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가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면서 2~3년 전부터는 이 주제에 관한 토론과 논쟁, 세미나와 연구, 도서출판이 전국적으로 활발해졌다. 복지 이슈는 초, 중학교 학생들에게 “빈부의 차이를 따지지 말고 누구에게나 무상급식을 해주자, 말자” 하는 이슈에서 비롯되었는데, 여야 정당들 모두 복지가 표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너도나도 ‘복지를 하겠다’, ‘우리나라를 복지국가로 만들겠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복지를 이슈로 떠오르게 만든 더 깊은 원인은 1997년 IMF 사태로 인한 사회 양극화, 불행과 고통과 불만의 심화, 누적에 있다고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물론 한국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고도화에 따른 성장의 한계와 위기상황이 더 거시적으로 봤을 때의 근본원인이라 하겠지만.

어쨌든, 복지국가를 둘러싼 국민적인 토론과 논쟁의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은 한 2년 전쯤 북유럽형의 조세기반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하겠다고 강령을 바꾸고 대외적으로 천명하였다. 여기에 대해 수세적이고 미온적인 입장을 취해 오던 새누리당도 차츰 복지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였고,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은 20대 청년 학생 그룹들의 ‘반값등록금 요구’였다. 결국 복지이슈는 대북정책과 함께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되었고, 새로 탄생한 박근혜 정부도 복지확대와 복지재정을 마련하는 일을 커다란 숙제로 떠안게 되었다.

박근혜 대선후보는 대학 등록금 인하를 약속했으며, 5세 미만 유아보육을 무상으로 하겠다고 해 실현하고 있다. 사회 양극화에 대한 대책으로 중산층을 보호, 육성하는 정책을 모색하고 있으며, 복지에 들어가는 비용조달을 위해 ‘지하경제의 양성화’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납세의무를 피해 가는 지하경제, 즉 탈세, 뇌물 수수 등으로 인한 세수누출의 규모는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액 GDP의 1/4에 이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에 커다란 비중을 두는 이유도 IT 산업분야를 성장동력으로 삼아 일자리를 창출하고 조세수입을 늘리려는 데에 있으며, 복지를 위한 재정조달과 연관되어 있다.

복지국가를 둘러싼 쟁점은 사실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모든 쟁점을 관통하는 핵심쟁점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핵심쟁점은 바로 우리나라가 장차 어느 쪽으로, 즉 북유럽 쪽으로, 혹은 미국 쪽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좋겠는가 하는 데에 대한 국민의 정서와 생각, 바로 그 안에 있다. 2004년 한겨레신문이 창간기념으로 조사한 바로는 “응답자들은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으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39.2%)보다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44.8%)를 선호했는데, 20~30대와 직장인, 대학생, 민주노동당 지지자,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특히 그랬다. 반면 한나라당 지지자는 ‘미국식’(46.8%)을 ‘북유럽식’(35.4%)보다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과 정서의 차이는 오늘날까지 그 기본이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가 장차 북유럽(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쪽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대개 1) 북유럽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복지국가 아니다, 2) 복지국가를 하려면 - 북유럽처럼 - 국민이 낸 세금을 기본 재원으로 삼아 국가가 보편주의적으로, ‘모든’ 국민의 복지(행복과 안전)를 책임져야 한다, 따라서 세금을 늘려야 한다, 3) 복지의 확대는 공공부문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는 등의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반면에, 미국은 흔히 ‘자유주의 복지국가’라 부른다. 국민복지의 대부분을 시장과 개인들의 능력에 맡기고, 국가는 빈곤층, 저소득층을 비롯한 취약계층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선에서 복지정책을 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쪽으로 가길 원하는 경향을 지닌 국민은 다음처럼 북유럽 쪽 경향과 반대되는 생각과 정서를 지닐 것이다. 1) 우리나라도 아직 미흡하기는 하지만 복지국가는 복지국가다, 2) 국가는 가급적 세금을 올리지 말고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취약계층)을 선별해 그들에게만 복지혜택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 능력 있는 사람들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불합리하다, 3) 경제성장으로 일자리가 늘어나고 국민소득이 늘어야 복지에 필요한 재원이 생겨나므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우선이며, ‘선성장 후분배’의 원리가 맞다.

/ 유팔무 (사회ㆍ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