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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유럽 문명을 떠받치는 반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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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짜락 짜짝 쿵짜작.” “쿵짜락 짜짝 쿵짜작.” 멀리서 시끌벅적한 밴드 소리가 들려온다. 세비야 알까싸르성에서 사진을 찍다가 대성당 앞거리로 뛰어 나갔다. 눈물을 흘린다는 성모 마리아가 바로 내 앞을 지나가고 있다. 부활절 행사의 거리 행렬이다. 어젯 밤 내가 세비야 시내 작은 교회에서 우연히 본 그 예수상과 성모상이 지금 세비야 대성당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KKK(Ku Klux Klan 미국 백인우월주의자 단체) 단원들이 입는 하얀 옷에 하얀 고깔모자로 눈만 내놓고 온 몸을 가린 학생들이 그 행렬을 인도하고 뒤에서는 악대가 드럼을 연주하면서 따라가고 있다. 부활절은 다음 주이지만 행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거리에는 온통 사람들의 물결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온 세비야 시민들이 모두 거리로 뛰어 나온 듯하다. (세비야 또는 세빌리아는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카르멘>으로 유명한 도시로 마드리드 북쪽에 있는 ‘세고비아 기타’로 유명한 세고비아와는 다르다.) 대성당 주변의 거리란 거리는 모두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하다. 역시 스페인의 종교 열기는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아직도 투우와 플라맹코를 사랑하는 그 사람들의 피 만큼이나 뜨겁다.
유럽의 부활절 행사는 남다르다. 우리의 부활절 행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개별 교회 단위로 간단한 행사를 치루는 우리와 달리 유럽의 부활절은 온 도시의 교회와 시민들이 다 동원되어서 거리 행진을 하고, 미사나 예배를 드리고, 여러 가지 행사를 벌인다. 예수가 순교할 때 당했던 고난을 스스로 체험하면서 이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부활절을 이해하지 않고는 기독교를 이해하기 어렵고, 기독교를 이해하지 않고는 유럽 문명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가 배웠던 역사, 종교, 문화, 예술 등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유럽 사회에 기독교가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서기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내려 기독교를 공인하면서부터이다. 물론 기독교의 뿌리인 유대교는 기원 전 13세기경부터 시작되었고, 예수가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라고 선언한 서기 1년 이후 일반인 사이에는 이 종교가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베드로나 바울 같은 순교자도 많았고, 카타콤 같은 지하 공동묘지에서 몰래 신앙생활을 하기도 했다. 불교나 이슬람교도 마찬가지이지만 항상 위정자들은 국가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통치 이념으로 종교를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도 그런 이유로 로마의 국교가 되었으며, 당시 로마는 거의 전 유럽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급속도로 전 유럽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11세기에서부터 종교개혁(1517년-1555년) 이전까지 기독교의 권위와 권력은 정점에 다다르게 된다. 십자군 원정(1차 원정 1096년 - 7차 원정 1270년)과 카놋사의 굴욕(1077년)이 기독교의 최고 수장인 교황의 권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무슬림 무리로부터 성지를 회복해야 한다는 교황의 말 한마디에 당시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의 왕이나 황제들이 군대를 동원하여 머나 먼 중동의 예루살렘까지 성전을 치르러 가게 된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는 성직자 임명 문제로 교황(그레고리우스 7세)으로부터 파문을 당하자 교황이 머무르던 북부 이탈리아의 카노사성을 찾아가 눈이 쌓인 성문 앞에서 사흘 동안 맨발로 서서 사죄하고 간신히 파문을 해제 받았다. 이 두 사건은 유럽 사회에서 기독교의 권위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18세기 말 남부 프랑스의 향수 생산지인 그라스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 <향수>에서는 한 도시의 주교가 힘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영화에서 주교는 사법권까지 행사하여 살인자인 주인공 쟝 바티스트 그루누이(벤 위쇼)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지금도 유럽의 지방 소도시를 보면 성당보다 더 높은 건물을 보기가 어렵다. 그만큼 교회의 권위가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러나 지금 서유럽의 기독교는 신교와 구교 할 것 없이 모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천오백년 넘게 종교와 정치적으로 전 유럽을 호령하던 교황은 이제는 로마의 한 구석에 있는 바티칸(면적 0.44km²)에서 로마 카톨릭 기독교의 종교적 수장으로서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이번 여행 중에 많은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하나 같이 미사 참석자들이 거의 노인들 뿐이었다. 미사에 참석하는 젊은이들은 거의 만날 수 없었다. 일부 교회는 카페나 술집으로 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파리 소르본대학 앞에도 폐허가 된 교회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서 기독교 정신이나 의식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90퍼센트 이상의 유럽인들이 자신은 기독교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스페인 지방 도시에서 열리는 이런 광적인 부활절 행사를 보면 기독교가 얼마나 이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처럼 이들도 부활절 행사를 삶의 한 부분으로 ‘즐기고’ 있었다. 기독교의 본질인 예수의 부활을 하나의 축제로 승화시켜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집단 무의식’으로 그 축제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날 부활절 행사에서 느낀 것은 성모 마리아와 예수는 아직도 이들의 일상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 고태규(경영ㆍ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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