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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한림문학상 소설분야 당선작지하의 스포트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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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2  15: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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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의 스포트라이트

 
하나
해가 지평선에 가까워지면 그녀의 집 건너편 철길엔 기차가 지나갔다. 기차의 창문들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그 불규칙하고 몽환적인 빛은 그녀에겐 카메라 플래시와 같이 느껴졌다. 스물여섯이 되어서도 그녀의 볼엔 젖살이 남아있었다. 오늘 그녀는 꽃이 가득한 원피스를 입고, 거실에 앉아 기차를 기다렸다. 멀리서 기차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마당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자신이 생각했던 그럴싸한 자세를 취했다. ‘찰칵 철각속으로 속삭였다. 그녀는 오늘도 필름 속에 새겨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기차의 꼬리가 보이자,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이곳에 존재하기 위한 타협이었다. 이곳의 삶은 평안했고 그 평안함은, 때때로 그녀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지게 할 정도였다. 그럴 때면 마당에 서서 사진에 찍히는 상상을 했다. 희미해진 그녀의 존재가 빛났다. 화장이 잘 안 된 날엔 마루에 앉아 책을 읽으며 자세를 취했고, 화장이 잘 된 날엔 마당으로 나와 자세를 취했다. 오늘 그녀는 화장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가장 아끼는 원피스를 입고 자세를 취했다.
마당에는 가끔 드리우는 기차의 그림자와 옆집에서 담을 넘어온 넝쿨뿐이었다. 장독대가 잘 어울리는 집이었음에도, 그녀는 장독대에 장을 담아두지 못했다. 이웃이 가끔 건네주는 재래식 된장을, 가게에서 파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현대식 된장과 반씩 섞어두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녀는 지금 끓이는 된장국을 보면서도 만족하려 노력했다. 방울이 솟아나는 뚝배기 위에 반달썰기로 가지런히 놓여있는 단호박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어느 정도 타협한 후에야 겨우 간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요리할 때마다 타협을 반복했다. 이 음식이 그와 그녀에게 맞는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쌀을 밥솥에 담아 물에 씻을 때 즈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눈이 커지고 그녀의 젖살에 내려앉은 화장 위로 홍 기가 피어났다.
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곤 자신이 쓰고 있는 모자를 그녀의 머리 위에 얹어주었다. 모자챙의 양쪽엔 줄기가 그려져 있었고, 그 옆엔 황금색 나뭇잎이 수 놓여 있었다. 그는 마을 간이역의 역무원이었다. 그녀는 모자를 고쳐 쓰며 천천히 씻고 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장난 섞인 목소리로 싫어라고 대답했다. 아랑곳하지 않았다. 옷을 개어 두기는커녕 화장실로 가는 길에 그의 옷이 하나씩 자리 잡았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화장실에 수증기가 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나왔다. 그녀가 쌀을 다 씻고 밥을 안치기도 전이었다.
그는 머리 위의 수건을 털며 거실 한가운데 앉았다. 커다란 신문을 두 번 접어서 책의 크기로 만들었다. 그는 겨드랑이를 바싹 붙이고 앉았다. 그 모습은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 자세를 유지하며 신문을 낭독했다. 그녀는 밥을 안치고 지하수에 얼은 두 손을 문지르며 그에게 향했다. 그가 고이 접어놓은 겨드랑이 속으로 그녀의 손이 들어갔다. 그때야 그의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 그가 미안하다고 나지막하게 말하곤 다시 신문을 낭독했다. 그녀는 자신의 턱을 그의 어깨에 걸쳐두었다. 그의 귀에 가까워진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녀의 턱이 대롱대롱 매달려 강아지풀처럼 흔들렸다.
그녀가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며 그를 불렀다. 그는 신문을 던져두고 바닥에 누웠다. 그리곤 거실의 모퉁이로 굴러갔다. 그곳엔 둥글고 반짝이는 상이 벽에 기대어있었다. 누운 채로 밥상 다리를 펼쳐 자신의 위에 세웠다. 그제야 그는 일어나서 거실 가운데로 밥상을 옮겼다. 자신의 머리를 닦던 수건은 식탁 가운데 놓였다. 김치와 나물, 달걀부침, 한 개의 고봉밥과 평범한 밥이 차례로 놓였다. 마지막으로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가 수건 위에 자리 잡았다. 뚝배기는 열기를 품고 있었다. 부엌의 모습 그대로였다. 뚝배기 가장자리엔 뚝배기를 씻어내기 위해 사용된 세제가 방울이 되어 솟아났다. 뚝배기의 세척법도 잘 모를 만큼, 그녀는 서툴렀다. 하지만 그 뚝배기를 사이에 두고 양 끝에 앉은 그들은 거기에 어울렸고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세제가 끓어오르는, 뜨거운 된장찌개를 한입에 넣은 그의 표정 역시 그랬다.
