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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크로드의 동쪽 종착역 일본, 교토와 나라 」“인도 불교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흘러들어가 일본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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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27  19: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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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화려하게 만개한 도시,
나라와 교토
  ‘로마에 바티칸성당이 있다면 나라(奈良)에는 동대사(도다이지東大寺)가 있다.’
  ‘피렌체 아카데미아미술관에 다비드상이 있다면 나라 약사사(야꾸시지藥師寺)에는 일광보살상(日光菩薩像)이 있다.’
  ‘루브르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나라 중궁사(츄우규지中宮寺)에는 보살반가상(菩薩半跏像)이 있다.’
  ‘로마 시스티나성당에 천지창조가 있다면 나라 법륭사(호류지法隆寺)에는 아미타정토도(阿媚陀淨土圖-금당벽화金堂壁畵)가 있다.’ 

  필자가 이번에 일본 나라와 교토를 2회에 걸쳐서 답사하고 느낀 소감은 한마디로 감동과 충격이다. 불교문화의 예술성에 대한 감동과 경이로움에 대한 충격. 일본의 불교문화는 인도에서 발원해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과 한국을 거쳐 유입됐는데, 어떤 이유로 일본에서 그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되었을까? 일본은 서기 850년경에 이미 전국에 사찰이 3,700개나 되는 불교 성국(聖國)이었다.

  더 전해줄 곳이 없다는 절망감에서 그랬을까? 실크로드의 종착역이라서 그랬을까? 아무튼, 일본의 불교문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장대하고 화려한 꽃을 피웠다. 유적과 유물의 역사성, 종류의 다양성과 예술성, 완성미, 규모, 보관 상태, 기록과 연구 등 모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런 불교문화의 완숙성과 보존은 문화의 선진성에서 연유한 것은 아닐까?

실크로드 문명의 전달자, 견당사
약 300여 년에 걸친 견수사(遣隋使)와 견당사 파견은 일본의 국가제도 발전과 문화 발달에 큰 공헌을 했다. 서기 630년부터 894년까지 야마토 정권은 중국의 선진 문물제도와 기술, 지식을 받아들이기 위해 견당사를 15회 파견했으며, 나라시대에도 20년에 1회 정도로 파견했다. 이런 교류를 통해 실크로드를 통해 수나라나 당나라에 이미 들어와 있던 서역 문화가 자연스럽게 한반도나 해상을 통해 일본으로 전래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를 들면, 720년에 서술된 <일본서기>에 그리스 신화와 스키타이 신화가 등장하는 사례가 한 예이다. 고대사회에도 이미 서역의 영향을 언급한 기록이 존재한다.

비파와 유리에도
실크로드 흔적이 보인다
실크로드 관련 유물이 가장 많이 보존된 곳이 정창원(쇼소인 正倉院)이다. 정창원은 일본 황실의 보물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궁내청 산하 부서이다. 정창원 유물 중 대표적인 서역풍 유물은 비파와 유리 종류가 대표적이다. 비파는 페르시아에서 유래하고 중국을 거쳐 일본에 유입되었다. 특히 서역 북로 중간 지점에 있는 구자국(龜玆國 현재 쿠처)에서 유행했던 악기로 게이샤의 음악인 샤미센에는 그 가락과 악기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 중에서 나전풍비파(螺鈿楓琵琶-騎象鼓樂?撥)와 나전자단5현비파(螺鈿紫檀五絃琵琶)가 서역의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나전풍비파에는 기상고락한발이라는 부제목이 암시하듯이 인도를 상징하는 코끼리를 타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 어른은 턱수염과 구레나룻이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서역인이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관악기를 불고 있고, 뒤편의 어린이는 흥겹게 긴소매를 날리며 춤을 추고 있다. 전형적인 실크로드 예술이다.

  5현비파도 서역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낙타를 타고 있는 어른이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거기에 낙타까지 흥에 겨운 듯 뒤를 돌아보며 주인에게 호응하고 있다. 이보다 더 실크로드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는 유물이 어디 있겠는가? 두 비파 모두 걸작 중의 걸작이다. 비파소리와 피리 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하고, 신명이 나서 어깨춤이 절로 추어질 것 같다.     

장보고와 신라인도 크게 기여      
나라 법륭사 금당 벽에 그려진 아미타정토도 등 금당벽화는 인도 아잔타석불 벽화와 돈황 벽화의 사용된 필법과 분위기와 나타나다. 이것은 바로 실크로드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런 모방 현상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인도의 불교문화가 동진하여 일본까지 전해진 것은 당시에 당나라에 유학하는 승려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로도 입증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장보고(800?-846)가 서남해의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있었을 때는 견당사를 싣고 가는 배의 선원과 통역사들이 대부분 신라 사람들이었고, 중국에 도착해서도 신라방이나 신라원(정식 이름은 적산법화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이다. 엔닌(圓仁 794-864)의 당나라 여행기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중 서기 838년 12월 18일에 작성된 일기에는 이런 사실이 실명과 함께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오동통한 당나라 미인과 코쟁이 가면
나라에 있는 약사사의 본존약사여래상 광배 뒷면에는 서역에서 건너온 이국인의 모습과 포도열매와 가지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도 역시 실크로드 문화의 영향이다. 이 이국인의 형상은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야꾸시지에는 일본 덴표(天平)시대 최고 미인도인 길상천녀상(吉祥天女像)이 있다. 이 그림의 여인은 한 눈에 당나라 미인과 닮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볼이 볼록하고 오동통하게 살집이 좋은 여인의 몸매가 당나라 시대에는 미인의 기준이었다는 점이다.

  정창원이나 나라 교토 지역의 여러 절에서 볼 수 있는 가면에서도 실크로드 문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실크로드의 영향을 받은 가면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중앙아시아의 영향을 받는 가면이고, 다른 하나는 티벳의 영향을 받은 가면이다. 취호왕면(醉胡王面)이나 기악면 태호부(技樂面 太弧父)처럼 코를 지나치게 크게 과장하거나 얼굴의 모습이 서역인을 닮은 가면들이 서역(중앙아시아)의 영향을 받은 유물이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어른들은 서양 사람들을 ‘코쟁이’라고 부른다. 당시의 동북아시아 사람들도 코가 큰 서역인인의 신체적 특징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코를 과장되게 강조했을 것이다. 이처럼 실크로드는 동쪽 끝에 있는 일본에까지 불교 등 서역문화를 전파해서 일본 문명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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