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5일은 법의 날이었다. 내 기억 속에서 5월 1일로 남아 있었기에 어찌 된 일인지 찾아보았다. 올해가 제52회 법의 날이었으니, 제1회 법의 날은 1964년 5월 1일로 대한변호사협회가 주최한 기념식이 열렸다고 한다. 원래 법의 날의 제정은 미국의 Law Day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법의 날은 냉전 시대 사회주의국가의 가장 큰 행사 중의 하나인 노동절에 대항해서 1958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 제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우리나라에 도입된 법의 날 행사는 민간단체인 변호사협회가 주관하여 개최하다가 1969년부터 법무부와 변호사협회 공동주최로 변경되었고, 2003년에는 그 기념일도 4월 25일로 변경되었다. 4월 25일은 1895년 우리나라 최초의 법률인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 날짜이다. 

지난달 24일 대한변호사협회와 법무부가 공동 주최한 제52회 법의 날 행사가 대검찰청에서 열렸다. 법의 날 행사가 법무부의 주관으로 넘어가면서 제정 취지는 국민의 준법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것으로 굳어져 갔다. 법무부가 행사주관기관인 이상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법의 발전 역사와 법의 본질적 기능을 생각한다면 법의 날이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행사가 된 것도 당연한 결과이다. 

법은 역사적으로나 본질적으로나 자의적인 권력으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법 앞에서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의 법 감정은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을 가진 일부 계층이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의 진상규명 요구는 공권력에 의해 무시되거나 거부되었고,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자 출범하는 특별조사위원회의 권한과 구성을 둘러싼 논란은 정부가 이 사건을 선박사고 정도로 취급하거나 형식적인 조사를 통해 대충 넘어가려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 자살한 중견기업 회장의 정치자금문제는 막 취임하여 부정부패 척결을 외친 총리의 사퇴로 끝날 사안이 아닌데, 검찰이 일부 관련자에 대한 조사를 넘어 성역 없는 수사를 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이 모든 결과는 사법을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이 가장 크다. 법원은 전관예우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으며, 검찰은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어날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각종 인사청문회에서 밝혀지는 지도층의 위법과 탈법은 너무 일상적인 것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법치주의의 확립은 국민에게 법질서를 존중하고 지키도록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다. 준법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최선의 원칙임을 인식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법치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법 앞에 예외가 없으며,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법 위반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법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한 모든 사법기관의 수장들은 한결같이 현재 우리 사회가 법이 아닌 힘과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이며, 법과 사법기관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짐을 들으면서도 어쩐지 내년에도 똑같은 말을 할 것이라는 우울한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미국의 2015년 Law Day에서는 그 누구도 어떤 정부도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원칙을 확립한 대헌장(Magna Carta) 제정 800주년을 기념하며 시민들에게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여러 행사를 했다고 한다. 

물론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법의 잣대로 해결할 수 없다. 법 만능주의 사고는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시민사회는 법 규범 이전에 공동체 의식, 연대의식, 사회와 이웃에 대한 책임과 배려와 같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유지되어야 바람직하다. 법 규범은 최후의 수단으로 그러면서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과 사법기관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국민의 준법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법의 날이 아니라 자유와 인권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모든 시민이 함께하는 법의 날 행사가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 정병덕(법행정·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