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이하 생략).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는 그의 시 <미라보 다리>에서 파리의 세느강을 그렇게 노래하고 있다. 세느강을 처음 보는 사람은 곧 실망하기에 십상이다. 강폭도 좁고 별로 볼품도 없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세느강은 그리 멋있는 강은 못 된다. 차라리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 시내 한가운데를 흐르는 가론강이 더 멋있고 아름답다. 규모로 보아도 우리 한강보다는 한참 작다. 그렇다고 강원도 동강처럼 물이 맑은 것도 아니다.

그런 별 볼 일 없는 세느강을 파리 사람들은 어떻게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만들었을까? 그건 자연적으로 흐르는 강에 역사와 문화의 옷을 입혀 신비롭고 흥미 있는 스토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빅토르 위고는 연극과 영화로 제작되어 대히트를 친 <레 미제라블 -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가슴 저린 소설로 세느강을 끌어들였고, 이베뜨 지로는 <미라보 다리>를 감미로운 샹송으로 불렀으며,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퐁네프의 연인들>로 세느강의 휘황찬란한 야경을 멋지게 영상화했다. 그 밖에 수많은 화가가 세느강을 아름다운 화폭에 담았으며,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세느강을 찬미했다.

그렇게 세느강은 자연과 역사 그리고 문화와 예술의 스토리가 합쳐져서 파리를 대표하는 문화관광 상품이 된 것이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세느강의 명성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파리에는 세느강과 멋있는 다리 그리고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다. 루브르박물관도 있다. 루브르는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의 얼굴이자 자존심이다. 자신들이 세계 문명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만방에 과시하고 싶어서 만들어낸 걸작이 바로 이 박물관이다. 파리를 방문하는 사람은 다른 것은 다 빼먹어도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앞에 가서 증명사진이라도 찍고 와야 한다. 파리에서 루브르는 그런 존재다.

루브르는 드농관(Denon), 리슐리외관(Richelieu), 쉴리관(Sully)으로 구분되어 있다. 루브르는 소장품이 엄청나게 많아서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다섯 시 반까지 이틀을 죽어라고 부지런히 걸어 다녀야 겨우 모두 볼 수 있다. 이건 내가 실제로 시험을 해 본 결과다. 그것도 작품 해설을 읽으면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저 왔다 갑니다” 하고 눈인사만 하고 지날 갈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나절 정도만 루브르에 시간을 낼 수 있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그런 방법은 효과적이지 못하다. 학생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관람 방법은 매표소 앞에 있는 정보센터에서 나누어 주는 한국어 관람 안내서를 손에 들고 관심 없는 작품은 건너뛰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만 골라 보는 것이다.

나는 일단 전체적으로 한번 둘러보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만 골라서 집중적으로 감상했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실명으로 눈이 잘 안 보이는 화가 지망생 여주인공 미셸(줄리엣 비노쉬)이 손으로 만지면서 촉감으로 그림을 ‘보는’ <렘브란트 자화상>, 나폴레옹(1세)이 황제의 관을 수여하기 위해 대관식에 참석한 교황(피우스 7세)의 체면을 무참하게 구겨버리고 자신이 만천하의 황제임을 스스로 선언하는 모습을 그린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 (이 작품과 크기와 내용이 매우 흡사한 <독수리기 수여식>은 베르사이유 궁전에 전시되어 있다.), 그림과 조각을 포함한 루브르의 모든 여인들 중에서 가장 몸매가 좋은 <밀로의 비너스> 등이다. 만인의 연인 <모나리자>에게서는 유리 상자에 갇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명성에 걸 맞는 감동을 받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유리관에 갇혀 있어 박제가 되어버린 석굴암 석불상을 보는 그런 답답한 느낌이었다.

또한 고색창연한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물과 신비롭고 경이로운 이슬람 모자이크 예술에 흠뻑 빠져 들었다. 실크로드의 영향을 연구할 때 그 연결 고리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리 제품도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몇 점 밖에 없는데 여기에는 수백 점이나 있다. 물론 작품 수준도 매우 우수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인류문화유산에 감동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강대국들이 이렇게 엄청난 유물을 약탈해오면 약소국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동정심도 함께 일어난다.

기차역에서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오르세미술관에서는 아침 아홉 시 반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꼬박 하루를 보내고도 미술관을 나가기가 싫었다. 그 정도로 마음에 드는 그림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이 미술관이 우리가 좋아하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집중적으로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교 때 한 형제라고 생각했던 마네와 모네의 그림도 좋았고, 나와 종씨라고 생각했던 고흐와 고갱의 그림에도 새삼스러운 감동을 받았다. 피사로와 시슬리의 풍경화는 우리가 미술 시간에 많이 모사해서 그렸던 친근한 그림들이다. 내가 정말 좋아해서 대학교 때 모사했던 르노와르의 소녀들도 직접 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그 밖에도 세잔 드가 로트렉 쇠라 시냑 등의 명화가 많이 걸려 있어 보는 이의 눈을 황홀하게 만든다. 화집에 실린 그림을 보는 느낌과 그림을 직접 볼 때의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이상하게도 밀레의 <만종>과 <이삭 줍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큐레이터에게 그 사유를 물어 보았더니 <이삭 줍는 사람들>은 중국 상해로, <만종>은 파리 퐁피두 미술관으로 출장을 가셨단다. <이삭 줍는 사람들>은 퐁피두 미술관에 가서 서울에 이어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만종>이 왜 퐁피두 미술관으로 출장을 갔는지는 거기 가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갔을 때 퐁피두에서는 살바도르 달리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약 260여 점의 대표작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어서 파리의 미술 애호가들이 엄청 몰려들었다. 그 추운 날씨에 우리 부부도 입장하는 데만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런데 달리의 작품 중에 <만종>을 응용한 작품이 있었다. 그래서 원작과 응용작을 대비시키기 위해 달리 작품 옆에 밀레의 원작을 전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정말 오르세의 그림들은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그림들이 많아서 훨씬 더 정감 있게 내게 다가왔다. 그래서 좀 고리타분한 분위기가 나는 박물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르세가 더 좋을 수도 있다. 루브르와 오르세는 서로 자신의 작품들을 두고 경쟁이라도 하듯 세느강을 사이에 두고 비스듬하게 마주 보고 있다.

/ 고태규(경영ㆍ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