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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문학상] 소설 분야 당선작 - 우화(羽化)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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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02  17: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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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우화하고 말 거야.”

J의 말을 듣자마자 내가 떠올린 것은 우습게도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포도’였다. 나는 그녀에게 ‘스노비즘에 쩌들었어!’라는 말을 들을 것을 알면서도 ‘이솝우화?’라고 되물었다. 역시나 J는 비웃으며 “넌 정말 스노비즘에 쩌들었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녀에게 ‘너는 이제 우화라는 단어에 꽂혔나보네.’라고 빈정거릴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J와의 일방적인 대화에서 내가 이길 승산은 극히 적었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기로 했다. 그럼 어떤 우화를 말하는 건데?

“말 그대로 날개가 돋는 우화(羽化)말이야! 난 언젠가 반드시 우화해서 이 지긋지긋한 현실의 벽을 넘어가고 말거야.”

J는 종교화에 나오는 천사들의 날개를 생각했겠지만 내 머릿속엔 그레고르 잠자로 변한 그녀의 모습 외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이내 그레고르는 날개 따위 없는 다족류일 뿐이었단 걸 깨닫고 이미지를 조금 더 변형시켜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나의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매미의 몸뚱이에 얼굴만 덩그러니 붙은 J의 모습을 연상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 알겠으니까 이제 들어가자. 쉬는 시간 끝나가.”

“좀만 더 들어봐. 내가 어떻게 우화 할 건지 궁금하지 않아?”

J는 남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여자였다. 나는 그녀가 어떤 단어에 꽂혔는지에 따라 지금 만나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대강 유추 할 수 있었다. 저번에 만났던 남자는 ‘스노비즘’을 싫어하지만 잘난 척에는 일가견이 있던 남자였다. 이번 남자는 분명 ‘우화’를 꿈꾸는 야심가일 것이다. 뻔했다.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J는 꽤나 지껄이고 싶은 모양인지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쉬는 시간이 오 분도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이따 들을게. 이제 진짜 일 시작할 시간이라니까. 안 들어가면 반장이 또 난리 칠 거 아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내가 잘 되기만 하면 너도 덩달아 좋은 거 아냐? 좀 들어봐! 이번엔 진짜 느낌이 왔어!”

멀리서 누군가 험상궂게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반장이었다. 작업이 끝나려면 아직 네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나는 J의 이야기를 듣느니 일을 하는 게 낫다는 심정이었다.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자니 J가 구시렁거리며 마지못해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공단의 하늘엔 의외로 별이 많았다. 나는 하품을 삼키며 반장의 등쌀에 떠밀려 공장 내부로 들어갔다. 훅한 열기가 느껴졌다. 시끄러운 소음에 파묻힌 반장의 욕설은 내 귀까지 닿지 못했다. 나는 모르는 척 방진복을 제대로 입었는지 확인한 후 자리로 돌아갔다. 컨베이어 벨트가 가동을 시작했다.

잠도 없는지 수시로 밖을 나돌며 남자를 만나는 J와는 다르게 나는 일이 끝난 후 바로 숙소로 돌아가 씻지도 않고 잠을 청하기 일쑤였다. 어쩌다 시간이 남으면 책을 읽었다. 고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제법 영리하다는 말을 들어왔던 나였지만 하루 종일 손톱만한 반도체 칩을 눈알이 빠지도록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절로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이 싫어 책을 읽은 지 이제 반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매달 빠져 나가는 돈이 더 많은 통장을 들고 많게는 한 달에 한 번, 한 두어 권의 책을 사러 나가는 것이 내가 하는 외출의 전부였다. 초반에 J는 나에게 성실하다고 했지만 4개월 전부터 ‘스노비즘에 빠졌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내게 관심을 두는 대신 자신의 우화를 꿈꾸고 있다. 진보하는 것일까. 왠지 착잡해졌다.

일이 끝나면 아침이었다.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나는 기진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J도 지쳤는지 숙소로 향하는 내내 입을 다물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J가 얌체처럼 욕실에 먼저 들어갔다. 나는 간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빈 침대 두 개가 보였다. 같은 방을 쓰는 두 여자는 오전 조였다. 그녀들은 우리와 완전히 타임 사이클이 달랐기 때문에 얼굴도 보기 힘들었다.

