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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책 한권] 워즈워스의 혁명과 자연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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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09  11: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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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책 한 권’은 제목이 너무 무겁다. 한 권의 책으로 삶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나에겐 신화일 따름이다. 물론, 굳이 뽑으라면 그런 책이 없지도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성경이나 코란 정도면 평생을 의지하면서 살만한 깊이의 내용도 담고 있다. 사회과학 서적이라면 마르크스의 󰡔자본󰡕 정도가 아닐까. 특히, 문학은 다독이 중요하다. 문학 자체가 대화이니, 서로 비교하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지금까지 이 자리는 주로 사회과학 서적이나 소설에 대한 해설로 채워졌으니, 나는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시 ‘무지개’ 한 편을 소개했으면 한다. 엄밀히 말해, ‘무지개’는 저자가 붙인 제목이 아니다. 원래 시는 제목이 따로 없어 훗날 편집자들이 붙인 이름이고, 지금도 영어로 검색할 때는 보통 시의 첫 행을 따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로 찾는 게 빠를 것이다. 시는 모두 아홉 줄에 불과하니, 우리말 번역으로 전문을 다 읽어보는 게 좋겠다.


   하늘에 뜬 무지개 보니
      가슴이 뛴다.
   내 삶이 시작할 때도 뛰었는데,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다.
   나이 들어서도 그래야 하리니,
      아니면 죽는 게 나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매일 매일 자연의 경건으로
   엮이길 바란다.

  
이 시는 우선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직관이 감동으로 이어지는 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뛰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 시를 학생들과 함께 읽으면서 나는 늘 학생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한다. 나 자신 가슴이 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대답은 “지금까지 뛰지는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가슴이 뛰어야 할 것 같아요”라는 대답이다. 지금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미희 학생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쉬워 보이는 이 시도 갑자기 어려움에 봉착한다. 자연현상의 경이를 다루는 시에 왜 갑자기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구절이 나올까? 물론, 이를 어린 시절의 순수성이 어른의 타락보다 더 가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해도 큰 지장은 없겠다. 그러나 우리가 말로는 그렇게 말해도 실제로는 어린아이를 미성숙한 존재로 바로 보고, 필요하면 훈육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부분은 상당히 급진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워즈워스의 생애를 알면 이런 부분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젊은 시절의 워즈워스는 뼛속까지 공화주의적 이념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당대에 발발한 프랑스혁명을 열렬하게 지지했는데, 프랑스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의용군을 조직해 영국의 왕정을 전복하려 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워즈워스의 공화주의적 급진성은 점차 퇴색되고, 나이 들면서 보수주의자로 변모한다. 동시에 그의 시 역시 자연에 내재한 경건한 힘을 찬양하는 자연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워즈워스의 이러한 변모의 이유로 상당수 비평가는 프랑스혁명의 폭력성을 거론한다. 혁명은 처음에는 온건파들이 이끌었지만, 로베스삐에르 등 급진파가 집권한 이후 만 명 이상의 사람이 반혁명분자로 찍혀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워즈워스는 혁명의 폭력성에 환멸을 느꼈고, 그 결과 새로운 역사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자연과 인간의 내면 속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혁명가 워즈워스가 끝나면서 낭만주의자 워즈워스가 탄생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하나 남는 게 있다. 젊은 시절 “뼛속까지” 지지했던 격정이 나이가 든다고 완전히 사라질까? 게다가, 이념은 쉬 변할지 몰라도, 정서는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워즈워스에게 생각은 변했지만,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공화적 이념이 원형이었던 셈이다. 자신의 상상력의 원점을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둔 시인이 자연에 몰입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이 루소주의적 구절이 터져 나온다. 여기에는 당대의 부패한 구체제를 전복하려 했고, 격세유전으로 전해진 천년왕국을 세우기 위해 프랑스 혁명에 온몸으로 동참했던 시인의 정서가 깊이 배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훗날 워즈워스의 변신에 대해 다음 세대의 시인이었던 셸리(P. B. Shelley)나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은 혁명의 대의를 배신했다고, 이제 더 이상 자기들의 등대가 아니라고 통탄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이 시가 보여주듯 워즈워스는 공화주의적 이상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상황의 변화로 억압된 그의 열정은 이렇게 서정시의 행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터져 나온다. 그가 죽을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던 장편 서사시 󰡔서곡󰡕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비록 그가 죽고 난 뒤에 출판됐다 하더라도 그냥 지나갈 일은 아니다. 혹시, 위 시가 마음에 들어, 워즈워스 시를 읽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이번 방학 중에 개설되는 ‘영문학개관 II’를 들어보기를 권한다.

/송승철(영어영문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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