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으뜸 나무, 소나무

문 1 :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답 1 : 소나무입니다.
문 2 :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답 2 : 그때그때 다릅니다.

동일한 어순, 비슷한 외모, 공통된 한자 문화권. 하지만 나무를 놓고 보는 양국 간의 취향은 이렇듯 다르다. 실제로 소나무는 한국인들에게 거의 전부에 속하는 나무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때에 따라 순위가 바뀌는 나무일 뿐이다. 녹록하지 않은 자연 환경 속에 살아가려니 나무조차 상황에 따라 이용하려는 심리에서일까?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소나무는 열매에서부터 잎사귀는 물론, 줄기와 뿌리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솔가지 꽂은 금줄을 문간에 달고 태어나,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솔잎과 송홧가루 떡ㆍ과자를 먹으며, 소나무 뿌리에서 얻은 약재로 병을 다스리고 송진으로 불을 밝히다, 죽을 때도 소나무 관에 들어간다. 이런 소나무는 또, 사시사철 푸른 까닭에 고금을 막론하고 시(詩), 서(書), 화(畵) 속에서 우리 선조들의 으뜸 사랑을 듬뿍 받아왔다.

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벚나무는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회춘(回春)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한 감상목(感想木)으로, 소나무는 늘 건강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의 건강목(健康木)으로, 대나무는 하늘 높이 쭉쭉 뻗는 것처럼 오래 살기를 염원하는 장수목(長壽木)으로 제각각 사랑 받아 왔다.

봄의 감상목, 벚나무

먼저 벚나무다. 봄철이면 화려하게 성장(盛粧)하는 벚나무는 평소, 좀처럼 들여다보기 힘든 일본인들의 감정을 엿볼 수 있는 계절목(季節木)이다. 춥고 지루한 겨울이 지났음을 알리는 전령사(傳令使)이기에 1년 내내 감정 절제에 익숙해 있는 일본인들이 유일하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일본의 주거 문화는 길고 습한 여름을 잘 견디기 위한 다다미가 상대적으로 발달한 만큼, 겨울용 난방은 매우 취약하다. 말하자면, 온돌 없이 돗자리 위에서 한 겨울을 보내야 하는 것이 일본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외풍과 냉기로 가득한 겨울 방에서 몇 달을 지내다 벚꽃이 봄소식을 알리기 시작하면 온 나라가 열병(熱病)을 앓는 대소동이 펼쳐진다. TV의 일기 예보는 어느덧 벚꽃 개화(開花) 예보로 바뀌며, 벚꽃 개화 전선의 북상(北上)이 온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특히, 벚꽃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하는 3월부터는 주말마다 공원과 강변의 벚나무 명소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하며 봄기운을 만끽하려는 인파들의 자리 다툼이 시작된다. 비단, 개화(開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꽃이 질 때도 필 때 못지 않게 전 열도(列島)가 열병을 앓는다. 그러고 보면, 벚꽃이 피고 지는 3, 4월은 졸업과 입학, 입사(入社)와 퇴임(退任)이 함께 하기에 희(喜), 노(怒), 애(哀), 락(樂)을 찍는 사진 한 켠엔 가슴 뭉클한 벚꽃들이 자리하게 마련이다.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벚나무에 푸른 빛이 돌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꽃놀이의 광기 어린 애정이 객쩍게 끝난다는 것. 그런 벚나무는 일반 가정에 심어지기보다 공원이나 강변에 대규모로조성되는지라 계절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감상목(感想木)으로서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 정원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일본 나무는?

무병장수를 위한 방패막이, 소나무

여러 나무를 꼽아 볼 수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단연 소나무를 들 수 있다. 사시사철 푸른데다 관상용으로도 보기 좋아 뜰에 널리 심어지는 까닭에서다. 그러고 보면, 호텔이나 유명 정원에서는 온갖 지지대와 밧줄로 얼기설기 묶어 놓은 관상용 소나무들이 심심찮게 내방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네 소나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 소나무는 상록수로서 1년 내내 건강함을 잃지 않으려는 일본인들의 희망사항을 고스란히 품고 자란다는 것이다.

그런 소나무는 또, 신토(神道)를 위시한 민간신앙에서 신령을 맞이하는 신령목(神靈木)이나 죽은 이가 신령이 되도록 도와주는 조력목(助力木)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소나무의 일본어 발음 ‘마츠’(松)와 ‘기다리다’(待)라는 동사의 발음 ‘마츠’가 같은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말하자면, 사시사철 푸르름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며, 붉은 나무껍질로는 사악한 기운의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언제든 신이 내릴 수 있도록 몸을 마련 중인 나무가 일본 소나무라는 것이다. 반짝 달궈졌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벚나무 사랑과 달리,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일본인들의 무병무사(無病無事)를 지원하는 소나무는 때문에, 가장 보편적이며 지속적인 애정을 받고 자란다.

각설하고, 해가 바뀌어 어느덧 새해를 맞이하게 되면 이번에는 대나무가 으뜸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오르기에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일본의 대나무는 모든 가정과 음식점, 상가에서 반드시 구비해 집과 가게 앞에 내 놓아야 하는 필수품이다. 솔가지와 함께 여러 상징물들도 곁들여 꾸며지는 ‘카도마츠’(門松)란 이름의 대나무 장식품은 천수(天壽)를 누리며 장수하라는 기원(祈願)을 담고 있다. 슬픈 사실은 이러한 ‘카도마츠’가 대나무를 잘라 만든 것이라 시퍼렇게 쭉쭉 뻗은 대나무들이 한겨울에 뽑히고 잘리는 횡액(橫厄)을 당한다는 것. 해서, 일본의 대나무는 정월 행사를 위해 하늘 높이 자라야 하는 운명을 지닌다.

덧붙이자면, 한국에서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 나무가 일본에서는 고급 음식의 등급을 매기는 정도로 사용된다는 것. 모르긴 해도 유교 영향으로 매화에 대한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한겨울에 제일 먼저 꽃을 피운다는 사실 말고는 실용적인 면에서는 건질 것이 별반 없는지라, 음식의 순위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배치했다는 것이 필자의 B급 견해다. 이와 함께, 선비는 매화와 잘 어울려도 사무라이는 좀처럼 어울리는 그림을 연출하지 못한다는 영상적인 측면도 무관심에 일조했다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정서에서 매(梅)-난(蘭)-국(菊)-죽(竹) 가운데 으뜸 순위를 차지하는 매화가 열도에선 송(松)-죽(竹)-매(梅)의 끄트머리로 배치되는 역전 현상 역시, 이 같은 분위기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약과 술로 대접받는 매실(梅實)이 일본에서는 ‘우메보시’라는 반찬으로 사용되는 것도 매화 나무와 매실에 대한 양국 간의 인식 차를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과 한국의 나무 사랑은 ‘확연히’ 다르다.

(사진설명)

1. 솔가지, 짚 등과 함께 가게 앞이나 건물 앞에 내 놓는 정월 장식품 ‘카도마츠‘(門松). 이름에는 소나무를 의미하는 ‘마츠’(松)가 들어가 있지만, 정작 장식품으로 사용되는 주재료는 대나무다. 횡액을 방지하고 무병장수와 풍요를 기원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의례행위에 동원된 대나무로서는 그야말로 한겨울에 날벼락인 셈이다. (저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