“햐~ 기분 좋다. 씻어.”

욕실에 들어간 지 40여분이나 지나서야 J는 상쾌한 표정으로 욕실에서 나왔다. 그녀의 눈 가에는 시커먼 기미가 무리 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 바닥에 진창으로 깔려있는 긴 머리카락에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묵묵히 뜨거운 물을 틀고 내 몸에 눌러 붙은 먼지들을 먼저 흘려보낸 후에 욕실 청소를 했다.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이었지만 몸뚱이는 여전히 는적거렸다.

“저기 있잖아, 너는 이 일 언제 그만둘거야?”

간단하게 머리를 말리고 잠자리에 들려는 찰나, 기운을 찾은 모양인지 J가 또 말을 걸어왔다. 시간은 벌써 열한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누군가 모래를 뿌린 것처럼 눈이 뻑뻑하고 쓰라렸다. 나는 눈을 감고 대답했다.

“글쎄. 부모님 빚 다 갚으면?”

“얼마 남았는데?”

“지난번에 확인했을 때 8천 남았더라.”

“와, 2억 정도 빚 졌었다고 하지 않았어? 많이 갚았네?”

“부모님이랑 동생들도 버니까.”

“그렇구나. 걱정 마. 내가 재용씨랑 잘 되면 네 빚도 싹 다 정리해줄게.”

지금 만나는 남자 이름이 재용이구나. 나는 수긍했다. 그리고 새삼 J의 머리 회전이 내 예상 범위를 웃돈다는 걸 확인했다. J의 머릿속에선 벌써 재용이란 남자와 그녀가 잘 되어서 이 일을 청산하고 선심 쓰듯 내 빚까지 청산해주는 방향으로 정해진 것 같았다. 나는 실소를 내뱉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매미의 몸뚱이를 한 J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반대편 침대에서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불현 듯, J에게 ‘여우와 신포도’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졌다. 이야기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입이 근질거려 다가오던 잠도 슬며시 뒷걸음질 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잘난 척 하는 병, ‘스노비즘’에 걸린 것인지도 몰랐다.

“J야, 너 여우와 신포도 얘기 알아?”

“아니? 그거 뭔데?”

내가 잠들려다 말을 걸어서인지 J는 약간 기쁜 듯 반색하며 되물었다. 나는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악의를 입 꼬리에 대롱대롱 매달고 그녀의 물음에 기꺼이 대답했다.

“옛날에 여우 한 마리가 길을 지나가고 있었어. 그런데 포도나무가 보이더래. 거기 포도 한 송이가 굉장히 탐스러워 보여서 여우는 그걸 따먹기 위해 한참이나 나무 위를 올려다보며 낑낑거렸어. 그런데 그 맛있어 보이는 포도는 도무지 떨어질 기미도, 여우의 손에 닿을 기미도 안 보이는 거야. 결국 여우는 ‘저 포도는 분명 신 포도일거야.’라고 생각하며 길을 떠났대. 이게 무슨 얘기인 줄 알겠어?”

“……욕심 부리지 말자? 너무 올려다보지 말자? 대충 그런 거 아냐?”

“맞았어. 그냥 이 얘기가 너무 하고 싶었어. 잘 자.”

나는 J의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고 이불을 다시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입가에 매달린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왠지 통쾌한 기분이었다.

“너, 가끔 보면 되게 냉정해.”

못됐다는 말이면 모를까 냉정하다니. 의외였다. 나는 이불을 눈가까지 끌어 내리고 고개만 살짝 돌려 J쪽을 쳐다보았지만 이번엔 J가 내 쪽을 등진 채 누워 있었다.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언제나 남자나 물어 이 생활을 청산하려는 그녀가 영 못마땅하게 느껴진 것은 진심이었으므로 변명은 않기로 했다.

시계 초침 소리가 호흡과 함께 의식 아래로 내려앉았다. 잠들기 전에 내 눈꺼풀을 스치고 지나간 영상은 매미 몸뚱이를 한 J가 나무 위의 포도를 향해 욕지기를 내뱉는 모습이었다.