 
사진 찍을 준비가 되지 않은 해가 그녀의 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 그녀는 화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볼에 덧씌워진 파우더가 자신의 볼을 더 동그랗게 만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느 때 보다도 두근거렸다. 코스모스가 피어났기 때문이다. 이맘때가 되면, 어린 시절 자신을 쫓아다니던 한 소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대화 한번 나눠 본 적 없는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소년의 마음, 소년의 고백에 의연한 눈빛만 전했을 뿐인데도 울먹거리던 소년의 마음을 상상했다. 그녀는 도시락을 싸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릇에 달걀을 깨고 소금을 약간 넣어 젓는다. 프라이팬을 달구고 식용유를 골고루 두른다. 잘 섞인 달걀을 얇게 펴서 올린다. 어느 정도 익으면 그 가운데에 김을 올려둔다. 조심히 말아 올린다. 달걀을 거의 끝까지 말아 올리면 그 끄트머리에 다시 달걀을 붓고 김을 올린다.’라고 그녀는 되뇌었다. 하지만 달걀은 생각보다 쉽게 찢어졌다. 겨우 형태만 갖춘 달걀말이를 보고 그녀는 타협했다. 아직 서툴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밑반찬으로는 멸치볶음과 배추김치, 콩자반을 선택했다. 도시락의 뚜껑이 닫혔다. 밥의 온기를 품은 도시락은 보자기에 싸여 그녀의 품에 안겼다. 간이역으로 가는 일은 쉬웠다. 그녀의 집 앞에 있는 철길을 그대로 따라 올라가기만 하면 됐다.
그녀가 간이역에 도착하자 역 주변을 쓸고 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기차표 사러왔는데요. 돈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왔어요.
-그럼 일단 먹고 얘기합시다.
그는 그렇게 얘기하곤 그녀에게 모자를 씌웠다. 벤치 끝에 그와 그녀가 나란히 앉았다. 그 가운데엔 도시락이 펼쳐졌다. 그는 도시락의 계란말이를 보고는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모르는 척하며 밥을 먹었다. 그녀는 이곳에 온 이유를 떠올렸다.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입에 가득한 밥을 오물거리며, 수염 난 턱을 그녀에게 들어 올렸다. 그녀는 집에서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다. 얘기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자신을 쫓아다니던 그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직접 듣고 싶었다. 그가 밥을 삼키고 입을 떼려 할 때 즈음, 저 멀리서 기차 소리가 들렸다. 그는 고개를 돌려 기차를 확인하곤 말했다.
-저건 여기서 멈추지 않아.
-다행이다.
지평선에 가까워져 온 태양이 그 둘을 비췄고 기차가 다가왔다. 그녀가 입에 있는 밥알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찰칵찰칵. 둘은 필름 속에 새겨졌다. 저녁을 다 먹고서도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간이역에 어둠만 남자, 그녀가 도시락을 다시 자신의 품에 안았다. 집에 가자는 신호였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가 일어나는 것을 도와줬다. 그 손은 놓이지 않았다. 그는 역무원실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림자가 가득한 간이역에 코스모스 향기가 퍼졌다.
하나,
지평선에 가까워져 온 해는 그녀의 집을 밝혔다. 장독대가 태양의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녀는 달라붙는 청바지와 파란색과 검은색이 섞인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거실로 나왔다. 신발장을 한참이나 보던 그녀는 빨간색 운동화를 신었다. 장독대를 열어 코를 킁킁댔다. 얼굴을 찡그리며 얼굴 앞으로 손을 휘저었다. 저 멀리서 기차의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두 다리를 모으고 양손을 위로 들어 브이를 만들었다.
-.
플래시는 켜지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내렸다. 멍하니 기차를 쳐다봤다. 객실의 창문이 없는 화물열차에는 한국 철도공사라고 쓰여 있었다. 기차의 칸 사이에서만 아주 잠깐씩 빛이 새어 나왔다. 화물열차가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움직였다. 천천히 신발을 벗고 안방에 들어갔다. 아침에 개어 놓았던 이불을 끌어안았다. 이불은 식어있었다.
잠시 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가 뒤에 누워 그녀를 안았다. 따뜻한 땀이 느껴지고,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목을 걸치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여름 기차 레일의 열기를 상상하며 조금씩 녹아내렸다.
