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전행정부가 조사한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4명은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전 국민이 체감했을 절망과 공포, 피로감을 생각하면 이 수치는 오히려 축소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나 역시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를 가진 어미로서, 아니 대한민국호에 의무 승선한 국민으로서 불면증에 오랫동안 시달렸다. 게다가 지난여름 동안 벌어진 군대 폭력 사건이나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을 접하면서 이 강도 높은 폭력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인간으로서의 예의와 염치를 포기한 괴물들의 출현을 막을 수는 없는지 고민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나 군대 폭력,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 소시오패스적 범죄가 한국사회의 빈약하고 추악한 민낯을 보여주었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사회의 속도지상주의, 경쟁지상주의, 성과지상주의가 낳은 폐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오죽하면 『피로사회』, 『단속사회』와 같은 책들이 유행처럼 읽히고 있을까. 전 국민의 집단우울증과 피로감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10대 아이들과 20대 청년들이 경쟁지상주의에 피로감과 열패감을 느끼고 일찌감치 ‘Winner takes it all' , 즉 1등이 모든 것을 다 가져가는 우승열패 논리의 노예가 될까봐 걱정이 된다.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 간에 명문대 합격률이 선명하게 차이가 나고, 소위 스카이(SKY)대와 기타 수도권 대학, 지잡대로 순위가 매겨지는 대학서열화가 취업으로 연결되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신판 세습사회를 젊은 세대들은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과연 이런 상황이 정상적이고 정의로운 것인가? 인문학 정신의 부활을 시종일관 피력해 온 도정일 교수는 돈과 시장논리로 단일하게 무장된 사회의 멘탈리티를 한국 사회의 치명적 문제로 지적하면서 이 획일화된 논리에 복속되지 않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무한경쟁논리로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제로섬(zero-sum) 게임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왜’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생각하는 힘과 성찰 정신이 생겨날 수 있을까? 근본적인 질문과 제대로 대면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실천적 의지, 이를 타자와 나누려는 공감의 자세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세상과 인간을 중심에 두는 인문학적 사유, 범박하게는 교양정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인문학 대중서적, 대중강좌의 인기나 기업경영, 입사에 인문학 소양을 접목하려는 시도 등을 놓고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고 진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에서는 콘텐츠가 바닥 난 출판시장의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다, 스펙에 목마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변종 자기계발 담론에 불과하다, 인문정신과 창의력으로 기업경영에 성공한 스티브 잡스를 어설프게 모방하는 것이라는 식의 다양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괴물과 노예를 양산해 온 한국 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돌파할 동력이 인문정신의 부활에 있다는 진단에는 누구나 동의하는 듯하다.

다행히 우리 대학도 최근 학부교육 선진화 사업에 재선정되면서 경쟁과 대립을 넘어 소통과 상생의 지혜를 갖춘 ‘심비우스’형 인재 양성을 교육에 도입하겠다고 한다.(생물학자 최재천은 경쟁만 하는 생물은 퇴화하거나 사라진 반면 다른 생물체와 공생을 실천한 생물들이 결과적으로 진화를 이루었다는 사실에 착안해 공생하는 인간, 즉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를 21세기 새로운 인간상으로 제안한 바 있다.) 당장 2학기부터 고전 관련 교양과목도 신설되고, 독서나 토론 등 의사소통 관련 행사들이 계획되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스마트폰이 주는 정보의 즉각성과 시각적 쾌락에 익숙한 20대들에게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타인과 나누는 더딘 과정들이 얼마나 통할지 걱정부터 앞선다.

하지만 오래된 지식들에서 미래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는 것, 이것이 발전과 개발의 속도전에서 얻은 피로감에서 벗어날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괴물 혹은 노예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공포와 공멸(共滅)의 위기감을 자가 치료하는 방책이기도 하다. 신학기에는 자율적으로 책읽기나 토론 클럽을 조직하고 의견을 나누는, 공생을 향한 작은 실천부터 해 보기 바란다.
/김양선(기초교육대ㆍ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