포도를 향해 앞다리를 휘저어대는 꼴이나, 욕지기를 내뱉는 꼴이나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일상은 지나가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아 일상이다. 항상 똑같은 시간에 항상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보면 시간이라는 것이 그리 값어치 있게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내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약 2/3가량 읽었을 즈음이었다. 방진복을 입기만 해도 땀이 차오르는 더위 속에서 야간작업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 새벽 쉬는 시간에 잠시 밖에 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가을이었다. 막연하게나마 하늘이 높아진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이렇듯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온 추위가 당혹스럽게 느껴졌다.

그동안 J는 네 번 외출을 했다. 그녀는 꼬박꼬박 비번인 날만 되면 몇 가지 없는 화장품을 진열해 놓고 어느 루즈가 그 날의 복장과 잘 어울리는지 몇 십 분이나 고민하다 결국 매번 똑같은 오렌지색을 바르고, 예전에 시내에서 비싸게 주고 구입했다는 수제화를 신은 채 히프를 살랑거리며 공장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전부터 은연중에 J에게 관심을 보여 왔던 민호는 이제 그런 그녀의 행태에 한숨도 안 난다는 듯 내게 ‘이번에도 금방 끝나겠죠?’라고 물어왔다. 나는 양 어깨만 으쓱할 뿐,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호는 제 나름대로 긍정한 것인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제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그 뿐이었다. 나에게 있어 일상은 그저 조용히, 가는 것도 눈치 못 채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기어이 사단이 터졌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몇 장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외출한 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J가 돌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물티슈를 건네주며 ‘재용이란 남자와 끝났구나.’라는 생각보다 ‘화장한 채 울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얼굴을 양껏 찡그린 채 흐느끼는 J의 모습은 기괴하고, 흉측했다.

“좋아하니까, 원하는 걸 들어주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 뭐가 잘못 된 거야?”

한참을 엉엉 울다 그녀는 악다구니를 쳤다. 나는 잘 자고 있는 옆방 사람들이 괜히 깨어나 항의라도 할까 싶어 그녀에게 진정하라는 모션을 취했지만 그녀는 내 행동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연신 비명과도 흡사한 고함을 내질렀다.

“나쁜 자식! 내가 싸구려야? 자기도 좋아라 했으면서 왜 나만 싸구려 취급을 받아야 해? 내가 헤프다고? 그러는 자기는? 관계는 일방적으로 맺는 게 아니잖아! 자기도 좋아서 했으면서 왜 나만 창녀 취급을 받아야 해? 왜?”

헤어진 이유는 그거인 듯 했다. 나는 괜히 안쓰러운 느낌이 들어 그녀의 양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녀는 내 품 안에서 서럽게 울어댔다. 잠옷에 마스카라가 엉긴 눈물이 묻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J가 눈물을 그치고 고개를 치켜들었을 때 다행히 내 옷은 깨끗했다.

“너, 내가 한심해 보이지?”

한참이나 품을 빌려준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기분이 약간 나빠졌지만 나는 애써 측은한 미소를 지으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인지 J는 물티슈에 코를 풀고, 나를 노려봤다.

“너 나를 우습게보잖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J는 코웃음을 치며 내 옆에서 일어났다.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자신의 침대로 돌아간 그녀는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았다.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그 시선에 오히려 흔들린 건 나였다. 살짝 혀를 내밀어 윗입술을 적셨다.

“난 너를 우습다고 생각한 적 없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진 모르겠지만 그건 오해야. 너 지금 재용씨랑 헤어졌다고 나에게 화풀이 할 생각이라면 그냥 씻고 일찍 자.”

“웃기시네.”

매미 몸뚱이를 한 J. 신 포도를 향해 격렬하게 갈퀴 같은 곤충 앞다리를 휘두르는 J. 그리고 끝내 신 포도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는 J가 모두 이곳에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대응하는 대신에 다시 J쪽으로 물티슈를 건넸다. 그녀의 얼굴은 아직 얼룩덜룩했다. 마치, 짓이겨진 포도처럼.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 난 머리는 안 좋지만 바보는 아니야.”

