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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본견문록] 사쿠라를 보면 일본이 보인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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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14  21: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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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센세! 니혼노 하나와 사쿠라데스까? (선생님, 일본의 꽃은 벚꽃입니까?)
일본어 선생: 치가이마스. 사쿠라와 쇼민다치노 하나데스. (아닙니다. 벚꽃은 서
      민들의 꽃입니다)
필자: 그럼, 일본의 꽃은 무엇입니까?
일본어 선생: 일본의 꽃이란 것은 없습니다. 일반인들의 꽃은 벚꽃이며, 황실의
      꽃은 국화입니다.
필자: 황실의 꽃은 왜 국화입니까?
일본어 선생: 벚꽃은 온갖 꽃과 함께 봄에 피지만, 국화는 가을에 고고하게 홀
      로 피니까요. 황실의 꽃이 다른 꽃들과 함께 필 수는 없잖습니까?

국회의원 배지는 국화, 맨홀 뚜껑은 벚꽃

일본어를 익히느라 고군분투하던 도쿄(東京) 체류 당시, 박학다식 (博學多識)했던 일본인 선생은 열도의 국화(國花)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해 줬다. 전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쿠라가 실은 일본의 국화(國花)가 아니며 열도의 국화(國花)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면, 벚꽃인 ‘사쿠라’(梅)와 국화인 ‘키쿠’(菊)는 일견, 모순으로 가득 차 보이는 일본의 이중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상징물들이라는 생각이다. 한국에서는 무궁화가,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이, 영국에서는 장미가, 스위스에서는 에델바이스가 제각기 민중적이면서도 민족적인 개성을 뽐내고 있지만, 이웃 일본에선 꽃마저 위, 아래로 구별돼 사랑 받는 까닭에서다.

실제로, 황실을 대표하는 국화는 일본 국회의원들의 배지에 새겨져 귀한 대접을 받는 반면, 벚꽃은 길거리의 맨홀 뚜껑 장식물로 쓰이면서 서민들의 발자국을 감내(堪耐)해야 하는 게 열도의 현실이다. 국화는 또, 야스쿠니(靖國) 신사의 휘장에서부터 메이지(明治) 신사의 제등(提燈)에 이르기까지 엄숙한 모든 곳에 자리한 채 민중들의 경배를 강요하지만, 벚꽃은 하나미(花見: 꽃구경)가 시작되는 4월의 공산품(工産品)으로 뭇사람들의 한시적인 눈요깃감이 될 뿐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무궁화는 동요에서부터 애국가를 거쳐 경찰관과 군인의 계급장은 물론, 청와대의 문양에 이르기까지 전국 어디서나 쉽사리 접할 수 있는 국화(國花) 중의 국화(國花)다.

예부터 작고 조밀한 꽃을 찬양해온 일본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과 중국에서 절개의 상징으로 칭송 받는 매화가 일본에선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한다는 것. 선비와 달리 사무라이에겐 한 겨울에 고고하게 피는 매화보다 목숨에 연연하지 않듯 쉬이 피고 금새 사그라지는 벚꽃이 더욱 끌렸던 것이다. 물론, 매화가 일본 땅에서 존중 받지 못한 이면에는 한국, 중국과 달리 겨울이 혹독하지 않은 기후적 환경도 자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연유로, 대륙 문명이 열도를 거세게 흔들던 고대 일본사에서 매화는 상류층의 찬미를 받았지만, 일본 문화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는 헤이안(平安) 시대 이후부터는 벚꽃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해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한(韓), 중(中), 일(日) 삼국이 유럽연합(EU)처럼 합치면 상징화로 매화가 좋을 거라 했지만, 이는 벚꽃과 국화로 양극화된 열도의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이어령도 일본의 꽃 문화에서 날카롭게 집어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조밀성(稠密性)으로 대표되는 ‘구와시이’(詳しい)가 그것이다. ‘구와시이’란 ‘자세한’이라는 뜻의 일본어로 일본인들이 미의식을 거론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그의 명저,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여러 시집(詩集)들을 통해 예로부터 작으면서도 치밀하고 빽빽한 미(美)를 찬양해 왔으며, 일본의 고시집인 ‘만요슈’(萬葉集)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꽃 역시, 아주 작으면서도 다닥다닥 붙어있는 싸리꽃이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그루당 수십 만, 수백 만 개의 꽃을 피우는 벚나무는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하겠다. 비록 꽃잎 수는 다섯 장에 불과해 꽃 자체의 조밀성은 떨어지지만, 한 그루의 나무에서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꽃들이 피어나기에 벚나무 자체가 거대한 ‘구와시이 하나’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하나’(はな)란 꽃을 뜻하는 일본어. 말하자면, 집약적이면서도 몰개성적으로 군집을 형성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을 더도 덜도 없이 반영하는 ‘큰키나무’(교목)가 벚나무라는 것이다. 한데 다른 나라에서 사랑 받는 꽃들은 많은 경우, 무궁화와 튤립, 장미와 에델바이스같이 적절한 수의 꽃봉오리들을 개성적으로 연출해 내는 ‘작은키나무’(관목)들이니 일본의 사쿠라가 더욱 극명하게 대비될 수밖에.

