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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서방 전파의 관문 테르메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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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23  18: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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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에 사마르칸트를 출발하여 저녁 6시에 테르메즈에 도착했다. 약 400킬로미터를 9시간이나 달린 것이다. 우리 60-70년대에 서울에서 부산이나 목포까지 갈 때 걸리던 시간이다. 중앙아시아는 그만큼 도로 사정이 열악하다. 구 소련이 통치할 때 이런 변방 공화국에는 인프라에 투자를 안했다는 뜻이다. 사마르칸트 택시 정류장에서 1인당 70,000솜(약 28달러)에 4명(나와 두라나, 쿠르이트, 운전사 로슬로프)이 합승했다. 기차를 타고 가려고 아침 8시쯤 기차역으로 갔으나 밤 10시에나 기차가 있다는 말을 듣고 택시정류장으로 간 것이다. 택시들이 서로 손님을 태우려고 난리다. 이 코스는 638년경에 현장이 인도로 갈 때 지나갔던 길이다. 테르메즈 부근은 중국 전한(前漢, 기원전 202년 ~ 서기 8년) 때는 월지국(月氏國)이 다스리던 지역으로 장건(張騫, ? ~ 기원전 114년)이 월지와 연합하여 흉노를 치기 위해 찾아가던 나라이기도 하다. 장건은 가던 도중에 흉노에 붙잡혀 10년 동안이나 억류당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탈출하게 된다. 테르메즈에서 강을 건너면 아프간 박트리아(발흐, 발크) 지방이다. 기원전 4세기에 인도로 진격하던 알렉산더대왕이 세계에서 가장 동쪽에 건설한 알렉산드리아-옥수스라는 도시가 있었던 곳이다. 또한 청색 안료로 사용되는 청금석 산지로 유명하여, 이 광석을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양에 널리 수출하던 지방이다.

도로 사정이 말이 아니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섞여 있어서 온 천지에 먼지가 자욱하고 중국 신장보다 비포장 도로가 더 심했다. 키타브에 도착하기 전에 큰 고개를 하나 넘었다. 전체적인 풍경은 신장과 비슷하다. 그러나 키르기스탄 만은 못하다. 데카나바트 이후로는 정말 삭막하다. 완전 사막이다. 그나마 중간중간에 강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 척박한 환경에도 마을은 있었고 사람들도 살고 있었다. 카라쉬 부근에는 흙집이 많았다. 타클라마칸사막 주위의 오아시스 마을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런 사막 환경에 시멘트집과 슬레이트나 함석집이 영 생경하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신장이나 키르기스스탄처럼 흙집이 훨씬 자연스럽고 잘 어울리는 거 같다. 과거 공산권을 상징하는 저 회색빛 집들은 정말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다.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등 동유럽에 가도 저런 회색집 지붕이 많다.

가끔가끔 나타나는 오아시스 마을의 노란색 단풍과 가을 풍경이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옛날에 인도로 불법(佛法)을 구하러 또는 장사하러 이 길을 걷던 사람들도 저런 풍경을 보고 마음의 안식을 얻었을 것이다. 육체는 피곤하고 힘들지만 저런 자연의 모습에서 힘을 얻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을 수 있는 힘을 얻었을 것이다. 여기서는 행상들이 오아시스 마을을 대신한다. 그들은 소소한 먹을거리와 물을 팔고 있었다. 길가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늦은 점심으로 만두를 튀긴 것과 비슷한 음식을 얻어먹었다. 내가 돈을 내려하자 운전사인 로슬로프가 다른 사람이 냈다고 말린다. 감사한 마음에 콜라를 사서 하나씩 나눠주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고개에 있는 기념탑에서 운전사인 로슬로프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찍었는데, 연락처를 잃어버려서 보내줄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

