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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ARS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될 수 없는 불편한 진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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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아버지의 대화형식으로 구성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제목에서도 예상되듯 기근문제를 다룬 책이다. 뻔해 보이는 책의 내용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굶주린 아이들의 ‘흔한’이야기다. 하지만 동시에 누구나 알지 못했던 ‘만연한’내용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난 그동안 기근문제를 다루는 내용은 주로 텔레비전을 통해 접했다. 특히 어릴 적 르완다나 소말리아의 어린이들을 보면서 모았던 ‘사랑의 빵’저금통이나 ‘기아체험 24시’ 같은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TV 프로그램에는 뼈가 앙상한 아이들을 보여주면서 감정에 호소하는 모습이나 ‘ARS 전화를 통해 모금되는 돈이 얼마 모였다’고 말하는 내용은 있었지만 기근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심각한 기근 사태가 왜 반복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지 그 까닭은 알 수 없었다. 물론 당시의 모금활동이 결코 헛되진 않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동일한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은 ‘단순히 먹을 것을 준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기근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때문인지 언제부턴가 나는 TV에서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볼 때면 연민은 느끼지만 그 사실을 담담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머나먼 아프리카의 ‘남의 나라’이야기여서 그랬을까. 아무렇지 않게 참담한 기근 문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더 참담한 문제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 책의 문체는 비록 가벼울진 모르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책 표지를 볼 때부터 짐짓 예상했던 대로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기근문제의 상황을 수치화시켜 보여준다. 전 세계에서 5초에 1명씩 10세 미만 아동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잃는 사람이 3분에 1명꼴이라고 서술하는 부분만 봐도 그 심각성이 쉽게 와 닿는다. 책에 따르면 기아인구는 주로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시아에 분포돼 있다. 유엔 식량 특별조사관이기도 했던 저자는 기근문제를 겪는 나라를 돌며 겪었던 경험을 통해 심각한 식량사정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그 생생함을 수치화된 자료와 함께 ‘스캔’해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이 심각한 식량문제를 얘기한 기존의 책들이나 TV 프로그램들과 다른 이유는 문제의 핵심을 다룬다는 점이다. 그 핵심엔 식량문제의 거대한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사실 식량난을 겪는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그들 스스로 식량을 자급자족할 능력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과거 식민지정책의 그림자와 불공정한 곡물가격 책정으로 인한 서구국가들의 영향력 때문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여기에 군벌이나 여러 부족 간의 이해관계 혹은 부패한 독재정권은 기근문제를 겪는 제3세계국가들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몇몇 자본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곡물가격은 각국의 농산물 수출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들의 농간은 곧 농촌인구감소와 도시인구의 증가로 이어졌고 농촌을 떠난 이들은 도시의 빈민가를 형성, 굶주리는 아이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을 비롯한 지구 곳곳의 환경파괴 문제 역시 기근 사태를 발생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대규모 농장건설로 인해 수많은 삼림이 파괴된 후 사막화, 피폐화된 농촌이 대표적이다. 또한 서구의 많은 나라에서 맬서스의 인구론(자연적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어 인구팽창으로 인한 문제가 적절히 조율되고 있다는 논리의 근거)이라는 엉터리 이론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기아를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렇게 불공정한 경제구조나 자본가와 다국적 기업의 횡포, 환경문제, 국내 정치적인 상황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맞물려 심각한 기근문제를 겪는 나라들이 많다. 허나 개중엔 스스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나라들도 있었다. 특히 칠레나 부르기나파소는 개혁을 통해 기근문제를 해결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나 비참한 결과를 맞았다. 칠레의 경우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15세 이하 어린이들에게 무상급식을 해 기아문제를 풀어나가려 했다. 그러나 분유의 유통과정을 장악하고 있던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는 이런 정책이 자시들의 이윤에 반하며 그것이 주변국에도 퍼져 나갈 것을 두려워했다. 결국 이들의 횡포로 쿠데타 정권교체란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부르기나파소 역시 젊은 군인혁명가였던 상카라라는 인물이 정권을 잡으면서 식량을 자급자족할 개혁들을 시행했고 그것이 작은 성공을 거뒀지만 몇 년 가지 못한다. 선진국의 사주를 받은 내부세력에 의해 상카라가 피살되면서 개혁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 두 나라는 근본적인 기근문제해결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기존의 다른 제3세계 국가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선진국들과 다국적기업이 구조적 기아를 타파하려 한 개혁을 의도적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이 불편한 진실의 속성엔 맬서스의 인구론과 불공정한 경제구조의 원인인 신자유주의가 있다.
세계인구의 0.1%도 안 되는 사람들이 25억 명의 사람들이 일 년 동안 일해야 얻을 수 있는 부를 독점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분명 정상적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기근문제의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저자인 장 지글러 선생이 기근문제를 바라보는 생각의 전환과 ‘인간성의 회복’을 말하는 이유는 이런 상황을 직시하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모쪼록 이 책이 신자유주의의 광풍을 멈추고 제3세계 국가들의 개혁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과 의미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 전세형(언론ㆍ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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