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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부하라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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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30  17: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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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이슬람 도시 부하라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실크로드에서 사마르칸트를 거쳐 투르크메니스탄의 메르브로 가는 길 중간에 자리 잡은 부하라는 9세기와 10세기에 샤마니드(Samanid) 왕조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다. 이슬람 세계의 중심으로서 중앙아시아에서 종교와 문화의 꽃을 피웠다. 이런 종교 문화적 성숙기에 서구사회의 뉴턴과 셰익스피어에 필적할만한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이븐 시나(Ibn Sina)와 시인들인 피르다우시(Firdausi)와 루다키(Rudaki)가 페르시아 이슬람 사회에서 인기를 누렸다. 1220년에는 징기스칸 군대의 공격을 받았으며, 1370년부터는 티무르의 통치를 받았다. 16세기에는 우즈백의 샤바니드 왕조가 부하라를 수도로 정함으로써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부하라에는 수십 개의 바자르와 카라반사리, 200개가 넘는 신학교(메드레세), 그리고 300개가 넘는 모스크가 있었다. 부하라는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유대인공동체가 최근까지 있었던 곳이며, 전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이 1842년에 부하라 왕에게 수모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부하라 시내를 거닐다 보면 일본 교토나 나라와 같이 성지 순례한다는 느낌이 든다. 도시가 흙벽돌로 지어진 건물로 가득해서 전체적으로 누런 색깔을 띠고 있다. 사마르칸트보다 이슬람의 종교적 분위기가 훨씬 강한 도시다.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던 구소련 시대에 이슬람 건축물들이 이렇게 잘 보존된 것만 해도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하라의 아이콘, 칼랸 모스크와 미나레트
칼랸 모스크는 바로 옆에 우뚝 솟아있는 칼랸 미나레트와 함께 부하라의 상징이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인 이곳 사원에서는 만여 명의 무슬림들이 한꺼번에 예배를 볼 수 있다. 사원 중앙에는 커다란 뽕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에메랄드 색으로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돔 사이에는 예배를 인도하는 무이진이 자리하는 멘바르가 서 있다. 멘바르는 작은 사원처럼 귀엽게 생겼다. 내가 이 사원에 들어갔을 때는 마침 예배가 없어서 사람들이 드물어 아주 조용했다. 나오는 길에 매표소에서 담소를 즐기는 할아버지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이 사원의 웅장함과 우아함에 이슬람 건축예술의 정수를 보는듯한 감동을 받았다.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에 있는 메드레세들보다 더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장실도 얼마나 깨끗한지 또 한 번 놀랐다. 무슬림들은 기도 전에 반드시 손과 발 그리고 얼굴을 씻는 의무가 있어서 그런지 이슬람 국가에 있는 모스크 어디를 가나 화장실은 깨끗하다.

칼랸 미나레트는 사원의 부속 건물이다. 이슬람 사원은 반드시 첨탑인 미나레트가 함께 붙어 있다. 기독교 교회의 종탑을 생각하면 된다. 물론 스페인 세비야에 있는 대성당 히랄다탑이나, 코르도바에 있는 메스키타의 종탑처럼 이슬람 미나레트를 교회의 종탑으로 바꾸어서 사용하는 곳도 있다. 이 미나레트는 높이가 47미터나 되어 과거에는 사형 집행장으로도 사용되어 ‘죽음의 미나레트’라는 불명예스런 이름도 갖고 있다. 사마르칸트의 비비하눔 미나레트에서 티무르대왕이 가장 사랑했던 비비가 떨어져 죽임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슬람 사원의 미나레트에서는 무이진들이 올라가서 아잔(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을 합창한다. 높은 곳에서 도시 곳곳에 퍼지는 아잔의 소리를 듣고 무슬림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예배를 본다. 나는 이 아잔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는 못하고 텔레비전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청아하고 신비로운지 저절로 신을 향한 경배심이 우러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13년 1월, 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 날, 루마니아 야시(몰도바공화국과의 국경에 있는 작은 도시)에 있는 동방정교인 성삼위일체교회에 가서 예배를 본 적이 있다. 내가 놀란 것은 성가대가 부르는 성가들이었다. 바로 무슬림 아잔이 부르는 노래 소리와 기독교 성가대가 부르는 노래 소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저음으로 깔리면서 경건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기독교 사회인 동유럽이 이슬람 사회인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2백 년 가까이 받으면서 만들어진 자연스런 문화융합현상일 것이다.

