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들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 억눌려온 것들이 화산 폭발하듯 연신 에너지를 분출하며 터지기 시작했다. 드라마가 현재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시청자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대중이 오늘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을 드라마를 보며 성찰할 수 있게끔 만든다고나 할까.

이런 드라마 트렌드에 발 맞춰 연말을 화려하게 장식한 역사 드라마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SBS에서 방영한 ‘뿌리 깊은 나무’다.   

뿌리 깊은 나무는 조선 초기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유와 배경, 또한 그것을 반대한 세력의 이유와 배경들을 유추, 창작하여 그것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그린 픽션사극이다.

지난 22일 종영한 뿌리 깊은 나무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키워드가 있다. 바로 ‘소통’이다. 대중은 어떻게 이 드라마에 매료됐던 것일까? 먼저, 연기자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캐릭터의 개성을 잘 살리면서 드라마의 매력발산에 한몫했다. 특히 세종 역을 맡은 한석규는 극 중 ‘우라질’, ‘지랄’과 같은 육두문자도 서슴지 않는 다혈질성격의 소유자이며, 분노와 좌절 그리고 고뇌하는 세종의 모습을 미친 연기력으로 소화시켜 기존 사극에서 묘사된 전형적인 임금 이미지를 완벽하게 탈피한 모습을 보였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극 초반부에 세종은 백성들이 하는 농사일을 직접 하기까지 한다. 

상림원에 간 그의 호위무사 무휼과 집현전 학자 정인지는 그곳에서 직접 똥지게를 지고 농사를 짓고 있는 세종의 모습을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무휼은 “어찌 전하께서 똥지게까지 지시고 계십니까?”라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이에 세종은 말한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관리들이 움직이기나 하냐? 인분이 밭작물을 얼마나 잘 자라게 하는지 알아 오랬더니 매번 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라. 연구 중이다. 에라이 빌어먹을!” 이라며 화를 낸다. 이렇듯 찰진 욕지거리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 자체가 백성들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소통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백성과 진정으로 소통하려했던 세종. 하지만 극 중에서는 세종의 꿈을 방해하는 요소가 가득하다.

먼저 이 드라마에서 세종의 업적인 훈민정음 창제의 필연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강채윤’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강채윤은 한글을 수용해야 했던 백성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강채윤은 극 중 세종을 암살하려는 목표로 궁에 들어와 연쇄살인수사관이 되는 인물이다. 사랑하는 아버지 석삼이가 이도(세종) 때문에 죽었다 생각하고 그에 대한 복수를 결심해 입궐하는 인물이다. 

나라와 대중간의 소통의 필요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드라마 첫 회에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이 등장한다. 이방원은 권력의 일원화를 위해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정적을 인정사정없이 차례로 제거하는 냉혹한 무력 정치를 펼친다.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칼에 죽어간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며 소통정치의 꿈을 조금씩 키워나간다.

소통은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무자비한 살육을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희생당한 이들의 생각에 괴로워하는 세종의 유일한 도피처이자 자신의 정치 이상향을 숨겨둔 곳이 바로 마방진이다. 마방진은 열과 행, 대각선 숫자로 모두 합해 같은 수가 나오게 하는 정사각형의 진이다. 여느 날처럼 마방진을 풀고 있던 아들 이도에게 아버지 이방원이 다가와 그 해법을 가르쳐 준다.  

“33방진도 그리 어려워 못 푸는데 세상일은 몇 십만 방진이오. 왕의 방진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오. 그게 권력이오. 방해되는 것을 없애 단 하나로 힘을 모으는 것. 그게 나 이방원이다.”

이 말은 현재 기성 소통체계를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층의 횡포를 시사한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 이방원이 죽고 왕이 된 세종은 자신의 소통정치를 하기 위해 한글창제프로젝트를 주변의 측근들과 은밀히 감행한다. 하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밀본이라는 세력이 등장해 세종이 이루고자하는 바를 막아선다. 우리의 글자를 만들어 백성과 원활한 소통을 하려한 세종은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신하들에게 호통을 친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식견이 얄팍하다는 이유로,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하극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나라 기강이 문란해진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이유로 백성들의 입을 막는다면 과인은 대체 백성의 소리를 어디서 들을 수 있단 말이오!”

