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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피천득의 「인연」-산호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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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13  20: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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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호와 진주는 나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산호와 진주는 바다 속 깊이깊이 거기에 있다. 파도는 언제나 거세고 바다 밑은 무섭다. 나는 수평선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잠수복을 입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는 고작 양복바지를 말아 올리고 거닐면서 젖은 모래 위에 있는 조가비와 조약돌들을 줍는다. 주웠다가도 헤뜨려 버릴것들, 그것들을 모아 두었다. 내가 찾아서 내가 주워 모은 것들이기에, 때로는 가엾은 생각이 나고 때로는 고운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산호와 진주가 나의 소원이다. 그러나 그것은 될수 없는 일이다. 그리 예쁘지 않은 아기에게 엄마가 예쁜 이름을 지어 주듯이, 나는 나의 이 조약돌과 조가비들을 ‘산호와 진주’라 부르련다.’
-피천득 인연 서문 중- 」

피천득씨의 글은 항상 나의 소원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글과 책이란 항상 바다 속 깊이 있었기에 먼발치에서 소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를 몹시 흠모해 때때로 흉내 내기도 했었다. ‘않다’고 쓰는 대신해 ‘아니 하다’라고 써본 적도 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뜬금없이 장미꽃을 선물한 적도 있었다. 그는 그의 소원을 그저 그런 조약돌과 조가비들에 비유했지만, 그가 젖은 모래 위에서 주워 모았던 조가비와 조약돌들은, 내게는 정말로 ‘산호와 진주’였다. 그런데 그 산호와 진주가 가짜라고 해서, 사실은 값어치가 없는 작은 돌과 조개껍데기라고 해서, 그의 글에 담긴 의미가 변하진 아니 한다. 수필이면 어떻고 소설이면 어떨까. ‘아사코’가 아니라 ‘마리나’라면 어떨까. 그는 그의 대표적인 수필집 ‘인연’에 이렇게 썼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는 아사코와 아주 잠시 만났다고 한다. 일본 유학 당시, YMCA를 통해 도쿄 YMCA 관계자를 만나 기숙할 집을 소개 받았는데 그때 잠시 보게 된 사람이 아사코라고 한다. 이를 두고 그의 제자 한명이 ‘수필집 인연’을 두고 “수필이 아니라 소설로 바로 잡아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무려면 어떠냐.” 그가 옳다. 정말로 아무려면 어떻다.

때 아닌, ‘수필이냐 소설이냐’라는 논쟁을 떠나서 피천득씨의 ‘인연’은 아름다운 글이다.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특유의 담담한 문체로 써내려간 그의 글은 그가 사랑한 오월(五月)과 닮아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하지만 오월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장 따뜻한 달. 땅에서 키워낸 라일락이 만개하는 계절이다. ‘모든 군더더기를 떨어내고 남은 마지막 모습은 아름답다.’ 마찬가지로 추억과 욕정을 그저 뿌리에만 남기고 한 떨기 꽃잎만을 보여주는 그의 글은 라일락처럼 아름답다. 글 ‘인연’에서 나오는 주인공을 두고 ‘아사코를 사랑하고 질투한 것처럼 묘사 됐다’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글에서 사랑은 찾아 볼 수 있어도 질투는 찾아 볼 수 없다. ‘소년 같은 진솔한 마음과, 꽃같이 순수한 감성과, 성직자 같은 고결한 인품과, 해탈자 같은 청결한 무욕.’ 아사코와 피천득씨는 세 번 만났다. 아니, 사실은 한번, 혹은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다. 아무려면 어떨까. 소설이냐 수필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주목해야 할 것은 마음에 담아 두었던 여인을 세 번째 만나 실망했을 때, ‘실망’이라는 단어를 곧이곧대로 쓰지 아니 하고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했다’라고 써내려간 그의 ‘마음과 글’이다. 
 
글 ‘인연’은 다음과 같이 끝이 난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라일락은 오월에 핀다. 향기 있는 꽃 중에서도 은은하며 품위 있는 꽃으로 젊은 날의 추억을 뜻한다. 그리고 가을에도 빛깔이 변하지 않는다. 그가 찾아갔던 소양강 가을 경치에도 라일락이 만개했길 빈다.

/ 류명재(언론ㆍ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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