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여론형성 주도세력 부상
실명제 등 논란…상대방 존중하는 소양 아쉬워

  인터넷이 네티즌의 ‘사이버 아크로폴리스(시민광장)’로 떠오르고 있다. 초기의 단순한 정보공유와 전달수단의 의미를 넘어 국민 여론을 형성하고 주도하는 하나의 여론 광장으로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의 게시판, 대화방은 네티즌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해 카페, 커뮤니티 등의 동호회를 통해 놀라운 결속력을 다지게 했다. 이를 통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터넷 인구의 힘을 얻은 네티즌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사회를 주도해 나가고 있다. 파급력과 영향력이 큰 인터넷 속에서 우리의 잃어버린 토론문화를 찾을 수 있을까?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 토론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토론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 앞에서 확인하고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것, 국내외 어디에 있는 사람이든지 토론이 가능하다는 것…. 이러한 이유로 인터넷상에는 수많은 토론 사이트가 생기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모임을 갖는 등 활발한 토론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반면 「안티 조선일보」,「스톱삼성운동」,「연예인 안티사이트」 등 각종 안티 사이트와 “△△공고 여중생 성폭행 사건”,“○○여대 재단의 비리를 폭로합니다” 등의 각종 탄원과 민원·고발성 내용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한 지극히 평범한 개인도 쉽게 사이버 논쟁을 촉발할 수 있게 됐다. ‘딸의 엄마 고발 논쟁’의 씨앗이 된 “…위의 내용은 저희 엄마가 아빠에게 이혼을 요구하면서 보낸 편지의 머리글입니다…” 같은 글이 그 좋은 예이다.

  이외에도 인터넷의 파급성을 이용해 자기 주변에서 일어난 억울한 일을 고발하는 글을 올려 네티즌의 심판을 바라거나 「박정희 기념관 논쟁」,「문학권력 논쟁」,「언론사 세무조사 찬반토론」 등 사회의 이슈가 되는 많은 논쟁들이 사이버상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사이버 공간은 한국사회 토론문화의 한 축으로 성장해가고 있으며 이제 네티즌들은 오프라인 매체가 자신들의 토론에 참여할 것을 당당히 요구한다. 그러나 ‘안티 사이트는 명예훼손이 아니다’라는 법원의 판결 이후 폭로성 글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밑으로부터의 여론 형성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가진 인터넷 고발 사이트의 성행은 일부 검증되지 않은 폭로성 내용으로 인해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

  또한 사이버상의 토론은 토론 당사자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고 자기 이야기만 하다 끝나는 특징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욕설, 도배, 여론조작 등은 사이버 토론을 설득력 있는 담론이 아닌 일개 여론으로 전락시켜버리는 사이버 토론의 적이 된다. 따라서 사이버 토론이 한국 토론문화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익명성의 천국, 자유게시판은 인터넷의 여러 공간 중에서도 익명성이 가장 폭넓게 활용되는 곳이다. 개인 홈페이지에서 각 언론사 홈페이지까지 자유게시판은 네티즌 모두에게 열려있다. 전문가들은 각 사이트에 자유게시판을 두는 현상을 ‘한국의 독특한 인터넷 문화’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권력과 결탁한 언론의 매체독점에 의해 국민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자유가 제한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익명성을 보장하는 자유게시판은 자신에게 돌아올 사회적 불이익을 방지하며 누구나 자기의 의견을 다수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게시판은 언제부턴가 욕설과 인신공격, 유언비어 등이 난무하는 공간으로 변모해 그 역기능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학기 우리학교 홈페이지에서도 자유게시판이 한참 논란의 대상이 됐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학교와 학생측의 소통을 원활히 해야 할 자유게시판에 학생들 서로에 대한 비방과 학교 깎아내리기, 명예훼손, 욕설 등이 난무해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학교측에서는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만 자유게시판에 접속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자유게시판에 접속만 하면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아 결국, 자유게시판에 자신의 학번(또는 사번)과 비밀번호(주민등록번호 뒤 7자리)를 입력해야만 글을 올릴 수 있는 실명제가 도입됐다.

  이러한 자유게시판의 ‘실명이냐 익명이냐’의 논란은 수많은 자유게시판이 겪는 홍역이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자유게시판, 나아가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음해성 발언이나 인신공격적 글들의 근본적 문제는 익명성의 여부가 아니다. 그 혼란상은 의사표현수단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온라인을 통해 열린 공간이 생기면서 우리사회에 정착되지 않은 토론문화가 자리잡아 가는 과정의 시행착오가 여과없이 보여지는 것이다.

  토론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 인터넷은 아직 진지한 토론의 장이 되기에 미숙하다. 또한 인터넷 속에서의 규제라는 것은 인터넷의 근본인 자유를 상실하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온라인상에서 최소한의 도덕성과 매너를 갖춰 이 ‘자유’를 지키고 좀더‘책임’있는 토론문화를 만들어가야 하겠다.

/ 고진선 기자 dimple6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