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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 로마 문명에 대한 참된 사랑여행은 그 문명에 대한 사랑과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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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19  22: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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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여행의 중요한 의도는 육체적ㆍ도덕적 폐해를 치유하는 것이었습니다. (…) 다음은 참된 예술에 대한 뜨거운 갈증을 진정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전자는 상당히, 후자는 완전히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괴테는 1788년 1월 25일 카를 아우구스트 공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의 여행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니체가 하나의 ‘문화’라고 격찬했던 그 괴테도 우리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여행 목적을 가지고 로마로 떠났던 것이다.

괴테가 여행기를 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세계적인 대문호가 설마 여행기를 썼으려고. 분명히 썼다. 책 이름도 <이탈리아 기행>이다. 우리 도서관에서도 볼 수 있다. 나도 오랫동안 미루다가 유럽 여행을 시작하기 얼마 전에서야 읽었다.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제1권이 여행에 관한 내용이 많아 훨씬 재미있다. 제2권은 자기 저서 출판에 관한 내용이 많아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하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1권만 읽어도 충분하다.

괴테는 1786년 9월 3일에 여행을 시작하여 1788년 6월 18일에 여행을 마쳤다. 거의 22개월간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녔다. 괴테가 당시 문화 선진국이었던 이탈리아 특히 로마에 관심이 아주 많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8세기 말 유럽에서는 서구 문명의 기원으로서 로마 문명에 대한 탐구 정신과 ‘그랑투어(Grand Tour)’가 유행이어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 지식인들 사이에 로마 여행이 하나의 패턴이었다.

괴테의 로마 기행은 앞에서 말한 이유보다는 사랑의 도피 행각이었다는 호사가들의 평가도 있다. 괴테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새벽에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두고 있다. 괴테가 천하의 바람둥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다. 괴테의 여성 편력에 대한 글은 <괴테, 그리고 그의 영원한 여성들 - 안삼환, 2005년, 서울대출판부>를 참조하시라. 

괴테의 여행기는 정확한 여행 날짜에 따라 여행기를 썼다는 점에서 여행사에서 의미가 크다. 현장의 <대당서역기>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여행 기록에 날짜가 없어서 여행사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언제의 기록인지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반면에 혜초와 거의 동시대의 인물인 일본의 구법승 엔닌(圓仁 794-864)은 <入唐求法巡禮行記>에서 날짜는 물론이고 시간까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기록과 보존을 소중히 하는 일본 사람들의 단면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장의 <대당서역기>,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과 함께 세계 3대 동방 여행기라고 불리는 걸작이다. 나는 여기에 <대당서역기>를 빼고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넣고 싶다. 6하 원칙에 맞추어 여행 기록을 정확하게 서술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괴테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유명한 베로나(로미에와 줄리엣)와 베니스(베니스의 상인)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나 그의 작품에 관한 언급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당시에 이미 세계적인 대문호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괴테(1749-1832)가 같은 문인이면서 셰익스피어(1564-1616)보다 약 200년 뒤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의아스럽다. 괴테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모를 리 없고, 괴테가 가지고 다녔던 몇 권의 여행 가이드북(당시에도 여행 가이드북이 유행이었다)에도 분명히 줄리엣의 집이 소개되어 있었을 텐데. 지금도 줄리엣(동상)의 젖가슴은 엄청난 인파의 사랑(?)에 몸살을 앓을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사진 참조). <베니스의 상인>은 또한 얼마나 유명한 작품인가. 내가 문학평론가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괴테가 의식적으로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강한 경쟁심이나 싫어하는 감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화석 수집에 관심이 많았던 괴테는 여행 중에 괴상한 돌을 발견하면 열심히 채취하고 수집을 했다. 베수비오 화산에도 네 번이나 올라갔다. 서기 79년에 폼페이를 화산재로 덮어버려 순식간에 멸망시켰던 그 화산이 괴테가 폼페이를 방문한 해에도 폭발하여 괴테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괴테는 로마에 장기 체류하면서 그림 공부도 열심히 했다. 개인 교습도 받았다. 독일로 보낸 편지에서는 문학을 할 것인가 그림을 그릴 것인가로 진로에 대해서 고민할 정도로 그림에 관심과 소질을 보였다. 여행 중에도 스케치를 열심히 하고, 화가를 대동하여 멋진 경치를 그리도록 했다. 요즘으로 치면 사진으로 여행 기록을 남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선 시대에 우리 사대부들도 금강산 유람할 때 화가를 대동하여 멋진 경치를 그리게 했었다. 베로나 부근에 있는 가르다 호수에서는 성탑에 올라가 스케치를 하다가 스파이로 오해 받아 마을 주민들과 관리에게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교통수단으로는 우편 마차를, 숙박 시설로는 여관을 주로 이용했고, 음식은 하인들이 주로 담당했다. 재미있는 일은 당시에는 여관에도 화장실이 없어서 아무데서나 일을 봤다는 점이다. 괴테가 어느 여관에서 화장실이 없다는 말에 질겁하는 기록이 나온다. 18세기에는 베르사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없어서 고관대작의 부인들이 정원에 숨어서 몰래 용변을 해결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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