현재 우리 시대의 소통문제를 그려낸 이 드라마에서는 아버지와는 다른 왕도를 개척하려는 세종의 고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소통정치의 근원인 세종과 기득권층의 이득을 대변하는 밀본의 본원 정기준의 사상대립을 통해 현실의 소통체계에 대해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밀본의 본원인 정기준은 한글이 가진 그 ‘역병’ 같은 힘을 직감하고 겁을 먹는다. 그것은 소통의 체계가 왕과 백성 사이에 놓인 자신 같은 신하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세상을 뒤엎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SNS 소통의 진보주자인 SNS 이용자들과 기성 소통체계를 장악한 보수권력집단의 싸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에서 정기준은 세종이 백성이 글자를 배우도록 하여 권력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책임을 나누고자함이라 역설한다. 즉, 백성이 글자를 배웠으니 이제부터 백성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해결하고 책임지며 살라는 얘기다.

이것은 SNS 이용자들의 SNS를 이용하며 생기는 책임문제를 말하려 한 것이다. SNS가 점점 확산되면서 나타나는 출처가 불분명한 루머, 해킹, 그리고 사생활 침해와 같은 문제점들 말이다.

“나는 말이다. 이 글자를 아는 모두를 죽일 것이다. 그리고 이 글자의 해례를 찾아 불 태워 없앨 것이다. 너의 글자는 역병과도 같은 무서운 글자다.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막아 낼 것이야.”

세종과 숨 막히는 설전을 벌였던 밀본의 본원 정기준의 대사다.

이 드라마에서 글자는 지식의 의미뿐만 아니라 백성의 권력을 상징한다. 여기서 정기준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글자를 알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무서운 백성의 욕망이다. 

“백성이 글을 알면 읽게 될 것이고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즐거움을 알게 되면 결국 그들은 지혜를 갖는다. 누구나 지혜를 가지면 쓰고 싶어진다. 무엇을 위해 쓰겠는가? 욕망이다. 그들의 욕망은 결국 정치를 향하게 되어있어. 국가의 정책에 관여하려 들 테고 나아가 그들의 지도자를 스스로 선출하려 들 것이다.”

이처럼 그는 백성의 욕망을 어찌할 것인지 세종에게 묻는다. 세종은 이렇게 반박한다.

“너희 사대부도 결국 부패하게 될 것이다. 사대부는 그들의 능력만큼 욕망을 갖게 될 것이고, 기득권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을 세습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 되지 않도록 그 욕망을 누가 견제할 수 있겠는가? 임금은 늘 견제 당해야하는 존재이기에 한계가 있다. 하여 나는 백성으로 하여금 그 역할을 하게 하려한다. 백성이 힘을 가지고 권력을 나누게 되는 새로운 균형, 새로운 질서, 새로운 조화다. 해서 나의 글자가 그런 새로운 세상에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세종은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정기준의 주장은 사대부 기득권 유지를 위한 논리일 뿐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정기준의 주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기득권이 아니다. 기득권이 아니라 질서다. 기득권이 아니라 조화다. 기득권이 아니라 균형이다. 기득권이라 쉽게 말하지 마라. 우리 사대부는 고려의 귀족과 다르다. 사대부는 아비가 사대부라해서 되는 것이 아니야. 마음을 갈고 닦고 수양하고 과거라는 제도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야 사대부야. 사대부는 사대부로 태어나지 않는다. 사대부는 신분의 이름이 아니야. 사대부는 자질과 수양과 능력의 이름이야. 그리 쉽게 기득권이라 매도하지 마라.” 

드라마에서 세종과 정기준이 얼굴을 맞대고 팽팽한 설전을 벌이는 장면은 SNS 검열안을 놓고 대립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측과 SNS 이용자 측이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지금 상황과 너무나도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방통심의위 측은 SNS 이용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에 맞춰 ‘뉴미디어 정보심의팀’을 신설해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SNS를 검열하려 하고 있다. SNS는 기업의 마케팅과 홍보에도 이용되지만 대다수 이용자들은 인맥관리와 사적인 대화공간으로 이용한다. 때문에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는 SNS를 검열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방통심의위 측 입장은 다르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규제 대상은 불법정보를 유포하거나 모욕(피해자가 신고하는 경우), 명예훼손 등이 해당된다."고 말했다.

