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대학에선 어느 곳에서나 토론하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대학의 토론문화는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요즈음은 토론수업조차 어려워하고 기피하고 있다. 따라서 기획부에서는 우리가 토론을 낯설어 하는 까닭을 알아보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토론수업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다. 또한 우리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토론문화가 어떠한지 신문·방송매체와 사이버상의 토론을 통해 진단해 봤다. 한편 15대 부총학생회장 남궁정씨와 철학과 95학번 성연제씨를 초대해 대학의 토론문화의 현황과 전망에 관한 얘기를 나눠봤다.

  “우리에겐 토론문화가 없다” 요즈음 TV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다. 예전에 비해 시사토론 프로그램들이 많아 우리사회 토론의 장이 넓어졌다는 얘기도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토론문화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토론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은 자신의 입장만 내세운 채 상대방 얘기를 인정하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신공격과 욕설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토론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것이라는 토론의 기본이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의 토론문화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양한 면에서 알 수 있다. 현재 부분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토론수업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낯설어하고 힘들어한다. 더 나아가서는 토론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도 보인다. 그건 기존 우리교육이 암기위주의 주입식으로 이뤄진 ‘고르기 방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교육방법은 정해진 답만을 인정하는 것 같이 우리는 나 외의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인정하는데 인색해 있다.

  또한 신문과 방송 그리고 출판을 통해 지금의 토론문화 상황을 볼 수 있다. 강준만씨는 『인물과 사상』의 지면을 통해 직접적인 현실비판과 문제제기를 시작했고 이후 신문매체를 통한 매체비평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한 비판에 대한 반박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방송 매체인 『MBC100분 토론』을 비롯한 EBS『난상토론』등의 TV 토론 프로그램들은 시사적인 현안을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토론의 장을 마련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토론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시작했음으로 인해서로간의 소통없이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고 끝났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사이버토론도 우리의 토론문화가 어떠한지 보여준다. 어느 사이트나 홈페이지를 들어가더라도 자유게시판이 즐비하게 널려져 있고, 그곳에서는 네티즌들의 거침없는 얘기들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익명성을 이용해 활발하게 사이버 토론에 참석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의 경우 이를 악용해 도배와 각종 욕설로 게시판을 어지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중 후자의 경우 우리사회에 토론문화가 없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하는 토론의 밑바탕에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지만 익명성을 악용한 경우 서로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이버상의 토론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성숙한 네티즌들의 의식이 필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렇게 곳곳에서 보이는 우리사회의 토론문화 부재의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고르기 방법’을 해 온 그동안의 교육방법의 문제이다. ‘고르기 방법’이란 정답을 고른다는 의미인데, 정해져 있는 답 외에 다른 생각은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교육방법은 토론의 기본인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음을 알 수 있다.

  두번째는 지난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 시대의 권위주의적인 사회배경 때문에 토론자체가 이뤄지기 힘들었다. 특히 상명하달의 군대식 전달방식은 토론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당시 국가는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을 장악했고, 언론은 권력에 기생해 자유로운 여론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았다. 국가권력과 언론이 결탁은 일제시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친일적 행태, 해방후 군사정권시절 있었던 언론통폐합 등 곳곳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자유주의의 표상인 미국에서도 있었는데, 스콧 니어링은 이를 자서전을 통해 밝히고 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숱한 노력을 하며 발전시켜 온 대화 채널들이 개인적 친분없이 하나둘씩 차단되어 갔다. 내가 미국 사회의 소수 독제체제와 그 정책에 계속 반대입장을 취하는 한 나는 내 생각을 발표할 통로마저 잃고 말 것이 뻔하다”. 결국 그는 강단에서 물러서야 했을 때도 그랬고 출판을 거부당했을 때도 “이 일에 개인적 감정이 전혀 없다는 거 선생님께서 십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라는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야 했다.

  지금 우리사회는‘고르기 방법’의 교육과 일제, 군사정권의 권위적인 사회분위기로 인해 토론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따르는데 토론문화 없이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봤을때 우리는 근본적으로 교육의 변화가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토론이 소모적 논쟁으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토론을 그만둬야 되는 이유가 아니라 시작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토론의 기본이 정착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소옥임 기자 naive5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