일본 군국주의가 재발견한 벚꽃

엄밀히 말해, 사쿠라가 일본의 대표적인 꽃으로 인식된 데는 일본 군국주의의 탓이 크다. 물론, 이전부터 사쿠라가 일반 백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일본 작가들이 사쿠라를 소재로 다양한 시와 산문, 소설과 수필을 써 온 자국의 문학사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일본 군국주의가 ‘구와시이 하나’를 이루는 벚나무에 주목하게 되면서 사쿠라의 상징성은 180도 바뀌게 된다. 혹독한 자연 환경 속에 신화와 함께 살아 가고 있기에 어느 국가보다도 상징물과 금기가 많은 열도에서 군국주의를 떠받드는 매개물로 적극 활용됐기 때문이다. “만세일계의 태양(천황)을 위해 한꺼번에 피고 지는 벚꽃처럼 목숨을 집단적으로 아름답게 버려라”라는 슬로건 아래, 벚꽃은 애국심을 불사르는 대유적 상징물로 등치(等値)되기에 이른 것이다.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의 저자, 오오누키 에미코(大貫惠美子)는 이에 대해, 근대 일본이 벚꽃을 통해 일반 민중들에게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주입시켜 왔는지 생생하게 밝히고 있다. 카미카제(神風) 특공대원들의 수기를 통해 저자가 추적한 벚꽃의 상징성은 절대자를 위해 죽는 것 자체가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행위라는 유미주의(唯美主義)와 맞닿아 있다.  

결국, 수백만 개의 꽃송이가 일제히 피고 지는 장관은 같은 시기의 히틀러가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에서 수십만 명의 나치 당원들을 동원해 펼치던 거대한 매스 게임과 마찬가지로 열도의 젊은이들에게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를 깊숙이 주입시킨다. 더불어 “천황을 위해 아름다운 사쿠라 꽃잎처럼 져라”라는 군부의 정치 선전은 막스 베버와 에밀 뒤르껭이 지적한 대로 ‘사고’(思考)보다 강력한 상징으로 작용하며 일본인들이 자신의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버리도록 강제시킨다. 그런 까닭에 고우영의원작만화, ‘일지매’에서는 주인공이 의적질을 하며 현장에 한 가닥의 매화 가지를 남기지만,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는 군복에 한 가닥의 사쿠라 가지를 꽂으며 미 항공모함을 향해 자신의 제로 전투기를 내리 꽂는다. 꽃을 가꾸는데 신비한 기술을 가진 국민이 어떻게 폭력을 숭상하며 미치광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지,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가 좀처럼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의 정해(正解)라고나 할까?

꽃을 먹거리로 대하는 한국인들의 엽기성(?) 또한 꽃을 유미주의적 대상으로만 파악하려는 열도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에는 진달래 화전을 부쳐 먹고,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는 국화차를 마시는 한민족의 먹거리에 일본인들은 목숨까지 걸어가며 죽어갔으니 일본에 대한 글을 쓰면 쓸수록, 문화적, 정서적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은 정녕 필자만의 느낌일까? 

"한 한기 동안 필자의 '신일본견문록'을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학기에는 일본의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가운데 '사람' 편에 해당하는 이야기들로 여러분들을 찾아 뵙고자 합니다. 길고 추운 겨울 방학 알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심훈 (언론·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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