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내 생애 책 한권] 나를 한국사 연구로 이끌어 준 책이태진 선생의 『한국사회사연구』(1986, 지식산업사)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2.04.14  13:34:3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대학에서 공부하는 시기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학창시절이 될 것이다. 나는 학창에서 배우는 시절에 필연적으로 자신의 앞길과 깊이 연결된 책과 만나게 마련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지난 시절 많은 선배들이 그리했고, 후배들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떤 책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칠 터이지만, 다른 책은 수업시간을 통해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아래에서 소개하는 책은 대학의 수업시간을 통해 알게 됐고, 지금까지 내 주변 가까이에 머물러 있다. 한국사를 연구하는 지금의 내 모습으로 이끌어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벌써 오래전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일상적으로 해야 할 주된 일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동안 읽었던 책 가운데 몇몇 책들은 지금도 꺼내서 다시 살펴보곤 한다. 책을 읽는 것은 결국 필자의 주장과 속마음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책은 읽을 때마다 각각 다른 특별한 느낌과 오묘한 깨우침을 전해주곤 한다. 아직도 그 책의 진면목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 끝내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옆에 꺼내놓은 이태진 선생의 『한국사회사연구』(1986, 지식산업사)가 나에게 그러한 책이다.

1989년 당시 나는 한국사회제도사라는 전공과목을 수강하면서 ‘신라 촌락문서’를 새롭게 조망하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이런저런 참고문헌을 찾아서 읽다가 󰡔한국사회사연구󰡕에 실린 ‘신라 촌락문서’를 검토한 논문을 읽게 됐다. 한자 자전을 찾아가면서 가까스로 읽어나간 그 논문의 주요한 내용은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커다란 나무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한동안 휩싸여 있었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한국 사회사의 여러 장면과 관련된 많은 풀어야 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렇게 제기한 문제들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해답을 찾아 나가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문제 제기와 해답제시를 추상적인 차원의 논리적 설명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방대한 역사 자료 속에 잘 보이지 않게 감춰져 있는 역사상을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바꿔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역사가들이 역사 자료에서 찾아내기를 갈망하는 역사적 사실이 고차원적인 방정식의 난해한 풀이과정에서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단순하게 맞물린 관계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쳐주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깨우침을 바탕으로 이 책을 전투적인 책 읽기의 대상으로 삼았다. 날카롭게 벼린 칼로 살코기를 저미듯이 이 책의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뒤집고 파헤치면서 나는 난생처음으로 한국사 연구의 진면목을 살짝 맛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디고 무딘 칼이었음이 분명하지만, 나 스스로 다른 사람의 글에 분석의 칼날을 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첫경험이었다. 이러한 첫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대학에 들어온 이후 최초로 1차 사료를 바탕으로 나만의 해석을 덧붙인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맛보기 시작한 역사 탐구의 뇌쇄적인 감미로움은 오래도록 입안에서 감돌았다. 역사 관련 책을 읽어나가면 나갈수록 더욱 역사적 탐구를 갈망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나는 대학원에 진학해 한국사 그중에서도 농업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농업사 연구의 중요성을 깊이 되새길 수 있었다. 또한, 농업기술의 변화와 발전을 사회변동과 연관시켜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게 됐다.

『한국사회사연구』(가 세상에 나온 것은 1986년의 일이다. 한국사회사연구라는 책 제목 아래에 ‘농업기술 발달과 사회변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리고 이 부제에 걸맞게 표지 하단에 농경문(農耕文) 청동기(靑銅器)의 부분 사진이 들어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당시까지 작성한 연구논문들을 뚜렷한 연구시각에 따라 하나의 전작(全作) 형태로 모은 것이다. 저자는 1970년대 초반 이래 조선 유교사회의 역동성을 살피는 연구를 줄기차게 진행했고 또한 사회변동에 미치는 농업기술의 발달이라는 요인을 같이 검토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라촌락문서와 통일신라의 촌락지배, 고려 시대 향도(香徒)의 구성과 성격 등을 앞부분에서 다뤘다. 그리고 16세기 동아시아 전체사의 커다란 면모를 제시한 글과 건경직파(乾耕直播), 수차(水車) 보급 등을 다룬 글도 수록했다.

이 책은 조선 유교사회가 지닌 역동성을 살피려는 저자의 끊임없는 연구 작업의 소산이다. 조선사회에 미친 유교의 폐해만 부각되고 있던 1970년대 초에 저자는 16세기 유향소(留鄕所) 복립(復立) 운동을 살피면서 조선 사회에서 성리학이 자리를 잡는 과정이 지닌 사회적 배경을 정리했다. 조선 초기 유교사회의 특성을 성리학적 사회질서로의 재편으로 정리하는 저자의 연구시각은 계속해서 천방(川防)관개와 사림세력의 경제적 배경을 살피는 연구로 이어졌고, 연해 지역 언전(堰田) 개발과 척신세력의 관계를 살펴봤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조선 초기 정치세력이 갖고 있던 경제적 배경의 커다란 그림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사림파의 향약(鄕約) 보급운동을 다루면서 조선 초기 성리학적 향촌사회 질서의 특색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이러한 연구들은 성리학이 지닌 철학적 속성뿐만 아니라 사회운영의 이념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었다. 즉 16세기 조선 사회에서 성리학이 갖고 있는 중요한 기여를 ‘사회질서의 재편’이라는 점에서 찾은 것이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 책이 갖고 있는 또 다른 특색은 사회변동을 추동하는 주요한 요인의 하나로 농법의 변동, 농업기술의 발달을 설정하는 연구시각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또한 이를 연구내용에 확실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의 연구시각은 책의 목차에 보이는 휴한농법하의 사회구성, 집약농업기술의 실현과 사회변동 등의 표현에서 분명하게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2008년에 증보판을 출간했는데, 1986년에 나온 책에 두 편의 논문을 더 추가한 것이었다. 17, 18세기 향도(香徒)의 분화와 두레의 발생을 논증한 글과 조선 후기 양반사회의 변화에 대한 글이 그것이다.

내가 조선시대 농업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된 책이 바로 󰡔한국사회사연구󰡕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농업사연구를 계속해나가면서 어떻게 하면 이 책의 논지와 다른 나만의 논리적 설명 틀을 조금이라도 세워볼 수 있을까 고민거리를 안겨준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조선시대 사족을 중심으로 지배질서가 형성돼 있던 향촌사회를 풍성하고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구절구절에서 한국사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시야를 넓힐 수 있는 수많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앞으로도 많은 한국사연구자들이 이 책을 손에 들고 고생할 것임에 틀림없다.

/ 염정섭(사학과‧부교수)

   

한림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후보자 정책 공청회, 올해도 아쉬움 남아
2
[보도] 잊지 말고 신청하자, 동계 계절학기 수강신청
3
[보도] 너의 관심사를 보여줘! ‘한림 덕후 파이터’ 대회
4
[보도] ‘한강전’ 추위도 날린 열정…종합우승은 놓쳐
5
[보도] 유학생ㆍ재학생 모두 함께한 김장봉사
6
[보도] 봉사와 함께한 1년 ‘우수봉사자 선발대회’ 열려
7
[선거특집] 쏟아진 256개 공약, 다양해진 선택지
8
[선거특집] 단과대 경선 토론회, 치열한 공방 이어져
9
[시사] 빈살만 방한…국내 기업과 ‘네옴시티’ 계약 체결
10
[시사] ‘화물연대’ ‘학비노조’ 등 노동계 잇단 총파업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혜수(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