J는 내가 건넨 물티슈를 받지 않았다. 뜻 모를 비난에 열이 차올랐다. 물티슈를 옆으로 치우고 나도 눈가에 힘을 주고 그녀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나에게는 J에게 비난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억울하기도 하고, 왠지 수긍해야 할 것 같기도 한 양가적인 감정에 손이 축축해졌다.

“도저히 모르겠어. 갑자기 왜 이래?”

“포도가 신 포도이건 아니건 달콤해 보인다면 먹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 거기에 손을 뻗는 게 잘못이야? 그게 잘못이냐고!”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 본 것 같은 그녀의 말에 내 등줄기가 빳빳해졌다. 이제껏 기억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이야기 하나로? 고작 그거 하나 때문에 지금 나에게 화를 내는 상황은 내 상식 범위 밖이었다. 부아가 치밀었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저번에 했던 그 얘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이러는 거야?”

“그래! 그 얘기 때문이다! 속 시원하니? 내가 결국 여우가 돼서 기분이 좋으냐고!”

넌 여우가 아니라, 매미야. 완전한 변태(變態)에 실패한 매미. 절로 왼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스웠고, 우스꽝스러웠다. 후련한 기분이었다.

“너 지금 스스로가 여우 꼴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J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을 앙다물고 내 쪽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아까보다 한층 허리와 장딴지에 힘을 준 걸음걸이로 욕실을 향했을 뿐이었다. 나는 욕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급격하게 피곤해졌다. 간만에 핸드폰을 열어 보니 벌써 올해도 3/4가 지나간 상태였다. 일상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나는 내 생일도 잊고 다음 번 생일을 향해 시간을 내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J도 지겨웠다. 그녀가 씻고 나오기 전에 잠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불 속에 몸을 밀어 넣었다. 전혀 공감가지 않는 홀든 콜필드의 마지막 말이 궁금했지만 그보다 내 심기를 거슬리는 것은 미동도 없는 물소리였다. 그녀는 필경 저 물소리에 의지해 울고 있겠지. 마음 한 편이 뒤숭숭했다.

 

‘너 빚이라는 게 그렇게 우스워 보여? 결혼? 그럼 네가 내 빚 다 갚아줄래? 너희 집 기둥뿌리 뽑을 자신 있어? 사채라는 거 우습게보다가 사람 한 둘 죽는 건 시간문제야. 그래도 너 나랑 결혼할 자신 있어?’

불쾌한 꿈을 꿨다. 벌써 몇 년도 더 된 일인데 마치 방금 전 일처럼 생생해서 날 괴롭히는 끔찍한 악몽이었다. 평소보다 이르게 깨어난 불쾌함보다 차갑게 식은 발끝의 감각에 더 몸서리치며 몸을 움츠렸다. 맞은 편 침대는 비어 있었다. 난방이 잘 안 되기 때문에 느껴지는 추위도 만만찮았지만,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서 오는 추위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날 이후, J는 갑자기 방장에게 가 다짜고짜 방을 바꿔 달라고 했더란다. 오전조로 일하던 여자 둘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공장일이란 그랬다. 질리도록 사람이 들이차고, 빠져나갔다. 졸지에 혼자 방을 쓰게 된 나는 허전함보다 무거운 침묵을 느꼈다. 가끔 허공에 소용돌이치는 공기들이 내게 삿대질을 하는 것 같은 착시마저 보았다. 오전조로 변경하겠느냐는 반장의 말에 나는 계속 오후에 남기로 결정했다. 대낮의 환한 빛조차 가끔 두려웠다. 어둠이 날 비난한다면, 참기 힘들 것 같았다.

민호는 드디어 J에게 대놓고 고백을 했다. J가 재용이란 남자와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날 민호는 어디서 구했는지 붉은색과 핑크색, 흰색이 섞인 고데치아 한 다발을 그녀에게 건넸다. 저녁식사시간이었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J는 마치 새 신부처럼 양 볼 가득 홍조를 베어 물고 그 꽃을 받았다. 아주 잠깐, J가 내 쪽을 돌아본 것 같았지만 착각처럼 스쳐지나가는 시선일 뿐이었다.

