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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나를 돌아보는 길“자기 발로 자기가 걸은 만큼 목적지는 가까워진다. 그게 인생이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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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15  17: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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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피레네산맥이 안개에 젖어 있다. 샤갈의 그림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추적추적 내리는 눈비를 맞으면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걷고 있다. 저 무거운 짐을 다 지고 우비를 입고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소걸음이다. 우보천리(牛步千里). 자전거를 타고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으면서 올라가는 노인들도 있다. 이른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눈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영화 <미션>에서 자신이 노예 사냥할 때 쓰던 칼과 방패 등 무거운 짐을 끌고 거대한 이구아수 폭포를 넘어가려 온 힘을 다해 애쓰는 노예 사냥꾼 로드리고 멘도사(로버트 드니로)가 떠오른다. 그는 아내와 간통한 동생을 칼로 찔러 죽인 후에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참회하기 위해 가브리엘 신부(로버트 드니로)를 따라 이구아수 폭포 너머에 있는 과라니족 원주민 마을로 선교하러 따라나선 것이다.

이들 중에 멘도사처럼 큰 죄를 진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누가 이들을 걷게 만드는가? 어떤 힘이 이렇게 눈보라 치는 추운 날에 이토록 험난한 이국땅의 고갯길을 넘게 하는가? 어떤 절대자가 이들에게 저 황량하고 광활한 들판을 걷게 하는가? 산티아고 대성당에 잠들어 있는 야곱(예수의 12사도 중 한 명)인가? 아니면 나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어떤 명령인가? 그것도 아니면 저 하늘에 있는 어떤 절대자인가?

내가 까미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몇 년 전 SBS에서 방영된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프로그램 때문이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정말 감동을 받았고 나도 언젠가는 반드시 걸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래서 그 연습으로 시작한 것이 국토종단 도보여행이었다. 통일전망대에서 해남 땅끝 마을까지 약 800킬로미터를 주말을 이용해서 혼자 걸었다. 그 결과로 나온 책이 <주말을 이용한 국토종단>이다.

그런데 걸으면서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처음 느끼는 경험이었다. 10킬로미터 정도를 걸으면 그 이후부터 내 머리에서 명상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명상이라는 것은 조용한 절집이나 명상센터에서 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걸으면서도 명상이 된다는 것을 그 때 우연히 깨닫게 되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무도 없는 산길이나 들판 또는 바닷가를 나 혼자 걸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 왔는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등. 참 우스운 일이다. 주말마다 성당에 꼬박꼬박 나가면서도(아내의 강요 때문에) 참회는 안하고 맨날 미사 끝나면 점심으로 뭘 먹을까만 생각하는 사람이 걸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다니.

요즘 한국인들, 특히 아가씨들 사이에 까미노 열풍이 불고 있다. 2006년에 한국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브라질의 신비주의 작가 파울로 코엘류의 <순례자>가 그 열풍의 일등공신이다. 그 이후 까미노에 관한 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신문이나 잡지 기사 그리고 직접 까미노를 걸은 사람들의 여행기 덕분이다. 내가 자동차로 그 길을 답사한 사흘 동안에도 한국 사람만 일곱 명을 만났다. 아가씨 여섯 명, 중년 남자 한 명.

까미노는 ‘까미노 드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즉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까미노의 출발지는 모두 열한 개로 다양하지만 목적지는 하나다. 야곱의 시신이 안장되었다고 전해지는 산티아고 드 콤포스넬라에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이다. 실제로 나는 이번 자동차 답사 도중 여러 출발지에서 떠나온 순례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내 또래의 일본인 중년 부부, 미국인 중년 부부, 독일 청년 두 명, 프랑스에서 온 아버지와 아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온 아가씨 두 명, 바르셀로나에서 온 초로의 아저씨, 포르투갈의 포르투에서 온 여섯 명의 청년들 등.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에서는 학생 단체 순례자들도 만났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인솔하고 수십 명의 학생들이 함께 힘든 순례를 마치고 환희의 노래를 합창하고 있었다.

약 이천 년 전부터 시작된 끼미노는 원래는 잘못을 저지른 신부나 수도자들을 벌을 주기 위해 묵언으로 걷게 했던 길이었다. 기독교 성직자들을 위한 수행의 길이었다. 옷가지 몇 벌과 최소한의 음식만 가지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말없이 걸었던 것이다. 순례자들이 성직자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도 수도원에서 많이 운영했다. 지금은 오래 되고 기부금으로만 운영되는 시설이 많아서 낡은 알베르게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기독교 문화의 잔재가 이제는 훌륭한 관광 상품이 되어 전 세계에서 관광객과 순례자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 파울로 코엘류를 사십대 늦은 나이에 작가로 전업시킨 길, 서명숙씨가 제주 올레길을 만든 계기가 되었던 길, 인생에서 정말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길, 까미노는 우리 옆에도 있다. 꼭 스페인에만 가야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주 올레길도 있고, 지리산 둘레길도 있고, 일본 시코쿠섬의 오헨로길도 있다. 어디를 걷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무엇을 얻느냐가 더 중요한 건 아닐까?

/ 고태규(경영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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