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군에서 북쪽 끝으로 가면 황태 생산지로 유명한 용대리가 있다. 행정적으로는 1리, 2리, 3리로 구분되는데 십이선녀탕 입구에 있어서 선녀 마을이라고 불리는 용대1리는 벼농사가 잘 되는 곳으로 쌀이 귀할 때 가장 잘 살았다고 한다. 백담사 입구에 있어서 백담마을이라고 불리는 용대2리는 벼농사는 안 되지만 밭농사는 그럭저럭 잘 되는 편이다. 백담사까지 오르내리는 버스를 마을에서 운영하면서 일자리도 만들고 마을 관리에 필요한 경비도 대는 아주 흥미로운 마을이다. 750킬로 와트짜리 풍력발전기 6대와 1.5메가 와트짜리 풍력발전기 1대가 돌아가는 광경이 멀리서도 눈에 띈다.

그러나 황태를 많이 생산한다고 해서 황태 마을로 불리는 용대3리에서는 냉해 때문에 밭농사조차도 안 된다. 너무 춥고 바람이 세어서 살기 힘들었던 예전 주민 중에는 야반도주를 해서 이곳을 벗어난 사람들도 제법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휴전선을 넘어갈 수는 없고 바로 앞에 정착한 곳이 양구 해안면. 납북된 사람들의 땅을 빌려서 고랭지 농사를 크게 지으면서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농약과 비료로 뒤범벅 된 흙탕물을 흘려서 인북천을 오염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용대3리의 용바위와 매바위가 만드는 특이한 기후현상으로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용대리 황태이다. 60년대에 날품을 팔던 주민들이 차츰 자본을 모아서 스스로 덕장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산골에서는 드물게 경제적으로 살만한 마을이 되었다. 이 마을과 인연을 맺은 지 12년, 처음 방문하던 시기에 1천7백만 마리를 말린다고 했는데 2013년에 3천만 마리를 말리면서 더 늘릴 장소가 없다더니 최근에는 약 20% 정도 줄였다고 한다. 여기서 말리는 황태가 국내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마을 전체가 황태로 먹고 살 정도임에도 처음 이 마을을 드나들 때는 젊은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애들은 다 어디 있느냐고 했더니 용대초등학교, 원통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는 원통 혹은 인제 읍내에서 다니거나 원주, 춘천 등지로 나가서 공부한다고 했다. 그리고 어쨌건 대학으로 가거나 마을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다음 질문은, “장래 소, 아니 황태는 누가 말리냐?” 이 질문에는 묵묵부답들이었다. 황태산업연구회를 만들어서 자기들끼리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이 사업을 누가 이어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었다. 이 문제는 고용 없는 성장 시대가 닥치면서 오히려 쉽게 풀려가는 듯하다. 최근 외지에서 공부한다거나 무언가 시험 준비한다던 아이들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용대3리에 있는 황태 산업 관련 50여 업체 중 10개 업체에서 아이들이 일손을 보태주며 대를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어렸을 때 하던 일들이라 배우는 것도 빠르다. 예전에 인제고등학교에 황태 특성화반 하나 만들면 어떻겠냐고 했을 때 우리 애들은 이렇게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던 친구들이 이젠 자랑스럽게 그 애들을 내게 인사시킨다.

황태 마을뿐 아니라 백담마을, 양양의 송천 떡 마을, 제주 감산의 계곡마을 등 곳곳에서 농장이나 업체를 가족들이 운영하면서 아이들이 돌아와 함께 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고용 없는 성장 시대가 지속되고, 출산율 저하로 성장의 동력이 떨어지면 이런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밖으로 위로 향하던 시선을 돌려 나 자신과 집안을 돌아보는 시대이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넘어 아끼고 돌려쓰는 절약의 시대이기도 하다. 집안일을 잇는다는 것은 취업, 창업에 들어가는 비용뿐 아니라 거기에 이르기까지 들어가는 교육비용의 거품을 뺀다는 점에서 이런 흐름과 잘 들어맞는다. 그 지향하는 바에 공통점이 있는 사회적 경제의 관점에서 풀어보고 싶은 과제인 이유이다. 

집안일을 잇는 준비도 다른 모든 일과 같이 어려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언뜻 도교육청에서 시작하는 자유학기제도의 진로체험을 굳이 밖에 나가서 할 것이 아니라 집안일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이해 당사자들도 한 번쯤 관심을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이기원(금융정보통계ㆍ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