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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역사를 안고 사는 나라, 아르메니아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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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19  1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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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리를 내는 악기, 두둑

그루지야(조지아)에서 아르메니아로 넘어가는 버스에서 애잔하고 한이 담겨 있는 가락이 흘러나온다.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길목에 있는 코카서스산맥에 걸려 있는 작은 세 나라(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음악은 대개 슬프다. 아마도 수 천 년에 걸쳐 러시아, 터키, 이란 등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과 통치를 오랫동안 받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북쪽의 러시아와 남쪽의 터키와 이란 사이에 이 세 나라가 끼어 있다. 카스피 해와 흑해 사이의 기다란 길목에 자리 잡은 나라들이다. 그러니까 러시아든 터키나 이란이든 남쪽이나 북쪽으로 진출하려면 이 나라들을 먼저 정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라센제국이 그랬고, 오스만제국이 그랬고, 러시아가 그랬다. 열강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 신세와 비슷하다.

세계에서 가장 슬픈 소리를 낸다는 아르메니아의 피리, 두둑이 바로 이런 역사적 배경을 증명해준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주인공 막시무스 장군(러셀 크로 분)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아들인 코모누스(호아킨 피닉스 분)에게 처와 아이들이 무참하게 살해당한 장면을 고향에 와서 보고 망연자실할 때, 배경으로 흐르던 음악을 기억하시는지. 사람의 저 깊은 가슴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그런 서러움과 분노와 한과 슬픔과 고통이 어우러져서 나오는 인내의 소리가 바로 두둑이 내는 소리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수 천 년 동안 그런 압박과 통치를 받으면서 그걸 이겨내려고 만든 내면의 소리가 바로 두둑이 내는 소리이다. 불과 100여 년 전에도 아르메니아는 큰 시련을 몇 번이나 당했다. 19세기에 일어난 독립전쟁에서는 수 백만 명이 학살당했고, 1차 세계대전 직후에도 터키에 의해 150만 명 정도가 학살당했다. 이런 사람들의 음악이 어떨지는 짐작이 갈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도 한때 비슷한 고통을 많이 당해보았으니까.

두둑 음악이 흐르는 가르니 사원

에레반에 도착하여 정류장 앞에 있는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정했다. 택시를 4000 AMD(아르메니아 달러: 약 4만 원 정도)에 전세하여 가르니 사원과 게하르드수도원으로 갔다. 가르니 사원은 예레반에서 동쪽으로 약 20여 킬로쯤 떨어져 있고, 게하르드수도원은 가르니에서 동북쪽으로 10킬로쯤 더 가야 한다. 주위 경치가 그루지야에서 넘어오면서 보던 풍경과는 전혀 다르다. 정말 가을 색이 절정이다. 수도원과 사원보다도 주변 경치에 홀딱 반했다. 가르니 신전은 삼면이 절벽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는 아자트(Azat) 강이 흐르고 있다. 이렇게 천혜의 요새에 자리 잡아 과거에는 외부의 적들이 침공하기 어려웠을 거 같다. 그리스 태양신인 미트라에게 봉헌된 이 신전은 서기 1세기에 아르메니아 왕이었던 트르다트 1세(Trdat 1)가 지었다. 아르메니아가 기독교 국가가 된 다음에는 왕들의 여름 별장으로 이용되었다. 복원된 신전 외의 다른 유적들은 지금도 폐허로 여기저기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가르니 신전 정문을 들어서자 어떤 악기의 연주 소리가 온 정원에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 악기가 두둑임을 알아채고 안내원에게 어떤 악기냐고 물어보았다. 두둑 연주라고 하면서 선물가게에서 시디를 판매한다고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늦은 가을에 산중의 신전 정원에 두둑 음악이라.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뜻이 있으면 통한다더니 여기서 두둑 음악을 들을 줄이야.

신전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드디어 두둑과 연주 시디를 하나씩 샀다. 올 5월에 스톡홀름 악기박물관에서 두둑을 보러 갔다가 시간에 늦어 보지 못 했는데, 여기 선물가게에서 두둑을 팔고 있었다. 신전 정원에 흐르고 있던 두둑 연주 시디도 팔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에 영화 글레디에이터를 본 이후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영혼을 담고 있다는 두둑의 소리에 매료되어 있었다. 판매하는 아가씨가 부는 방법을 알려주어 몇 번 시도해보았는데, 여간 어렵지 않다. 전체 모양은 우리 피리와 비슷하데, 입이 오리 주둥이처럼 납작하게 생겼다. 이렇게 간단한 악기에서 어쩌면 그리 슬픈 소리가 날까? 아무튼, 연습해서 나중에 불어보리라 결심을 하고 신전을 나섰다.

천하절경 게르하르드 수도원
 
깊은 산 속 높은 바위산에 둘러싸인 게르하르드 수도원의 분위기는 절벽 앞에 자리 잡은 불교 사찰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설악산을 배경으로 산 중턱에 앉아 있는 봉정암이 연상될 정도로 멋진 경치였다. 게르니 신전에서 이 수도원에 이르는 길의 풍경이 절경이었다. 11월 초의 가을 색이 완연하다. 게르하르트 앞에서는 악사들이 두둑을 연주하고 있었고, 행상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여러 가지 선물을 팔고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 수도원은 예수를 죽일 때 옆구리를 찔렀던 창을 처음 보관했다고 해서 유명하다. 그 창은 지금은 에치나진에 있는 성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요르단의 페트라처럼 바위를 통째로 깎아 만든 수도원이 인상적이었다. 바위굴을 깎아 교회를 만든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앙심과 절벽에 석굴을 깎아 절을 만든 불교도들의 신앙심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흔적들이 중국에서부터 터키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고태규(경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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