내 나이 열아홉.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다. 공장이 문을 닫고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매일같이 채권자들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외가 재산까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결국 부모님은 내 동생 둘과 나를 버려두고 야반도주를 했다. 우리가 사채업자들의 사무실에서 입자에 피딱지가 앉을 정도로 얻어맞아 정신이 혼미해 질 즈음 부모님이 머리채가 잡힌 상태로 붙들려 오셨다.

그 전이야 머리가 좋았다고는 하지만 그를 증명해주는 좋은 성적표에는 적지 않은 돈이 깔려있는 상태였다. 그 모든 재정적 지원이 끊어진 6월 모의고사를 기준으로 내 성적은 급격하게 하락세를 탔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영부영 원서 철이 되었지만 언감생심, 대학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술집에 보낼까, 장기를 팔까? 내 몸을 두고 흥정하는 사채업자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것은 우리 부모님이었다. 한껏 당당하게 허리를 쭉 펴고 살던 두 분 내외가 버러지만도 못하게 몸을 낮추고 흐느끼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도시로 올라와 콜센터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폭언이 마치 조직폭력배의 그것과도 같아 금세 그만두고 말았다. 식당 홀 서빙, 야간 호프집, 음식점 주방, 작은 맥주공장의 사무직 등등, 나를 거쳐 간 직업은 두 손으로 꼽아도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밖에서 생활하다보면 생활비가 나갈 수밖에 없었고 당장 1원 한 장이 아쉬운 우리 가족에게 그 돈은 크나큰 부담이었다. 숙식비가 나가지 않는 직종을 찾다 결국 공장을 택했다. 아버지가 부도나기 전까지는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진로였지만 나는 그 길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게 H라는 남자였다. 공장에 들어오기 전, 마지막으로 일했던 작은 세무서의 말단 직원이었다. 어쩌다 친해졌는지는 희미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그 남자와 나는 교제하고 있었다. 깊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서로에게 충실했다. 아주 잠깐, 나는 그 남자와 미래를 꿈꾸기도 했었다. 빚을 다 갚고 나면 결혼식은 생략하고서라도 둘이 작은 방 하나를 얻어 함께 출근했다 퇴근하는 일상을 상상하며 혼자 이불을 뻥뻥 걷어 찬 것도 수차례였다. 아마 부모님이 두 번째 야반도주를 하지만 않았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채업자들의 사무실에 끌려가 ‘이번엔 죽겠구나.’를 실감하며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뚝뚝 떨구는 나를 찾아 온 것은 부모님도, 동생들도 아닌 H였다. 우리 부모님이 그랬듯이 그는 사채업자들에게 낯선 등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 때 처음으로, H와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머리채를 잡아채고 싶다는 생각도.

‘결혼하자. 내가 지켜줄게. 거창하게 시작은 못 해도, 너 하나 먹여 살리는 건 할 수 있어.’

사채업자의 사무실 앞에서, H가 말했다. 그의 말쑥한 양복 위에 낙인처럼 새겨진 발자국들이 날 초라하게 만들었다. 내 뒤통수에 H는 몇 번이나 울먹이며 날 사랑한다고 소리쳤다. 뒤돌아보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며 평소보다 뻗대며 걸었다. 그의 고백과 동시에 부모님의 비명도 들려왔다. 또 붙잡혀왔구나. 나는 그마저도 돌아보지 않았다. 신체포기각서에 선명하게 찍혀있는 내 지문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돌아보지 않을 작정이었다.

“야간 작업조! 들어오세요!”

쉬는 시간이 끝났다. 나는 방진복을 잘 여미고 다시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겨울이 다가오니 밤이 부쩍 짧아진 느낌이 들었다. 추위는 더 매서워졌다. 쉬는 시간에 폐부에 가득 찬 습기를 걷어내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다.

내 자리 건너편은 J의 자리였다. 방은 바꿨어도 근무 조는 바꾸지 않은 모양이었다. 민호가 오후조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J가 잠시 고개를 들어 내 쪽으로 향했다. 방진복 너머라 그녀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여 컨베이어 벨트 위로 쏟아져 내리는 무수한 반도체 덩어리에 집중했다.

