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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화, 인물화 속의 역사 - 동양 편 1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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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15  22: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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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1: 동양화에는 왜 서양화 같은 형형색색의 채색화가 없을까요?
답 1: 있습니다. 첫 칼럼에서 말씀드렸던 일본의 우키요에는 대표적인 채색 판화입니다. 더불어 동양화에도 채색 수묵화가 있습니다.
문 2: 그렇다면, 동양에서는 왜 화선지에 먹으로 흑백의 그림을 주로 그렸을까요?
답 2: 유교 문화의 영향 때문입니다. 참고로 불교 문화가 지금까지도 융성한 일본에서는 채색화도 널리 그려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신토라는 토착 종교가 국교라고는 하지만 일본의 실질적인 국교는 불교입니다. 더불어서 불교 문화가 융성하게 꽃 피운 일본 역사에서 채색화는 대단히 광범위하게 그려졌습니다. 심지어는 금으로 칠해진 그림들도 다수 있으니까요.

반면, 유교 문화권인 중국과 한국에서는 먹과 붓에 채색을 조금 가미한 중국화와 한국화가 지배적인 그림으로 자리해왔습니다. 이에 따라 인물화 역시, 가급적 최소한의 색만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드는 궁금증 하나. 왜 유교 문화권에서는 색을 멀리하고 흑백이 주축을 이루는 수묵화를 고집했을까요? 정답은 유교라는 철학이 소비를 자제시키는 금욕주의적 사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종교는 아니더라도 종교에 버금가는 윤리 철학으로서 소박한 가운데 평생을 공부하며 모든 이들에게 예를 갖추고 어질게 행동하라는 가치관을 최고 선으로 삼은 것이 유교였습니다. 그리하여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불교 문화가 화려함을 자랑했던 반면, 유교 문화는 청렴한 예술을 낳았던 것이지요. 달리 말해 인간의 욕망을 억누르고자 했던 불교는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한껏 표출시켰고 입신양명(立身揚名)으로 대표되기에 마치 소비적인 철학으로 오해되기 쉬운 유교는 반대로 인간의 욕망을 계속 억누르려 했던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건축물과 그림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비록 조선 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사찰들은 대부분 산 속에 옮겨졌지만 건물 규모는 물론이거니와 기와에서부터 단청은 물론, 탱화에 이르기까지 그 화려함의 궁극을 보여주는 것이 불교입니다. 반면, 전국 주요 명소에 자리잡았던 서원은 단정한 가운데 투박할 정도로 단순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불상에도 금박을 입히고 부처님의 이마에는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은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 문화가 이렇듯 화려함을 추구한 이유는 부처님의 말씀이 온 세상을 찬란하게 수놓고 또 성불(成佛)해서 가게 되는 극락이 그토록 휘황찬란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미 극락에 해당하는 불당에 들어오는 순간, 백성들은 부처님의 화려한 세계에 감탄하며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지요. 

반면, 유교에서는 공자를 비롯해 그의 수제자로 역시 극빈하게 살다 요절한 안연 등 수많은 이들이 ‘일단사 일표음’(一簞食一瓢飮)의 검소함을 일생 동안 외쳤습니다. 참고로 ‘일단사 일표음’이란 논어의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말로 공깃밥 하나 물 한 모금을 의미하는 데, 공자가 자신의 애제자 안연을 칭찬하며 한 말입니다. 따라서 안빈낙도(安貧樂道: 가난한 가운데 도를 즐긴다)의 생활은 유가에 있어 최고 선에 다다르기 위한 필요 조건으로 여겨졌습니다. 더불어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림 역시 검소하게 펼쳐졌고요. 이에 따라 동양화, 아니 중국화와 한국화에서 나타난 인물들은 대부분 화선지 위에 먹으로 담백하고 싱그럽게 그려졌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비록 흑백의 그림이긴 하지만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인물화가 각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물화로서의 동양화가 각광을 받은 곳은 궁궐이었죠. 이유는 여럿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후궁들의 초상화 때문이었습니다. 황제가 후궁의 그림들을 보고 이 가운데 한 명을 골라 그날 밤 잠자리를 함께 하기 위한 목적에서였죠. 백제의 의자왕만 하더라도 삼천 궁녀들을 거느렸다는데 중국의 황제는 후궁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에 따라 중국에서의 인물화는 후궁들을 대상으로 주로 궁궐에서 많이 그려졌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웃지 못할 에피소드로 슬픈 운명을 맞이한 이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왕소군(王昭君)입니다. 중국 전한 시대의 원제 당시, 왕소군은 화공(畵工)에게 뇌물을 주며 자신을 예쁘게 그려달라는 후궁들 속에서 혼자 웃돈 주기를 거부합니다. 이에 화공은 왕소군을 추녀로 그려 버립니다. 때마침 한나라를 방문한 흉노족의 왕 선우가 중국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하고 싶다고 하자, 원제는 그림만 보고 왕소군을 선우에게 넘겨줍니다. 하지만, 당대의 미인이었고 품성 또한 단정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원제는 화공 모연수(毛延壽)를 참형해 처하지만 자신의 약속을 번복하지는 못합니다. 결국, 왕소군은 못생기게 그려진 초상화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타향 살이를 하다 이억만리 야만의 땅에서자신의 운명을 다하죠.

중국의 이와 같은 관습은 또한 펄 벅의 소설 ‘대지’에도 잘 나옵니다. 가난뱅이 농사꾼이었던 주인공 왕룽은 의화단의 난을 틈타 벼락 부자가 된 후, 최고급 요정에 놀러갔다가 거기에 걸려 있던 숱한 기녀들의 인물화 가운데 한 여인의 그림에 꽂히게 됩니다. 롄화라는 기녀죠. 결국, 그녀는 왕룽의 첩이 돼 조강지처였던 왕룰의 부인, 아란을 박대하고 왕룽의 재산을 흥청망청 씁니다.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샜습니다만, 원래 이야기는 그루보다 줄기, 줄기보다 가지가 재미있는 법입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한국의 인물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심훈 언론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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