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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꿈 접은 음악 소녀의 조용하고 차가운 복수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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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12  1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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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교수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날 때’ ⑦ 페이지터너

문1 동양의 전통 현악기들은 같은 음계를 사용하고 있나요?
답1 아닙니다. 중국은 주로 5음 음계를, 한국은 무반음 5음 음계를, 인도는 7음계를 사용합니다.
문2 서양 음악은 음계가 통일돼 있나요?
답2 그렇습니다. 그리스 시대에만 해도 7가지 종류의 옥타브들이 있었지만 17세기에 와서는 장ㆍ단음계를 중심으로 12개 조에 관한 음계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37세가 되던 해, 바흐는 세상에 상당히 독특한 이름의 피아노 연습곡을 내놓는다. 이름하여, ‘평균율 클라비어곡집’(well-tempered Clavier). 영어 그대로 번역하자면 ‘잘 조율된 피아노곡’이라는 의미다. 피아노의 조상이 클라비어이기에. 

바흐 시대 이전에는 서양도 동양과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비록 악보를 작성하는 방식에서는 공통된 기준을 마련했지만, 아직 여러 종류의 화성과 선법이 뒤섞여 혼재했다. 예를 들어,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한 옥타브를 좀 더 정교하게 나누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런 가운데 바흐 시대에 유행하기 시작한 12평균율에 대해 바흐는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12평균율이란 지금의 피아노 건반에서 한 옥타브 안에 들어있는 7개의 흰 건반과 5개의 검은 건반들에 관한 전문 용어다. 한 옥타브를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12등분한 음들이란 얘기다. 이에 따라 서로 이웃한 피아노 건반들을 순서대로 누르면 정확한 간격으로 음 높이가 올라간다. 피아노 현의 길이를 정확한 비율로 순서대로 줄인 까닭에서다. 반면, 동양의 음계에서 한 옥타브를 구성하는 음들 간에는 수학적으로 정확한 비례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5음계인 ‘궁상각치우’의 서양식 음은 도-레-미-솔-라로서, 각 음 사이의 비례는 일정하지가 않다. 

바흐는 피아노의 한 옥타브 안에 있는 12개의 건반을 가지고 장조와 단조 등을 연습할 수 있는 24개의 곡을 두 차례에 걸쳐 펴냈다. 이름하여,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과 2권. 하지만, 단순한 연습곡이라기보다 예술 작품에 가까운 멜로디를 사용했기에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결국, 서양 음악의 구약 성서로 대접받게 된다. 이에 대해 혹자는 “서양 음악이 전부 소멸된다 해도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두 권만 남는다면 그것을 기초로 서양 음악을 다시 재건될 수 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지난 2006년 상영된 프랑스의 영화, ‘페이지터너’는 이런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가운데 또 하나의 한 곡을 영화의 주요 테마송으로 배치해 눈길을 끌고 있다. 2권의 6번 ‘D단조 BWV 875’가 그것으로 극의 말미에 주인공 가족 사이에서 벌어지게 될 불행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역할이다. 

   
지난 2006년 상영된 프랑스 영화.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와는 분위기에서 확연히 차이 나는 유럽 영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피아니스트가 꿈인 멜라니는 푸줏간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가정 주부인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드디어 음악 학교 진학을 위한 콩쿠르 대회에서 그녀는 오랫동안 준비해 간 곡을 착실하게 연주한다. 하지만,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했던 명 피아니스트 아리안이 시험장 안으로까지 들어온 팬에게 사인 해주는 과정에서 멜라니는 그만 연주의 흐름을 놓치며 시험을 망치고 만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피아노의 뚜껑을 닫아 열쇠로 잠금으로써 피아노를 그녀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린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성인이 된 멜라니는 아리안의 남편이 변호사로 일하는 회사에 인턴 사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물론,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 결국, 기회를 엿보다 아리안의 아들을 돌보는 보모로 아리안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된 멜라니는 아리안이 피아노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다 악보를 넘겨준 것을 계기로 그녀의 ‘페이지터너’가 된다. ‘페이지터너’란 연주회장에서 피아니스트의 악보를 적절하게 넘겨주는 도우미를 일컫는 용어. 교통 사고 이후, 극심한 무대 공포증에 시달리던 아리안은 멜라니의 도움으로 안정을 되찾으며 어려운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끝마친다. 이 과정에서 멜라니는 야릇한 동성애의 감정을 아리안에게 보여주어 그녀가 자신에게 푹 빠지도록 유도한다. 결국, 아리안이 자신을 깊이 사랑하게 됐을 때 일방적으로 그녀의 집을 떠나기로 통보한 멜라니에게 아리안은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남기고, 멜라니는 그 편지를 주저 없이 아리안의 남편 책상 위에 올려 놓고 집을 나온다. 

   
멜라니는 아리안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는데 성공해 그녀의 연주회장에서 페이지터너로 아리안을 보조하게 된다.

너무 빠른 곡이라 팔이 아프다는 아리안의 초등학생 아들에게 억지로 가르쳐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2권 6번은 그렇게 멜라니가 떠나가고 난 집 거실에서 열심히 피아노를 치는 아이와 그를 지켜보는 아리안, 그리고 뒤통수를 맞은 듯한 표정으로 거실에 나타나 아리안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을 교차적으로 누비며 파국의 전조를 생생하게 연주한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역시 수많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해 알아보기로 자자. 이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제외하면 바흐에게 있어서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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