J는 나와 닮았다. 서울역에 쏟아져 내리는 누군가와 내가 닮은 것처럼, 그녀의 어느 일면은 나의 어느 일면과 일치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녀를 경시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까지 내 방은 비어 있었고, 여전히 조용한 기류는 나를 불청객으로 대접했다. J가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서먹함이었다.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허나 그녀는 아직 나에게 화가 난 상태였다.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와 나의 거리가 이렇게 멀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기에 내 내면은 몇 시간이나 배를 탄 것처럼 울렁이고 있었다. 퇴근하면 바로 자고, 일어나서 호밀밭의 파수꾼의 남은 몇 장을 마저 읽은 뒤에 저녁 시간, 인파에 파묻혀 슬쩍 J에게 말을 걸어보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제야 뒤엉켜있던 머릿속이 그나마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자,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쉬세요. 오늘 비번인 사람이 A, B, C 이렇게 세 분 맞죠?”

차가운 공기를 들이키며 공장을 빠져나왔다. J의 뒷모습이 보였다. 볼품없지만 나름대로 듬직한 민호의 뒷모습과 함께였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씻고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평소보다 이르게 알람을 맞추고 이불을 한껏 몸에 둘렀다. 추위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지독히도 난방이 되지 않는 방이었다. 체온을 잔뜩 머금은 이불 한 장에 의지해 눈을 감았다.

 

몸이 쪼개지는 듯 한 고통이 느껴졌다. 목이 탔고, 등짝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피부가 화끈화끈했다. 비명을 지른 건지 지르지 않은 건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입을 뻐끔거렸다. 숨이 내가 원하는 것만큼 들이마셔지지가 않았다. 바들거리는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었다. 아니, 손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내 손은 넓적했고, 굵었다. 아랫가시도 붙어있었다. 황망한 와중에 나는 내 시야도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굴절된 듯, 반사된 듯, 세상이 좁고 어지러웠다. 핸드폰이 여섯 개로 보였다. 그리고 색 지각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침대 위의 핸드폰이 붉어 보이는가 하면, 녹색인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흡사 회색 같아 보이기도 했다.

몸을 움직이려는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몸 뒤축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차마 내 것이라고 믿고 싶지도 않은 팔로 침대를 짚고 일어서려 했으나 마디가 꺾여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몸을 뒤틀었다. 침대 모서리가 느껴졌다. 내 덩치는 침대의 크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거대해 진 모양이었다.

이건 꿈일 거야. 꿈이어야 해. 혼잣말을 중얼거렸으나 내 귀에 들려오는 것은 마치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낮고 스산한 날갯소리였다.

양 옆으로 몸을 몇 번이나 뒤틀었다. 결국 나는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등이 시큰거렸다. 하지만 아픔보다 현실 파악이 더 절실했다. 다시 양 옆으로 몸을 몇 번이나 비틀어 배가 땅에 닿는 자세가 되고 나서야 나는 내가 벌레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침대 위에 ‘나의 거죽’이 있었던 것이다. 맙소사. 어서 꿈에서 깨야 했다. 이 악몽은 사채업자의 사무실에 끌려간 것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기 위해 팔을 움직였다. 그러나 움직인 것은 내 양 팔 뿐만이 아니었다. 배면에 솟아있는 네 개의 다리가 함께 꿈지럭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소름끼치는 감각에 닭살이 돋을 것만 같았다. 양 어깨뼈를 움츠렸다. 희미하게 날개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매미다! 나는 깨달았다. 난 지금 매미가 된 것이었다. 확실하게 꿈이었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혐오스러운 감각을 최대한 배제하고 이 꿈에서 깨어날 방법을 궁리했다. 그 순간 내 이성의 끝자락을 스쳐 지나간 사람은 J였다.

그간 매미 몸뚱이의 J를 상상했기 때문에 내가 매미가 된 것이 분명했다. 어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그녀가 다시 이 방으로 돌아온다면 다시는 이런 악몽을 꾸지 않으리라. 나는 굳은 결의를 하고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나의 날카로운 아랫가시에 이불 모퉁이가 뜯겨져 나간 느낌이 들었다.

핸드폰 플립을 열기 위해 손을 써야 했지만 내 손가락으로 추정되는 것은 죄다 가시로 변한 상태였다. 양 손을 써야했다. 하지만 양 손을 쓰기 위해 팔을 뻗으니 빈약한 뒷다리들이 내 육체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해 거듭 머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수십 번을 버둥거려 간신히 플립을 열었다. 나는 이미 기진한 상태였다.

