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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재소설 - 발바닥을 긁는 아내 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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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10.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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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집이 있는 여직원은 아주 잠시, 아주, 아주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고 금세 웃음으로 괜찮아요, 라고 했다.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일전에 곽의 엉덩이를 만지면서 이런 연기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곽은 나를 불쾌한 눈빛으로 쳐다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테크닉을 배워 가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부지불식간 스치는 여자의 엉덩이와 가슴은 퇴화되어 가는 내 감성발달에 좋은 처방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그런 여자들을 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여자들을 취하기에 나는 돈이 없다. 재미와 즐거움이란 돈이 드는 법이다. 테크닉만으로는 조금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역시 나는 ‘부끄러움’ 쪽에 속하는 것이 편할 지도 모른다.

뻣뻣해진 목을 만지고 있는데 사무실 쪽에서 몇 명의 남자들이 킬킬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러 오는 모양이었다. 야근을 하기 싫었다. 아내는 일찍 귀가를 할 것이고 내 방안은 너무 지저분했다. 어제 널어놓은 잡동사니들을 그대로 두고 나왔다. 나는 다 마신 커피 잔을 꽉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고 있었다. 아침 라디오에선 비가 온다고 했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집은 어두웠다. 아내의 새로 산 샌들의 굽이 부러져 있는 것이 눈에 뜨였다.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고 불을 켰다. 그리고 잠시 놀랐다. 어둠 속, 아내가 표정 없는 얼굴로 베란다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내를 잠시 쳐다보다 내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으로 들어가면서 거실바닥에 버석거리는 먼지와 머리카락이 거슬렸다. 발에 밟히는 잡동사니들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두었다. 일자로 드러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땀이 솟은 다리에 바지주머니가 감기는 느낌이 조금 불쾌했다. 손을 질러 넣어 주머니에 불룩하게 자리잡은 티슈와 사진을 꺼냈다. 사진은 땀물에 번져 있었고 티슈는 보풀이 일어 바지주머니 속에 먼지를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사진 위에도 보풀이 묻어 있었다. 나는 티슈를 한 장씩 꺼내 냄새를 맡았다. 보풀이 땀이 난 얼굴에 묻었다. 나는 티슈가 다 할 때까지 티슈를 비닐 팩에서 꺼내 냄새를 맡았다. 내 바지 냄새가 났다. 재채기가 나왔다. 콧물이 나왔다. 티슈로 콧물을 닦았고 콧물이 묻은 티슈를 방바닥에 던졌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여름감기는 오래 갔다. 등을 돌려 벽에 얼굴을 묻었다. 잠이 왔다. 끈적한 몸을 씻고 싶었지만 나는 너무 피곤했다. 손에 쥐어져 있던 사진을 머리맡에 던져 둔 채 잠시 그렇게 잠에 빠져들기로 했다.

아내 걱정이 되기는 했다. 굽이 부러진 샌들 생각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자고 싶다. 꿈에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정말 나는 잠에서 깨었다. 화장실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빗소리가 들렸다. 늦은 감은 있었지만 비는 오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들려준 나의 일기예보가 맞은 것에 대해 흡족했다. 시계를 보니 겨우 40분 정도 잠들었을 뿐이었다.

화장실에 가는 김에 샤워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와이셔츠를 벗고 바지를 벗었다. 속옷도 벗어놓고 문을 나섰다. 거실의 불은 꺼지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나는 집안을 휩쓰는 바람의 움직임과 유달리 크게 들려오는 빗물 소리에 고개를 거실 쪽으로 돌렸다. 아내는 베란다에 앉아 들이치는 비를 온전히 맞고만 있었다. 베란다 쪽 창가에 빗물이 고여 있었다.

- 비오잖아.

아내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내가 또 알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들어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볼일도 보아야 하고 샤워도 해야만 했다. 샤워를 하고 방으로 향하는데 아내는 여전히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내에게 다가갔다.

- 오지마.

아내는 또 한번 견고한 표정으로 나에게 명령했다.

- 비오잖아. 들어가자.

-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다음호에 계속> / 이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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