 늘어놓는 것이나, 빨래 건조대를 주택 벽면에 아예 부착시켜 버리는 등의 상술과 지혜 모두 열도의 독특한 기상(氣象)이 낳은 산물들이다.

다행히 근래 들어 신풍(神風)과 사풍(邪風)을 모두 청정 자원으로 활용해 보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바람의 변덕이 몹시 심하기에 안정성이 떨어져 송전시설에 부담을 준다고 한다. 시쳇말로 얘기하자면, 좀처럼 “도움이 되지 않는” 바람인 셈이다.

그래도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옛말처럼 혹독한 자연 환경은 일본인으로 하여금 역대 어느 국가보다 비바람과 태풍, 홍수와 산사태에 강한 국가를 만드는 데 톡톡히 일조(一助)했다. 그래서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지 않는가?

 

사진 1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도쿄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 지하철 역전(驛前) 모습. 거센 비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망가진 우산들이 역 앞에 버려진 채 쓰레기와 함께 쌓여있다. (저자 촬영)


사진 2

   

비싼 기와 지붕을 감당하지 못한 서민들은 옛날부터 나무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지붕 위에 수많은 돌을 얹어 놓았다. 사진은 오사카(大阪) 역사 박물관 내에 전시된 에도(江戶) 시대의 일본 민가 모습. 격자에 맞춰 반듯하게 지붕에 얹어놓은 돌들이 인상적이다. (저자 촬영)


사진 3

   

 일본을 괴롭히는 바람은 그림 소재로도 종종 활용돼 왔다. 이 그림은 에도(江戶) 막부 시대의 풍속화 화가, 카쯔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의 ‘후지산 36경(景)’ 시리즈 중 1경인 <가나가와 난바다 속>. 후지산(富士산)을 남쪽에서 바라본 그림으로, 조각 배 위의 넘실거리는 파도를 통해 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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