끔찍한 악몽이야. 나는 그나마 아직 내 핸드폰이 키패드라는 것에 감사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서 이 꿈에서 깨고 싶어. 난 프란츠 카프카가 아니잖아? 아니, 아니지, 나는 그레고리 잠자가 아니야. 고개를 양 옆으로 휘저었다. 제대로 목이 돌아가진 않았지만 나는 그러한 행동을 했다는 것 자체로 만족하며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 몸집은 침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에 손톱만한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앞다리가 떨리는 바람에 몇 번 실수를 하긴 했지만 제대로 통화 목록이 화면을 메웠다.

다행히 마지막 통화 상대는 J였다. 전화를 자주 쓰지 않는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통화 버튼을 누르고 앞다리를 굽혀 전화기 가까이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J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J. 하지만 내 목소리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인지 그녀는 연신 내 이름을 부르며 짜증을 부렸다. 몇 번의 의사 불통이 이어졌다. 결국 J는 답답한 듯 ‘그래, 할 말 있다 이거지? 알았어. 기다려. 갈 테니까.’라고 화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행이었다.

몇 분 뒤,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J의 발소리였다. 내가 문을 잠갔는지 아닌지 헷갈렸지만 다행히 그녀는 무사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필사적으로 웃음을 지었다. 지난번에는 미안했어. 난 정말 널 우습게 본 게 아니었어. 사실 네가 부러웠어. 하지만 티를 내는 건 자존심이 상했어. 미안해. 다시 이 방으로 돌아와 줘. 나는 절박한 심정을 담아 지껄였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허망한 날갯짓소리 뿐이었다.

“……뭐야?”

J는 내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거나 경악하는 대신, 양 미간에 한껏 주름을 잡고 혐오하는 듯 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작게 무어라 중얼거렸다. 분명 욕지기일 터였다. 아직도 화가 많이 나 있는 것일까? 나는 표정을 더 누그러뜨렸다. 미안하다니까. J, 이 공장에 들어오고 나서 계속 나에게 잘 해 준 건 너 뿐이었어. 나도 잘 알고 있고. 오히려 너무 편해서 내가 실수한 게 많다고 생각해. 용서해 줘.

“이건 무슨 장난이야?”

그녀는 내 모습을 그 한 마디로 일축했다. 나는 그게 아니야! 라고 외치며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소스라치며 뒷걸음질 쳤다.

“장난치지 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렇게 안 봤는데 너 진짜 악질이구나? 됐어. 이런 장난치려고 전화까지 해서 이상한 소릴 낸 거야? 진짜 대박이다, 너. 알겠으니까 장난 그만 치고 이따 출근이나 해. 별꼴이야, 진짜.”

그녀는 콧잔등 위까지 주름을 잡고 인상을 팍 쓴 뒤 문을 쾅 닫았다.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내 비명은 허망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 내 몸에 와 닿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랬다, 이 시기의 매미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었다. 차라리 꿈이길 바랐지만 꿈이 아니었다. 나는, 매미가 되었다.

텅 비어버린 허물을 허망하게 응시했다. J가 말하던 우화(羽化)가 이런 거였나? 내 신음 섞인 한숨은 제대로 성대를 관통하지 못했다. 나는 한 번 더 날개 비비는 소리를 내뱉었을 뿐이었다. 끔찍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 해 봐야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섯 겹의 세상이 오싹한 한기를 품고 내 전신을 끌어안았다.

새벽과도 같은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내 핸드폰은 이제 한껏 기세 좋게 알람을 울릴 것이다. 추위에 의식이 혼미해졌다. 알람이 울리고, 시간이 다 되어도 출근하지 않는 날 찾기 위해 내 방문을 연 이들은 나의 거죽과 차갑게 얼어있는 거대한 매미 한 마리를 보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J…….”

매미가 된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 그녀의 이름이라니.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의식이 점점 멀어져갔다. 파르르 떨리는 나의 날개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열을 내기 위해 서로 맞부딪치며 거대한 비명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그 끔찍한 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 Fin.

/ 이슬 (심리·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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