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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의 연인이 연주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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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19  10: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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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교수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날 때’ ⑨ 무반주 첼로모음곡 1번 1악장

188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고서점에서 13세의 음악학도가 오래된 악보 하나를 발견한다. 소년의 이름은 파블로 카잘스. 피아노와 바이올린, 오르간을 배운 소년은 2년전부터 첼로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기에 자신이 발견한 악보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라는 사실을 알고 전율을 느낀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895년, 세간에 다시 등장한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서양 클래식 음악사에 영원히 아로새긴다. 이전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바흐의 첼로 모음곡을 자신의 연주로 발표한 까닭에서다. 바이올린 소나타 ‘파르티타’와 함께 독주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 가운데에서는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세상에 알려진 순간이었다. 해서, 수많은 이들이 카잘스 이후에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며 자신들의 음반을 취입했지만 파블로 카잘스는 바흐의 작품을 발굴하고 최초로 연주한 덕분에 지금껏 남다른 아우라를 뽐내며 클래식 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사실, 첼로는 현악기 가운데 더블베이스 다음으로 큰 악기로서 낮은 소리의 바리톤에 해당하는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실내악이나 교향곡에서는 뮤직 밴드의 베이스 기타에 해당하는 통주저음을 담당하는 이가 바로 첼로다. 그림으로 따지자면 화면 전체의 색감에 영향을 미치는 배경 색깔을 낸다고나 할까? 때문에 첼로는 단독으로 연주하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바흐 시대의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바흐는 이러한 통념에 도전하며 첼로만을 위한 조그마한 곡들을 여럿 작곡한 후, 이들을 한데 묶음으로써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펴냈다. 

하지만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탄생에서부터 비극적인 운명을 겪어야만 했다. 무엇보다 작곡 당시의 첼로 모음곡이 대단히 높은 음정의 고음역대 악보를 채택하고 있었으며 첼로 자신이 통주저음인 베이스 소리와 함께 멜로디를 반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바흐의 첼로 모음곡은 여러 음을 동시에 내야 하는 관계로 연주자들에게 1인 2역 이상의 역량을 요구했다. 생각해 보라. 한 손으로만 연주되는 피아노가 어떻게 독주회를 열 수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처음으로 발견한 파블로 카잘스는 이후, 수년 간의 연구 끝에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완벽하게 소화한 뒤에야 대중 앞에 설 수 있었다. 음악 학자들은 바흐 스스로도 첼로 모음곡을 작곡한 후, 당시의 보편적인 첼로 연주 기술로는 이 곡을 구현할 수 없다고 판단해 원고를 값싸게 처분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02년에 개봉된 영화, ‘피아니스트’는 그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1번곡 ‘프렐루드’를 잠시 동안 선보인다. 영화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폴란드의 유명 피아니스트인 스필만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생방송으로 연주하다 가장 친한 친구, 유렉의 여동생 도로타를 만난다. 물론, 스필만은 아름다운 도로타에게 첫눈에 반하고 첼리스트인 도로타 역시, 유명 피아니스트인 스필만에게 마음이 끌린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당일, 라디오 방송국을 포함해 도시를 포격하며 폴란드를 점령하기 시작한 독일군에 의해 곧바로 헤어지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와중에서 한 피아니스트의 비극적인 운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포고령을 통해 유대인들만 별도로 살아야 하는 게토 지역에 강제 이송된 스필만과 그의 가족들은 하루하루를 생존의 몸부림 속에 보낸다. 하지만, 게토 지역에 갇힌 유대인들은 모든 아우슈비츠 수용수로 끌려가고, 그 과정에서 유대인 친구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스필만은 이후, 유령화된 게토 지구에서 혼자 처절한 나날을 보낸다. 

마침내, 유대인을 돕는 폴란드 민간인의 집에 숨어들어가게 된 스필만은 자신을 돕는 집주인의 부인이 도로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도로타의 집에서 실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빵을 먹으며 거실 소파에서 깜박 잠에 든 그는 문간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에 잠을 깬다. 그런 그가 살짝 열려 있는 문을 통해 거실에서 발견한 것은 첼리스트였던 도로타가 스필만을 등진 채 연습을 하고 있던 장면. 도로타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가운데 1번 프렐루드를 장중하고 부드럽게 켜며 도망살이에 지칠 대로 지친 스필만의 심신을 위로한다. 

개인적으로는 비 오는 날 커피 한 잔과 바흐의 첼로 모음곡이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바흐의 첼로 모음곡 가운데에서도 프렐루드는 이른바, 첼리스트를 희망하는 음악인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마치, 피아노 연주자 지망생들에게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이, 바이올린 희망자들에게는 사라세티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이 로망인 것처럼. 거대한 오케스트라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는 베이스 소리를 내는 첼로가 주변 악기들을 모두 물리친 채 홀로 조명을 받으며 프렐루드를 연주하는 첼로.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1750년에 65세의 나이로 사망한 바흐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오늘날, ‘서양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시력이 악화돼 수술을 받았지만 오히려 수술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뜨게 된 바흐는 평생을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장이었다. 일찍 죽은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는 7명의 자녀를 또,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는 13명의 자식들을 얻었기에 무려 20명의 자식들을 보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천성, 음악인이었던 그는 출판과 사업에 능하지 못해 항상 궁핍한 나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하느님을 향한 경건한 신앙심은 한 평생 그를 지탱해온 두 가지 기둥이었다. 그런 음악의 아버지에 대해 악성(樂聖) 베토벤은 바흐가 “실개천이 아니라 바다다”라는 말로 최고의 존경을 표했다. 참고로, 바흐는 독일어로 ‘실개천’이라는 뜻. 이와 함께 노벨 문학상 수장자인 20세기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는 “바흐의 음악은 내 마음의 종교다”라고 극찬했다. 바흐가 왜 서양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게 됐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바흐의 부인에 해당하는 ‘서양 음악의 어머니, 헨델’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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