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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법승들이 걸어간 길, 파미르로 가는 길고태규 교수의 실크로드 문명기행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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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9  17: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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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부터 9월까지 연재했던 고태규 교수의 실크로드 문명 기행.
실크로드 문명기행의 첫 시작점은 유럽이었다. ‘인류 문명의 보물, 유럽을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에서부터, 유럽 속의 이슬람 문명, 탱고 ‘플라멩코’까지. 그리고 아시아로 넘어가 ‘실크로드의 동쪽 종착역 일본, 교토와 나라’, ‘신라 경주에도 서역인이 살았다고?’, ‘실크로드의 수도, 당나라 장안’, ‘불교 미술의 보고, 돈황’, 마지막 원고인 ‘타클라마칸 사막은 살아있다’까지, 총 12편을 연재하고 독자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1년 6개월 만에 다시 독자들을 찾아온 실크로드 문명기행.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지면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또 다시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한다.

314번 국도, 카라코람 하이웨이
카쉬가르(카스)에서 (동)파미르로 가려면, 우선 314번 국도(카라코람 하이웨이: KKH)를 따라 타스쿠얼간까지 가야 한다. 이 길은 2차선으로 파키스탄 수도인 이슬라바마드까지 1,200km나 뻗어있다. 수많은 고봉준령을 넘고 강을 건너면서 뱀처럼 구불구불 기어간다. 거기서 여러 갈래로 다시 인도로 넘어가는 것이다. 카쉬가르에서 가이즈촌(盖孜村) 검문소 부근까지는 가이즈강이 계속 따라왔다. 버스는 이 강가를 따라 협곡 사이를 곡예 하듯이 내달렸다. 강가에는 야생 낙타가 돌아다닌다. 길 양쪽의 산들은 온통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고, 그 뒤로 멀리에는 설산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다. 강가에는 가끔 푸르른 오아시스에 둘러싸인 서너 가구의 작은 마을들이 보인다.

타스쿠얼간-총령진
백사호(白沙湖 쿱타호)와 카라쿨호수를 거쳐 오후 8시경에 타스쿠얼간에 도착했다. 약 300km를 오는데 6시간이 걸렸으니, 길이 얼마나 험한지 상상이 될 것이다. 이곳은 과거에 총령진으로 불렸으며, 구법승들이나 상인들 또는 사신들이 중국과 인도를 오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래서 법현의 <불국기>, 송운의 <송운행기>, 현장의 <대당서역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 5세기부터 8세기까지 3백여 년에 걸친 여행기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거리를 오가는 타지크족 여인들의 의상이 특이하다. 이 여인들은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위가 납작한 모양이다. 저들은 수백 년 동안 저런 복장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파미르 사람들의 전통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것이다.

타지크 유목민 마을
아침에 석두성에 다녀온 후, 타스쿠얼간에서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국경초소인 홍치라포(紅旗拉甫)로 출발했다. 이 길은 동파미르의 정상에 오르는 길이다. 왕복 260km의 거리다. 카쉬가르에서 타스쿠얼간에 이르는 길(약 300km)도 멋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목가적이고 평화롭다.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한 타스쿠얼강이 도로 옆으로 흐르고 있어서 고원의 삭막함을 달래주었다.
  사람이 살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도로 양쪽으로 타지크 유목민들이 옛날 방식 그대로 살고 있었다. 너비가 2-3킬로쯤 되는 초원 들판에서 양이나 야크, 그리고 말 등을 기르면서 목축생활을 하고 있었다. 옥수수나 밀 등 약간의 농사도 짓는 것처럼 보였다. 도로 왼쪽으로는 동파미르의 설산들이, 오른쪽으로는 서파미르의 설산들이 이어진다. 남쪽 정면으로는 카라코람산맥의 설산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이 얼마나 멋진 그림인가. 여기가 바로 동파미르의 한가운데인 것이다.

   
 동파미르의 황량한 풍경
파미르에 대한 혜초의 두려움
혜초는 파미르를 앞두고 이에 대한 두려움을 오언시(五言詩)로 표현했다. <왕오천축국전>에서 727년 11월 상순(음력)에 안서도호부(지금의 룬타이)에 도착했다고 기록했으니까, 이 날짜를 역산하여 보면, 스님은 아마도 726년 말과 727년 초 겨울에 파미르를 지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차디찬 눈이 얼어서 얼음으로 변하고
찬바람은 땅이 갈라져라 매섭게 부는구나./ 드넓은 호수는 얼어붙어 융단을 깔아놓은 듯하고/ 강물은 제멋대로 벼랑을 갉아먹는구나.

용문(龍門)엔 폭포수마저 얼어 물길이 끊기고/ 우물 테두리는 도사린 뱀처럼 얼어붙었구나./ 불을 벗 삼아 서서히 산을 오르며 노래를 읊조린다마는/ 과연 저 파미르를 어떻게 넘을 수 있을는지
(출처: 정수일 역, 왕오천축국전).      

혜초경행처비와 공주보
택시기사가 홍치라포 방향으로 약 70km쯤 지점에서 오른쪽 비포장길로 접어들더니, 10km쯤 달리다 차를 세운다. 거기에는 법현과 현장, 그리고 혜초 스님의 경행처비(經行處碑: 지나간 곳을 기념하는 비석) 세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혜초비는 스님을 중국인으로 표기하고 있다. 혜초의 비석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분명히 대당화상혜초경행처(大唐和尙慧超經行處)라고 쓰여 있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기사가 손가락으로 앞산을 가리킨다. 저 앞산 중간쯤에 공주보(公主堡)가 있다는 것이다. 인도와 중앙아시아와의 교역의 중요성과 지리적인 전략적 가치 때문에 당나라도 서기 751년에 쿠차의 안서도호부에 근무하던 고선지 장군을 파견하여 토번군(티벳군)에게 일시적으로 빼앗겼던 이 성을 회복했던 것이다. <구당서 고선지전>에는 그가 토번군을 토벌하고 실크로드를 회복했다고 적혀 있다. 실제로 이 지역을 답사해 보면, 인도로 가는 실크로드에서 공주보가 얼마나 교통의 요충지인지 확인할 수 있다. 

홍치라포와 쿤제랍고개
혜초경행처비에서 돌아 나와 314번 도로를 타고 쿤제랍고개로 향했다. 중국의 국경초소인 홍치라포에는 새로 멋지게 지은 건물 두 개가 서있고, 군인 몇 명이 나와서 출국하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관광객 이십여 명이 여기저기 서성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외국인 출입통제 구간이고, 25km 정도만 더 가면 파키스탄과의 국경선이 지나가는 쿤제랍고개가 나온다. 그 고개 주변의 고봉들이 동파미르의 정상인 것이다. 파미르는 하얗고 푸르른 자태로 온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옛날 구법승들이 걸어서 이 험한 고개를 넘으면서 겪었을 고생을 생각하니 저절로 옷깃이 여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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