SNS 검열에 대한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SNS의 자유로운 이용에 대한 이용자들의 열망은 세종이 한글을 반포하고자 기울이는 노력과 같아 보인다.

세종은 정기준과의 설전 이후 마음이 흔들린다. 글자는 그들 스스로를 가르치게 할 것이고 그들 스스로를 구하게 할 것이라 믿었던 세종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글자가 어쩌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 그제야 생각한 것이다. 백성들에게 글자를 가르쳐주는 일이 자신이 책임의 범주를 벗어나 어쩌면 자신이 져야하는 책임을 백성들이 져야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정기준 또한 이도와의 설전을 곱씹어 보며 어릴 적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던 이도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것을 깨닫고서는 그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만 간다. 결국 정기준은 한글창제프로젝트를 진행한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을 시해하고야만다. 

하지만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정기준의 이러한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세종은 결국 우리나라 고유의 글자인 한글, 즉 훈민정음을 반포한다. 극 중 세종은 백성을 믿었던 군주다. 백성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지혜로운 존재로 생각한다. 반면 정기준은 그들은 무지하고 쉽게 선동되기 때문에 지도층에 의해 조작당하는 우매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치부한다. 이는 대중을 소통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두 시선과도 일치한다. 대중은 능동적인가 수동적인가를 논쟁한 것이다. 

훈민정음 반포는 6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한글로 이메일, 메신저, 그리고 SNS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해 주는 소통체계의 혁신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이렇게 소통체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발생했다.

작년 12월 17일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청과물 노점상을 운영하던 20대 대졸청년이 판매 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경찰들에게 상품과 저울을 몰수당하고 뺨을 맞는 수모를 당했다. 이에 대졸청년은 경찰의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해 지방청사 앞에서 몸에 휘발유를 붙여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이후 그의 가족들과 지인들도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 와중에 대졸청년의 사촌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시위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시위 영상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소요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2010년 12월 18일 튀니지의 독재 지도자 ‘벤 알리’가 직접 병원을 방문하여 대졸청년을 위문했지만 올해 1월 4일 결국 사망하고 만다. 

이는 ‘재스민 혁명’의 계기가 되었고, 이 사건으로 벤 알리 대통령이 해외 망명을 택하면서 23년 동안 유지된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이후 주변국인 이집트, 요르단, 알제리, 예멘, 그리고 리비아 까지도 영향을 끼쳐 요르단은 물가 인상 반대와 반정부 민주화시위가 일어났다. 게다가 알제리와 예멘에서도 반정부 민주화시위가 일어났으며 이집트에서는 부정선거 규탄 및 무바라크 대통령 퇴진 시위를 벌였다. 결국 무바라크 대통령은 사임 했다. 리비아에서는 42년 동안 통치해 온 강압적인 카다피 정권에 대한 일련의 평화적인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었다. 리비아까지 번진 민주화 열기는 카다피의 무력진압에 막혔지만, 오랜 투쟁 끝에 카다피의 사망을 끝으로 3만 여명의 사상자를 낳은 리비아 내전은 종지부를 찍었다. 위에서 살펴본 사건들의 중심에는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SNS가 있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한글창제프로젝트의 중심에 서 있는 궁녀 ‘소이’다. 극 중 소이는 어릴 적 심리적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려 말을 못한다. 말을 못하는 소이는 어디에도 소통할 수 없는 백성의 입장을 대변한다. 하지만 극의 중반부에 소이가 말을 하게 되고 한글창제프로젝트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즉 소통체계에 커다란 혁신을 가져다 준 SNS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여주는 캐릭터인 것이다. 

대중과의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뿌리 깊은 나무는 역사적 사실을 따지는 비평보다는 현재의 소통체제에 반추하여 그 의미를 음미하는 것이 관전 포인트다. 훈민정음이 반포되어 한글이 지금도 쓰이는 우리 글자라는 결론은 정해져 있다.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과 정기준의 논쟁 대결과정을 통해 우리의 소통 현실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한번 쯤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뿌리 깊은 나무의 백미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한글의 우수성에 큰 초점을 두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소통 현실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지금은 SNS 시대다. 신문을 비롯한 올드미디어에서 뉴미디어인 인터넷과 SNS로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 SNS가 오늘의 ‘밀본’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시키는 것과 같은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 유진산(디지털콘텐츠ㆍ12년도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