 
다리미가 칙칙거리며 수증기를 뿜어냈다. 그녀는 의아했다. 매일 보던 기차는 연기를 뿜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 속 기차에는 연기가 선명했다. 석탄이 가지는 폭발력으로 터빈과 피스톤이 움직이는, 손잡이를 내리면 뿌뿌소리를 내며 덜컹거리던, ‘칙칙폭폭이라는 의성어와 기차 화통을 삶아먹었나라는 비아냥거림을 만들어냈던 기차. 그녀가 스팀버튼을 한 번 누르고 다리미를 셔츠에 놓으려다가 다시 들어 올렸다. 역시 두 번이 어울리라고 말하곤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그녀의 입에 웃음이 머물고 다리미가 셔츠 위를 가로질렀다. 다리미가 세워지고 그녀가 셔츠를 들어 올렸다. 얇은 셔츠 사이로 빛이 스며들었다. 전화가 울렸다. 그에게서 온 전화였다. 셔츠에 커피를 쏟았으니 새 셔츠를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당에 서서 철길을 응시했다. 화물열차가 지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시내로 돌아서 가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얼룩 묻은 셔츠를 입고 있을 그가 눈에 선했다. 그녀는 셔츠의 양팔을 묶어 자신의 목에 걸었다. 운동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철길에 가깝지만, 화물열차의 그림자가 닿지 않는 시냇가로 그녀가 향했다.
그 길은 그녀의 타협이었다. 길은 고르지 않았으나 철길과 인접해 있었고, 좀 더 낮은 지대였다. 솟아있는 나무들이 시냇가에 그늘을 만들어냈다. 묶어놓은 셔츠 덕에 그녀의 팔이 자유롭게 흔들렸다. 바람이 불자 가만히 서서 하늘을 봤다. 나뭇잎이 흔들리면서 불규칙한 빛이 그녀에게 스몄다. ‘혹시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웃음을 머금고 속삭였다. 찰칵찰칵, 오랜만입니다. 바람이 멈추자 그녀는 발걸음을 이어갔다.
시냇가의 끄트머리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인부들이 나무를 베고 있었다. 한 인부가 그녀를 보고는 돌아서 가라는 손짓을 했다. 길이 막혀있기 때문에 기찻길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더러워진 발을 보곤, 인부에게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여줬다. 인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녀의 발과 슬리퍼가 시냇가로 들어갔다. 그녀의 발에 있던 흙이 씻겨 나갔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 숙여 인사하곤 기찻길로 올라갔다. 인부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 나서 일을 계속했다.
기찻길로 올라서자 간이역이 보였다. 간이역으로부터 이어진 기찻길에 도로가 가로질러져 있었다. 도로와 기찻길이 교차하는 지점엔, 항상 표지판이 놓여있었다. 기차가 지나가니 정지하라는 표지판이었다. 표지판의 기차도 연기를 뿜고 있었다. 그녀는 표지판을 응시하며 방금 봤던 인부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다리미를 뜻하는 그림도 언젠가는 연기를 뿜고 있을지, 그녀는 궁금해졌다. 간이역으로 다가섰다.
-기차표 사러 왔는데요, 푯값이 없어서 셔츠를 가져왔어요.
-그럼 일단 갈아입고 얘기해봅시다.
그는 그녀에게 모자를 씌웠다. 그녀는 자신의 목에 묶여있는 셔츠를 풀며 역무원 실로 들어갔다. 그가 얼룩진 역무 원복을 벗었다. 양쪽 어깨에 걸려있는 견장과 검표기가 탁자에 놓여졌다. 새로 입을 셔츠에 견장과 검표기가 옮겨졌다. 그가 셔츠의 깃을 올리자 그녀가 넥타이를 매어준다. 셔츠가 역무 원복이 되고 그가 역무원이 되었다. 둘은 역무원실에서 나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문득 기차에 관해 묻고 싶어졌다.
-너 기차에 대해서 많이 알아?
-아무리 아버지 덕분에 이러고 있지만 알 건 다 알아.
-그럼 옛날 기차엔 왜 연기가 났어?
-석탄으로 물을 데우면, 그 수증기로 기차가 움직였거든. 그래서 석탄 덕분에 연기가 났지. 칙칙폭폭, 연기 나는 기차. 원래 이름은 증기기관차. 칙칙폭폭, 뿌뿌.
-지금 우리나라는 그 증기기관차라는 건 안 쓰지?
-, 북한은 아직 쓴다던데.
-그럼 저기 표지판에 있는 기차는 왜 아직 연기가 있어?
그녀가 기차 표지판을 가리켰다.
-저거? 그냥, 옛날부터 쓰던 거니까.
-그게 다야?
-그런 거 같아. 근데 생각해봐, 우리나라에 증기기관차가 있었을 때 우린 태어나지도 않았었어. 하지만 기차가 연기를 뿜는다는 건 알고 있어. 기차는 원래는 그런 거니까. 지금 눈앞에 있는 것보다 기억 속에 있는 게, 그게 본적도 없는 걸지라도 뭔가 더 애틋하고 선명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태어난 아기도 나중에 자기 입으로 말할 거야. 칙칙폭폭, 뿌뿌!
