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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과 글쓰기경쟁력 있는 기술은 전공에서 나오는 것, 가슴으로 원하는 일을 위해 레드오션을 떠나는 도전이 필요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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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23  13: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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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한 방송사 뉴스에 ‘코딩’ 배우기에 여념이 없는 대학 동아리 모임이 소개됐다. 별나지도 않은 소식이 뉴스거리가 된 것은 동아리 학생들이 대부분 인문대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리스신화나 논어, 헤겔, 조선왕조실록 대신 코딩을 배우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바로 취업. 최소한 그 뉴스에서는 인문대생이 IT관련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데 학생과 공대 교수는 물론 영문과 교수마저 공감하고 있었다. 나도 기술이 중요하다는 데 백번 동의한다. 무슨 일에든 기술이 필요하고 기술 없이 취업도 없다. ‘인구론’(인문대 졸업생 열 명 중 아홉 명은 논다)같은 ‘웃픈’ 말들이 계속 생겨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서 또 다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이 우리 삶에 지니는 의미를 푸념처럼 늘어놓지는 않겠다. 다만 코딩을 배우는 인문대생의 절박한 모습을 보며 뭔가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코딩이 쓸 데 없거나 보잘 것 없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뜬금없이 코딩을 배울 정도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전공 영역에서는 쓸모 있는 기술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었다. 그렇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당연하게도 전공 자체가 곧 기술이 되는 응용 학문에 반해 기초 학문은 그 간극이 크고 쉽게 눈에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경쟁력 있는 기술이 결국 전공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분야를 막론하고 다르지 않다. 

문학이나 저널리즘 전공자의 예를 들어보자.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 중 하나는 코딩이나 회계, 재무관리가 아니라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근데 그냥 오탈자나 어색한 표현, 비문 없이 술술 잘 읽히는 수준의 글쓰기로는 부족하다. 문학 전공자의 글에는 동서고금의 신화나 소설, 희곡, 영화 등등에 나타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감상들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할 것이다. 저널리즘 전공자라면 당연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다방면의 의미 있는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엮여 흘러가는 글을 써야 한다. 가볍게 읽히고 끝나버리는 글이라도 재미의 깊이가 다른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글쓰기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려면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고 쓰고 다시 읽고 재해석하고 다시 쓰고를 반복해야 하는데, 이는 재미로 하룻밤 사이 소설이나 영화, 다큐 한편을 해치우고 페이스북에 감상 몇 줄 적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노력을 요구한다. 글쓰기가 돼야 코딩이든 뭐든 다른 영역의 기술들도 비로소 플러스 알파가 된다. 

그까짓 글쓰기가 취업에 무슨 소용이냐는 반론이 없을 수 없다. 일자리가 주로 만들어지는 제조업과 ICT 서비스업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상상력과 비판의식을 허영과 사치로 치부하는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사회에 살고 있음도 분명하다. 하지만 콘텐츠 산업은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고 일자리도 양적, 질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쉽게 말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써낼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해지고 그에 따라 대우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논의들을 떠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가슴으로 원하지도 않는 일자리를 놓고 레드오션의 주변부에서 허우적대느니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하는 게 낫다.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블루오션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도전정신이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큰 위로나 도움은 안 되지만, 도전해서 끝내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귀담아 들어도 나쁠 건 없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젊은 시절 자신의 문학적 야망을 좇아 안정된 삶을 기대했던 부모를 속이면서까지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오랜 기간 가난의 불편함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소설 쓰기를 이어가다 결국 해리포터로 큰 성공을 거둔다. 그가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청중들이 꼭 기억해 주기를 부탁한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크의 말은 방황과 좌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슴에 품어둘만 하다. “우리가 내면에서 성취하는 것이 우리 외면의 현실을 바꿔놓을 것이다.”
/송현주(언론정보ㆍ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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