저녁 6시에 테르메즈에 도착하니 택시 운전사인 로슬로프가 결혼식에 가자고 한다. 그러나 바쁜 일정상 고고학박물관에 먼저 가야해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우즈백 결혼식을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카라콜에서 결혼식 피로연을 본 적이 있는데, 우즈백에서는 아직 보지 못했다. 테르메즈 고고학박물관에는 3-4세기의 불교 유물이 꽤나 볼만했다. 테르메즈는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간다라 지방(현재 파키스탄 페쌰와르 지역)을 거쳐 카이버 고개를 넘고 2001년 3월 초에 탈리반이 파괴한 바미얀 대석불로 유명한 바미얀 지방을 거쳐 사마르칸트 쪽으로 올라가는 경유지여서 이 부근에서는 불교 관련 유적지와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638년경 인도로 가는 길에 이곳에 들른 현장은 대당서역기 범연나국(梵衍那國) 편에서 대석불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 왕성 동북쪽 산의 후미진 곳에 돌로 만들어진 입불상이 있다. 높이는 140~150척(실측 53미터-저자 주)이며, 금색이 찬란하게 빛나고 온갖 보배로 장식되어 눈을 어지럽힌다. 동쪽에 가람이 있는데, 이 나라의 선왕이 세운 것이다. 또한 가람 동쪽에는 유석(鍮石-청동)으로 만들어진 입불상이 있는데, 높이가 100여 척(실측 35미터-저자 주)에 달한다. 몸을 따로 주조한 후에 그것을 모두 합하여 완성한 것이다. ---- (김규현 역, 대당서역기, 87페이지)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온갖 보물로 장식되어 있던 높이가 50미터가 넘는 대석불은 멀리서 보아도 정말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온갖 고생을 다하며 불법을 구하러 인도로 가는 구법승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혜초도 이 지역을 범인국(犯引國)이라고 부르면서 자세한 기록을 남겼으나, 이 대석불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으로 보아서 직접 들르지는 않고 전해들은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측된다.

늦은 저녁을 먹으러 독일 평화 유지군들이 많이 드나들었다는 식당에 갔다. 독일군은 아마도 여기서 주둔하면서 아무다리야강 건너 아프간에서 평화 유지 활동을 했었나보다. 짝퉁 태국식 음식을 먹었는데 맛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한국으로 유학오고 싶다는 매니저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새로 리모델링한 수르콘 호텔이 18달러 정도인데 꽤나 괜찮았다.

다음 날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택시를 30달러에 대절해 불교 유적지와 관광지를 돌기로 했다. 운전사가 러시아인인데 영어가 전혀 되지 않는다. 나의 경험 부족이다. 영어가 조금이라도 되는 운전사를 구했어야 되는데----. 아프간 국경초소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국경초소는 아무다리야 강가에 있다. 지금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나라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다.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타쉬켄트 호텔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사업가가 초청장을 써준다고 했으니까 나중에 꼭 가볼 작정이다. 옛날에 구법승들이 바로 이 길을 따라 아무다리야강을 건너서 발크, 바미얀, 카불을 거쳐 카이버고개를 넘고 폐샤와르와 카슈미르를 거쳐 인도로 오갔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 길을 따라 인도까지 가보고 싶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를 가보지 않고 실크로드를 완주했다고 말할 수 없다.

술탄 사오다트 사원과 키르키즈성, 알 하킴 사원, 그리고 고대 불교 유적지로 유명한 페이요즈 테파(Fayoz Tepa)와 카라 테파(Kara Tepa)를 찾아 갔다. 3세기경의 불교 사원인 페이요즈 테파는 1989년에야 발견되어 지금은 상당 부분 복원되어 있었다. 그래서 고대 유적지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카라 테파는 페이요즈에서 남쪽으로 2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어서 페이요주에서 희미하게 보인다. 바로 남쪽은 아무다리야강이고, 그 강 너머가 바로 아프가니스탄 땅인 것이다.

카라 테파는 운전사가 안 간다고 해서 혼자서 걸어갔다. 정부 허가 없이 자기는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적발되면 벌금을 문다면서. 갔다 와서 대판 싸웠다. 운전사를 잘못 선택한 내 잘못이다. 카라 테파는 일부만 발굴한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복원 작업은 전혀 없었다. 내가 갔을 때는 한 가족 일행 5명밖에 없었다. 카라 테파는 내가 보기에는 불교 사원보다는 대상들의 숙소인 카라반사리처럼 보였다. 칸칸이 막아진 작은 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두 불교 사원터는 인도 불교의 서방 전파를 증언해주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그러니까 불교는 간다라와 바미얀 지방으로 서쪽으로 갔다가 거기서 방향을 북쪽으로 바꿔서 테르메즈와 사마르칸트, 그리고 타쉬켄트까지 전파되었다. 또 다른 전파 루트는 간다라에서 카이버고개를 넘어 바닥샨으로 해서 파미르와 힌두쿠시 사이의 협곡을 지나가는 와칸주랑을 거쳐 타쉬쿠르간(총령진)으로 넘어간 다음, 거기서 서역남로(법현, 현장)와 서역북로(혜초)를 따라 장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부하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아내와 통화가 되었다. 아내는 나와 이틀 동안이나 연락이 안 되어 외무부에 실종 신고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즈벡 일부 지방에서는 인터넷이나 휴대폰 통화가 전혀 되지 않았다. 내가 이틀 동안 돌아다녔던 아프가니스탄 부근이 바로 그런 지역이었다. 실크로드 여행에는 아직도 이렇게 예상치 못한 힘든 장애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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