그가 손을 위에서 아래로 잡아당기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당장 무언가를 선택하는데, 과거가 영향을 미치긴 할 것 같아. 그 과거가 긍정적인 이미지라면 더더욱. 칙칙폭폭, 뿌뿌!
그녀가 기차 흉내를 내는 그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번에 물어보다 말았던 건데, 고등학교 때 왜 나한테 고백했어? 같은 동네 살았지만, 그때까지 나랑 얘기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잖아.
-내가? 아 그때! 칙칙폭폭, ㅃ….
그가 또다시 손을 위아래로 움직이려 하자 그녀가 그의 손을 붙잡으며 노려봤다.
-그냥, 저 표지판에 연기가 있는 거랑 비슷한 이유일 거야. 아마도.
 
하나, ,
화물열차의 배차 간격은 점점 늘어났다. 때로는 일반 열차보다 더 많이 배차되기도 했다. 해 질 녘이 되면 때때로 그가 전화로 화물 열차가 지나간다고 알려주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시냇가로 내려갔다. 열차가 지나가면 바람이 일었으므로,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도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시냇가로 향했다.
시냇가에 들어서자마자, 인부가 서 있었다. 인부는 저번처럼 그녀에게 돌아서 가란 손짓을 했다. 그녀는 인부의 뒤를 봤다. 간이역으로 향하는 시냇가의 나무가 모두 베어져 있었다. 화물 열차가 지나다닌 이후부터 이곳은 그녀의 타협이었다. 그녀가 생각했던 마지막 타협점이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무너지고 있었다. 그녀는 기찻길로 올라 간이역으로 걸었다. 간이역이 보일 때 즈음 화물 열차가 지나갔다. 그녀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는 혼자 있지 않았다. 그녀는 둘을 지켜봤다. 그가 다른 누군가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누군가는 고개 숙인 그의 어깨를 토닥이고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 누군가도 역무원인 것처럼 어깨에 견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견장은 그녀가 봐오던 것보다 화려했다. 그녀는 누군가가 그의 윗사람인 것 같아 묵례를 했다. 누군가도 그녀에게 묵례를 하고 사라졌다. 간이역에는 그와 그녀 단둘이 남았다. 그녀는 내려간 입꼬리를 힘겹게 올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가지고 왔어요. 하지만 꼭 열차를 타야 해요.
-이번 달까지만 태워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앞으론 어렵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그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고 느껴졌다. 눈물을 닦으며 다시 한 번 그를 훑어봤다. 그는 한쪽 어깨에만 견장을 차고 있었다. 둘은 손을 잡고 기찻길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방금 봤던 분은 역장님이야. 여기 이제 없어지고 지하철 생길 거라고 하셨어. 다음 달에 다시 찾아오실 때까지, 다른 직업을 알아봐 주시겠대.
그녀는 아무 말이 없이 그를 따라갔다. 그가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올렸다. 그녀도 그를 따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엔 기차 표지판이 있었다. 철길과 차도가 교차되어 있는 공간. 그 공간마다 서 있는 기차 표지판에는, 기차가 아닌 증기기관차가 그려져 있었다. 둘은 이 아이러니한 풍경에 갇혀있었다.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증기기관차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하나, , - 찰칵
더는 간이역에는 코스모스 향기가 나지 않았다.
그와 그녀는 서울로 이사했다.
 
역장이 새로 가져온 직업은 완구 판촉원이었다. 로봇, 자동차, 비행기 등 수 많은 종류의 완구가 있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기차였다. 레일과 함께 판매해야 하고 기계적인 부분도 있어 고장이 잦았다. 더욱이 부피도 다른 완구들보다 훨씬 크기에 다른 판촉원들은 까다로워하는 종류였다. 그녀가 왜 하필 기차를 선택했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아기들 돌잡이 하듯, 별 이유는 없어.
그녀는 이것이 그의 타협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불룩한 배를 감싸며, 퇴근한 그를 조금이라도 일찍 보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 가득 그림자 대신 전등의 불빛이 가득했다. 그림자뿐인 전철이 몇 대 지나가고 환한 전철이 들어오자 그가 나타났다. 배를 만지며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아이를 데려왔어요.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출구 쪽으로 몸을 틀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잡아당겼다. 그는 웃으며 그녀 옆에 섰다.
사진에 담기는 순간을 위해 자세를 준비하는 시간은 3초뿐이다. 하지만 둘은 오래전부터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수많은 준비를 해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역시 두 번이 어울렸다.
 
하나, , - 찰칵”, “찰칵
지하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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