칼랸 모스크를 나오면서 카페에서 카자흐스탄 아가씨 마리아와 메지나를 만났다. 대학생인 이들은 이웃 나라인 우즈백으로 여행을 왔단다. 이웃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것이 너무나 많다며 신기하다고 말한다. 아르크성으로 가다가 꼬맹이 친구들인 딜노자와 파리자, 그리고 죠니를 만났다. 딜노자와 파리자는 12살로 5학년인 소녀들이고, 죠니는 10살로 4학년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던 딜노자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뜬금없이 선물을 교환하잔다. 내 펜하고 자기 펜. 내 것은 샤프연필인데, 코칸드의 거리에서 만난 여대생 굴하요가 선물로 준 것이다. 그게 부하라에서 다시 교환된 것이다. 실크로드에서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과거에도 그랬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물건들이 서로 교환되었을 것이다. 사진을 찍는 대가로 사진을 보내주기로 했는데, 주소를 잃어버려서 못 보내주고 말았다. 정말 귀엽고 맹랑한 무슬림 꼬맹이들이었는데.

대영제국이 수모를 당한 아르크성
7~8세기에 지어지고 16세기 개축된 것으로 전해지는 아르크성은 부하라 왕국의 칸인 에미르들이 1920년 소비에트 붉은 군대에 쫓겨 아프간으로 도망가기 전까지 살았던 궁전 겸 성이다. 그러니까 성 안에 궁전이 있는 것이다. 이 성은 징기스칸의 공격도 받았고, 티무르의 공격도 받았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이 성은 전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이 수모를 당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1842년 6월 24일, 바로 이 성 앞에서 수천 명의 주민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영국군 챨스 스토다트 대령과 아서 코놀리 대위의 목이 망나니의 칼에 무참히 떨어진 것이다. 1840년 스토다트 대령은 영국이 아프간을 점령한 사실을 부하라 왕인 나스룰라 칸에게 설득하려고 파견되었다. 그런데 그는 선물도 가져오지 않고, 빅토리아 여왕의 친서가 아니라 당시 인도를 다스리던 영국 총독의 친서를 가지고 왔다. 대영제국의 왕과 자신이 동급이라고 여겼던 나스룰라는 대령을 벌레가 득실거리는 감옥에 쳐 넣어버렸다. 1841년에는 대령을 구출하기 위해 코놀리 대위가 파견되었다. 그런데 영국이 부하라와 이웃인 히바 왕과 코칸드 왕과 함께 공모하여 부하라를 점령하려 한다고 의심한 칸은 대위도 감옥에 쳐 넣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영국이 1842년에 아프간에 패해 비참하게 철수하는 것을 보고 영국이 별거 아니라고 판단한 칸이 두 사람을 살해해버린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고 여론이 들끓었지만 영국 정부는 이 사건을 조용히 접을 수밖에 없었다. 달리 보복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영국은 1842년 1월 5일부터 13일 사이에 아프간 카불에서 카이버고개를 거쳐 폐샤와르로 철수하는 도중에 아프간 길자이 부족의 습격과 강추위로 군인과 그 가족(4,500명), 그리고 수행원(12,000명) 등 16,500명이 학살당했다. 근대 역사상 아프간을 침략한 열강 중에서 온전하게 살아서 돌아간 나라는 아직까지 하나도 없다. 19세기(1839년 ~ 1842년)에 영국이 그랬고, 20세기(1979년 12월 ~ 1990년 2월)에 구소련이 그랬고, 21세기(2001년 10월 ~ 현재)에 미국이 그랬다. 이 강대국들은 아프간 침공으로 모두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아프간은 열강의 무덤이다’라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이다. 영국은 이때부터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구소련은 해체되어 중앙아시아와 발틱해 연안 자치공화국들을 모두 잃었으며, 미국도 (베트남과 이라크 그리고) 아프간 침공의 대가로 엄청난 재정적자를 초래하여 서서히 쇠락해가고 있다.

바람이 강하고 비가 내려서 상당히 춥다. 사막지방에 비가 내리니 신기하다. 아침부터 추웠는데 더 추워졌다. 우산 파는 데가 없어서 비를 다 맞고 다녔다. 점심으로 호텔 부근에 있는 리아비하우스에서 양고기 갈비탕을 먹었다. 우리 나라 갈비탕의 소갈비 대신 양갈비를 넣었다고 보면 된다. 국물 맛도 정말 비슷했다. 추운데 뜨거운 국에 밥을 말아 먹었더니 좀 살 거 같다. 코리안다(고수)까지 넣어서 먹으니 더욱 맛이 좋다. 내가 사발을 하나 달라고 해서 한국식으로 탕에 밥을 말아먹었더니, 그 모습이 신기한지 매니저와 종업원들이 서로 쳐다보며 킥킥거린다. 어느덧 실크로드의 주식인 양고기에 아주 익숙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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