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시 학점은 학생의 ‘성실함’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수월한 척도가 된다. 많은 기업들이 높은 학점으로 졸업한 학생을 선호하고, 기업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학생들은 학점 따기에 목을 매고 있다. 하지만 최근 수위가 높아지는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인해 고학점자가 일등 인재로 이어진다는 공식이 깨어짐은 물론, 부정행위 등을 통한 무한한 학점 경쟁이라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과 이에 꼬리를 무는 많은 문제점들의 해결을 위해 우리 대학에서는 ‘성적등급 기준 변경안’을 통한 상대평가 기준을 정비해 이번 학기부터 적용했고, 타 대학에서도 기존 재수강 제도를 개편하는 등 학점 인플레이션을 완충하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러한 대학 측의 제도 변화는, 스펙 쌓기의 취업 관행이 계속되고, 학점을 가장 기본 스펙으로 여기는 인식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또한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양날의 검’의 쓴 맛을 봐야 한다. 좋은 학점으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학생들이 더 좋은 기업에 취직할 수 있도록 하는 한쪽의 날과, 자칫 잘못하면 ‘학점을 남발하는 학교’라는 불명예를 안을 수 있는 반대쪽의 날이 공존하는 것이다. 때문에 학점 인플레이션의 완화를 위한 대학 내의 획기적인 전면 개편이 현실적으로 힘겨운 실정이다.

사실 학점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것은 학교가 나서 해결해 줄 만한 일이 아니다. 취업 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상반기 신입사원을 채용한 144개사를 대상으로 ‘신입사원 합격스펙 및 평가방식’을 조사했다. 그 결과 합격자들의 평균 학점은 4.5점 만점에 3.6점에 그쳤다. 평가방식도 채용 시 ‘학점을 반영하지 않는다’가 44.4%의 수치를 보였고, ‘일정 학점만 넘기면 동일하게 평가’한다는 방법도 같은 수치를 보였다. 총 설문 기업 중 무려 88.8%가 “학점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고 답변한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최근 기업들은 학점보다는 직무 역량에 초점을 두고 ‘실용적 인재’를 뽑으려 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아직까지 이런 기업들의 인식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흡사 ‘아노미 현상’의 모습을 띠고 있다.

언제까지 학점을 단순한 취업의 도구로만 삼아야 할까. 많은 기업들이 학점을 넘어선 현장ㆍ실무 능력을 요구하고 있지만 학생들에게는 언제나 학점이 우선이다. 학점의 주인이 되는 학생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니 학점 인플레이션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학교도 그 부작용이 낳은 부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급급하다. 차라리 학점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보기보다, 스스로 세운 목표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건전한 잣대로 활용함이 훨씬 낫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대학 생활의 뿌듯함과 기업에게 내세울 수 있는 성실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