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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본견문록] 역사는 돌고 돈다
심훈 교수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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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31  16: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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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메구미’라는 여성의 이름이 전 일본을 뒤흔들었다. 일본 총리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방북(訪北)한 고이즈미(小泉) 전 총리 앞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메구미’ 납북 사건을 공개적으로 시인했기 때문이었다. ‘메구미’ 양은 25년 전 니가타(新潟) 현에서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감쪽같이 사라졌던 중학교 1학년 여학생. KAL기 폭발테러범 김현희가 ‘메구미’양으로부터 첩보 교육을 받았다는 제보 이후, 북한에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며 일본인 납북 사건에 집요하게 매달려온 일본 정부의 끈기가 마침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자국민들의 사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안전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는 나라. 그래서 조금이라도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치면 온 열도가 열병을 앓듯 들끓는 나라. 하지만 그런 일본이기에 대북 문제에서 불거져 나오는 온갖 악재들은 평생 짊어져야 할 자신들의 업보(業報)라는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민간인 납치의 원조이자 가해자는 언제나 일본이었다. 그것도 북한처럼 십 수명 정도가 아닌 대규모 수준으로 신라인과 고려인, 조선인과 한국인들을 마구잡이로 납치해 갔다. 동아시아 역사가 개진된 이래, 중국과 한반도는 물론, 인도차이나 반도의 해안 주민들에게 왜구로 대표되는 일본인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늘과 땅 모두 험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의 끝에 살며 성정(性情)이 광폭하기만 한 왜구는 호전성과 잔인함에 있어 북유럽의 ‘바이킹’이 무색한 해적들이었다. 왜구의 ‘구’(寇)자가 약탈을 일삼는 도적떼라는 뜻에서 보듯, 그들의 주된 악행은 노략질에 있었다. 그런 왜구들이 한반도의 해안가를 유린하며 저질렀던 단골 만행이 바로 민간인 납치. 더욱이 이러한 납치극은 세기를 거듭할수록 정도가 심해져서 나중에는 중앙 정부조차 대규모 납치에 동참하게 된다. 바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해 한반도에서 끌고 간 10만여 명의 조선 백성들이 그 산 증인들이다. 그랬기에 토요토미(豊臣) 정권을 타도한 도쿠가와(德川) 막부가 화친과 통상 재개를 요청했을 때, 조선에서 내걸었던 첫 번째 조건 역시 납일(拉日) 조선인들의 조속한 귀환이었다.

그로부터 400년이 흘러, 역사는 정반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열도에서 일본인들이 감쪽같이 증발하는 사건이 종종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북한이 배후자로 지목되는 ‘역사’(逆史)가 시작됐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런 북한의 모습이 비단, 민간인 납치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일본의 지난날과 놀라우리만치 닮아 있다는 것.

지난 2003년. 미녀들로만 구성된 북한의 응원단이 한국을 찾은 적이 있었다. 방문 장소는 하계 유니버시아드 올림픽이 열리고 있던 대구. 당시, 302명으로 이뤄진 대규모 북한 미녀 응원단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5천만 국민들의 관심사였다. 그런 한국인들을 환상으로부터 깨어나게 했던 일이 대회 막판에 있었으니 다름 아닌 김정일 장군 초상화 사건이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와중에 길가에 걸린 김정일 장군 초상화가 비에 젖는 것을 본 북한 아가씨들이 신경질적으로 울고 불며 발작을 일으켰던 것이다.

70년 전 일본 역시, 지금의 북한 모습 그대로였다. 황궁 앞의 다리 사진만 보고도 절을 할 정도로 공경해 마지않는 존재가 천황이었다. 어버이보다 소중하고, 하늘보다 높은 대상. 그랬기에 라디오를 통한 천황의 항복 선언은 일본 국민들에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비극이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런 천황 숭배가 단지 백성들의 눈물과 경배만을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렇잖아도 지진으로 화재가 많은 일본에서 벽에 건 천황의 사진이 탈까 봐 불붙은 교사(校舍)로 뛰어들다 소사(燒死)한 교장과 학교 선생님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해마다 내려오는 천황 칙서를 군중과 부대원들 앞에서 읽다가 잘못 발음하는 바람에 자결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천황을 위해 전쟁터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은 그 수가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모두 군국주의 광풍 속에 국가로 대표되는 한 사람을 위해 살다 간 슬픈 인생들이었다. 그래서일까? 과거 자신이 내보였던 광기(狂氣)를 현재의 북한에서 발견하는 일본은 더더욱 북한의 도발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천황이 하사한 술을 마시고, 미국 항공모함에 뛰어든 게 가미가제 전투기의 일본이라지만, 온 국민이 헐벗어가며 만든 미사일을 일본 열도 위로 날려버리는 것 또한 북한이다. 그런 북한이 미사일이라도 쏠라치면 온 일본은 그야말로 난리다. 더욱이, 첨단 과학 기술이 태풍과 해협이라는 자연적 방어막을 걷어내면서 오는 불안감은 상대가 북한이라는 사실과 함께 더욱 큰 공포로 다가온다. 물론 이면에는 군사 대국을 향한 당위성 확보의 과장도 있지만, 실제 북한인과 북한에 대해 느끼는 일본의 공포는 과거, 한반도가 왜나라 일본에 느꼈던 공포와 다를 바가 없다.

생각하면 빨간색을 즐겨 쓰는 것에서부터 인민복이나 다름없는 제복을 즐겨 입는 것까지 일본과 북한은 여러모로 ‘형제 국가’다. 동아시아에 위치해 있음에도 유교라는 종교보다 신토(神道)와 공산주의라는 종교로 무장하고 있는 것이나 조직과 국가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삶 또한 그러하다. 이웃국가들과 화목하지 못해 분란을 자주 일으키고 주변은 상관치 않는 독자적인 행보 탓에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것에서도 그러하며, 폐쇄적이고 자국의 이익만 챙기려는 태도 역시 대동소이하다. 더욱이 살아있는 신에 대한 충성도 경쟁에서 서로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점도 무시하기 힘들다. 그러고 보면, 양국의 국경일 가운데에서 천황과 지도자 동지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인상적이다. 북한의 경우에는 10일 가운데 2일이, 일본은 15일 가운데 5일이 수령 동지와 천황에 관한 국경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예수와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은 경축해도 세종대왕이 태어난 날은 기념하지 않는 게 우리 정서다.

김일성 유적을 참배하고 김일성 탑 앞에 방문해야 하는 북한이나, 황궁을 방문하고 신사에서 참배해야 하는 일본은 꼴과 모양에서 합동이다. 더욱 기이한 사실은 일본을 누구보다 미워하는 북한의 현재가 과거의 제국주의 일본과 판박이라는 것. 해서, 김일성과 김정일이 꿈꾸었던 사회가 과거, 아니 현재의 일본일지도 모른다는 상상 역시 조심스레 힘을 받는다. 모두가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가운데 당사자는 신의 위치에 군림하며 국민의 추앙을 받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을 아우로 둔 우리네나, 과거의 자신을 북한에서 보는 일본이나 얽히고설킨 인연이 범상치만은 않다.

 

 

 

 

 

 

 

 

 

 

사진 1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 군부는 보다 체계적인 징발을 위해 ‘국민근로훈련소’란 기관을 설치, 젊은이들을 징집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국민근로훈련소’ 입소식에서 일본 젊은이들이 황궁을 향해 절하고 있는 모습. (이미지 출처: 야후 재팬)

 

 

사진 2

평양 만수대의 김일성 동상에 참배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 열도에 천황이 존재한다면 한반도 북부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자리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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