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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책 한권] 젊은 등산가의 일기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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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02  10: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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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에 읽었지만 아직도 몇몇 구절이 머리에 떠오르는 책이 있다. 쟝 꼬스트의 「알피니스트의 마음」이다. 아마 많은 독자에게는 생소한 책이리라. 산에 흠뻑 빠져 있던 무렵 어느 선배의 소개로 문고본인 이 책을 접하게 됐다. 너무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이 많아 책을 펴자마자 단숨에 읽고는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 몇 번이나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쟝 꼬스트는 1904년 프랑스의 리용시에서 태어났다. 리용시 시립병원의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바쁜 틈에도 1923년부터 4년 동안 알프스의 14봉을 초등반했다. 1926년 24세가 되던 해 7월 27일 그때까지 아무도 오르지 못했던 험한 라 메이주 북벽을 친구와 함께 오른다. 그날 오후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은 정상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시간 후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고 다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꽃같이 젊은 나이에 산에서의 죽음이란 너무나 슬픈 일이다. 그의 부모님은 생전에 꼬스트의 산행일기와 그가 기록해 둔 단상들을 모아 유고집을 출판했다.
  
이 책을 읽었던 그해 겨울 빙폭을 오르던 두 친구가 실수로 추락을 했다. 영안실로 친구를 옮기면서 본 얼굴은 마치 자는 것처럼 편하게 보였다. 이틀 밤 동안 너무 슬프게 우시던 친구 어머니의 울음소리만이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그 후 이 책을 읽을 때는 마치 친한 친구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등산이 위험한 것이라고 단언하는 까닭에 내 마음은 오히려 빨리 그 산행을 해치우고 싶어진다. 나는 곤란함을 사랑한다. 나의 의지는 어떠한 곤란에도 뒤돌아서지 않는다. 그것은 제일 위험한 일에 부닥치고 그 위험을 극복했을 때 나는 참된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손쉽게 내 것이 되는 것은 관심이 없다.”
“위험한 루우트를 어택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는 나는 본능적으로 겁을 느끼기도 하나 그 루우트를 어떻게 하든 꼭 돌파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거리낌 없이 그 위험에 부닥쳐 본다. 최초의 몇 발은 이러한 용맹에서 대담한 등반을 하기 쉬우나 곧 냉정한 침착이 되살아온다.”
“보람된 큰 등산,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바다. 그러나 그렇다고 작은 등산이 조금도 매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비록 내가 산에서 죽었다손 치더라도 슬퍼하지 말아 주게. 오히려 '저놈은 제 뜻대로 죽었으니까' 라고 말해주게.”
  
쟝 꼬스트가 수많은 산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가 알피니즘의 정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1920년대와 1930년대는 마터호른이 초등된 후 많은 등반가들이 험한 알프스의 북벽을 초등하기위해 모험에 나섰던 알프스 북벽시대로 알피니즘이 꽃피던 시기였다. 알피니즘은 한계에의 도전이며 미지의 영역을 추구하는 행위다. 무모한 등산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산행을 계획하고 예상되는 위험을 안전하게 돌파하는 것이다. 또한 산행으로부터 무언가의 보상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순수함을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꼬스트의 알피니즘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구절도 눈에 익숙하다.
  “나는 필요 없는 모험만을 위한 등산을 가장 싫어한다.”
  “나는 날이 갈수록 산에 열광적으로 되어간다. 만일 내가 알피니즘을 열애하듯이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면 나의 공부도 문제없겠는데!”
  “아냐! 나는 명예를 바라고 등산을 하는 것은 아니네. 등산이란 참으로 즐거워서 할 뿐이네. 이것은 나로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스포츠이며 또한 가장 성미에 맞기 때문일세. 또한 산의 아름다움에 반했기 때문에 등산을 계속하는 것일세.”
  “등산의 즐거움이란 그 정상보다는 오히려 그 등반 속(과정)에 있는 법이다.”
  
몇 년 전에 히말라야의 8천 미터 이상 봉우리 14좌를 누가 먼저 오르는 가로 한국의 산악계가 논란에 휩싸였다. 상업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어떻게 하든 정상에 빨리 올라야 한다는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8천 미터 이상인 봉우리에 오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정상에 섰다는 것도 나름의 커다란 가치가 있겠지만 순수함을 추구하는 알피니스트의 입장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럴 때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마키아벨리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든 문제 삼지 않겠다는 생각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서도 마키아벨리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을 흔히 접하게 된다. 특히 신문기사나 방송의 뉴스시간을 통해서 말이다. 어떤 사람은 마키아벨리와 같은 사람이고, 누군가는 장 꼬스트 같은 사람으로 나뉘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아마 우리 본성에는 이 두 가지 성향이 다 존재한다고 해야겠다. 다만 환경에 따라서, 개인의 특성에 따라 한쪽 성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너무나 마키아벨리적인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기 때문에 순수함을 추구할 수 있는 마음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회의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 이제는 산을 그만둬야 할까 하고 고민하는 친구에게 쟝 꼬스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산을 그만둔다고? 좀 말을 들어 보게나. 언제까지나 젊고 보람되고 강장하기 위해 정신을 쉬고 몸을 조절하기 위해 있어서는 체력의 단련과 스포츠를 해야만 되네.”
  “문화인에게 있어 산만큼 흥미진진하고 건전한 스포츠가 또 어디에 있겠나? 예술, 과학, 스포츠의 삼자를 총합한 등산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 보다 즐겨야 할 소중한 것이네.”
  
나는 사십 대 후반이 되면서 암벽등반과 같이 힘이 드는 산행은 그만뒀다. 하지만 요즘도 가끔 꿈을 꾼다. 바위에 부딪히는 래더 소리가 너무 상쾌하다고 생각하면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암벽코스를 오르는 모습을. 언제가 시간이 나면 다리와 팔에 근육도 더 붙이고 지구력도 늘려 큰 산에 가보고 싶다. 세월이 간다고 젊은 날의 산에 대한 열정이나 등산의 기쁨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 김종식(경영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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