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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와 파두 - 이베리아 사람들의 정열과 영혼집시들과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이해하려면 플라멩코와 파두를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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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20  20: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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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행 중에 내가 잔뜩 기대한 프로그램이 있다. 스페인의 플라멩코(Flamenco)와 포르투갈의 파두(Fado)다. 플라멩코는 춤과 소리, 악기 연주를 통해 스페인 사람들의 정열을 표현하고, 파두는 노래와 기타 연주를 통해 포르투갈 사람들의 영혼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베리아반도(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꼭 관람해야할 필수 공연이다.  

플라멩코는 15세기경에 안달루시아 지방의 집시들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안달루시아란 스페인 남부 그러니까 세비야와 그라나다, 그리고 코르도바를 중심 도시로 하는 지역을 일컫는다. 집도 절도 없는 집시들의 애환과 서러움, 고통과 회한,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사랑과 이별 등에 대한 정서를 온 몸에 담아 춤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 플라멩코다. 지금은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등 다른 지역에서도 광범위하게 공연되고 있다.

나는 플라멩코를 두 번 보았다. 한 번은 세비야(El Arenal - 바로 옆에 투우경기장이 있다)에서, 다른 한번은 그라나다(Los Tarantos)에서 보았다. 굳이 평가를 하자면 그라나다가 더 좋았다. 연기자들의 실력은 세비야가 더 좋았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라나다가 더 좋았기 때문이다. 세비야는 무대가 차려진 정식 공연장이었고, 그라나다는 옛날 집시들이 살았다고 하는(사실 여부는 모르겠다) 동굴 속에서 공연이 진행되기 때문에 훨씬 더 이색적이고, 흥미 있고, 흥분된다. 세비야가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프로들의 공연이라면, 그라나다는 서울 대학로에 있는 <학전> 같은 지하 소극장에서 하는 비주류 공연이라고나 할까. 

타란토스 따블라오(Tablao-플라멩코를 공연하는 극장식 식당)는 동굴극장으로 그라나다 북서쪽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알자이신 지구에 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그라나다 궁전의 환상적인 전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극장의 공연 티켓을 사면 이 부근에서 공연에 앞서 30분 정도 야간 투어를 시켜 준다. 야간에 조명발을 받은 알함브라궁은 낮에 보는 모습과는 또 다른 이색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이 지역을 사크로몬테(Sacromonte) 언덕이라고 부르는데, 수백 년 동안 집시들이 살아온 히타노(gitano-집시 거주지)다. 그들의 한과 서러움이 세월의 더께만큼이나 켜켜이 쌓인 유서 깊은 곳이다.  

공연은 야간 투어를 마친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면 유명한 댄서들의 사진 액자와 구리로 만든 여러 가지 취사도구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동굴 맨 앞에는 10여명의 출연자들이 겨우 서거나 앉을 수 있는 좁은 무대가 있고, 그 앞으로 50-60명 정도의 관객이 앉을 수 있는 객석이 있다. 바로 옆 동굴은 객석이 양쪽으로 되어 있고, 무대가 객석 사이에 있었다. 그 곳이 연기자와 관객이 더 밀접하게 호흡할 수 있어서 더 좋을 거 같다.  

우리 공연에는 두 팀이 무대에 올라왔다. 첫 팀은 9명 (여자 춤꾼 5명, 남자 춤꾼 1명 - 나중에 젊은 시절의 배철수 닮은 거지같은 남자가 한 명 출연했다. 남자 소리꾼 1명, 기타 연주자 2명), 두 번째 팀은 6명(여자 춤꾼 4명, 남자 소리꾼 1명, 기타 연주자 1명)이었다. 무대가 너무 좁기 때문에 춤꾼 한 명이나 두 명이 번갈아가면서 춤을 추고 나머지는 자리에 앉아서 연주를 하거나 손뼉 그리고 소리로 장단을 맞추고 분위기를 살렸다. 공연은 새벽 한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파두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전통 민요로 운명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Fatum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민요이다 보니 아무래도 이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 슬픔과 원망, 호소와 갈망, 추억 등의 정서를 구성진 가락으로 풀어내는 것이 그 특성이다. 리스본에서 관람한 파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나는 나이가 지긋한 출연자들이 공연하는 우리 판소리 같은 것을 기대했는데, 젊은 남녀 한 명씩 두 명의 파디스타(파두를 부르는 가수)가 출연해서 앉거나 서서 현대식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관객에 대한 호소력이 낮아 맥이 풀리고 관제 공연을 보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노래보다 기타하(guitarra - 포르투갈 전통 기타로 만도린과 비슷하게 생겼다) 연주가 단연 일품이었다. 연주자 두 명 중 나이가 지긋한 연주자의 기타하 솜씨는 신의 경지라고나 할 만큼 훌륭했다. 기타하를 치는 손가락 동작이 엄청 빨라서 얼마나 연습을 하면 저렇게 칠 수 있을까 하고 감탄을 연발했다. 세계적인 가수로 파두를 국제적으로 널리 알린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를 상상하고 공연장을 찾은 내가 잘못이지, 그 공연자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처음 예약한 바이루 알뚜 지구에 있는 전통 파두 하우스 Luso(공연 관람만 25유로)의 예약을 취소하고, 시내에서 호객 행위로 만난 15유로짜리 공연을 봐서 그런지도 모른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공연의 수준은 지불한 돈만큼 차이가 나는 것이다. ‘공연장(Cine-Theatro Gymnasio)이 좋다고 공연의 수준까지 좋은 건 아니다’라는 명언을 다시 한 번 체험했다.  

공연을 마친 후 기타하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하는 젊은이가 판매하는 파두 시디를 한 장 사가지고 나왔다. 요즘 수록 곡 중에 우리말로 “내 말이야”라고 들리는 파두를 운전하면서 날마다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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