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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화, 인물화 속의 역사 - 동양 편 1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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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22  21: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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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 천경자 미인도
   
▲ <그림 2>그라나다 두 자매
   
▲ <그림 3> 막은 내리고
 

그림 1 문제가 된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천경자는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폐병으로 여동생을 잃고 가세가 기울어 아버지도 돌아가시는 와중에 남편과 이혼하는 등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짊어져야만 했습니다. 이후, 화려한 색채를 지녔기에 그 한이 더욱 안쓰럽게 보이는 여인은 그녀의 그림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됩니다.

그림 2 세계 여행을 많이 다녔던 천경자는 해당 지역의 토속적인 풍경을 화폭에 가득 담았습니다. 사진은 1993년에 그린 ‘그라나다 두 자매’로 남미 여행 도중 니카라과의 그라나다에서 만난 두 자매를 그린 작품입니다. 참고로 덕수궁 옆에 있는 서울 시립 미술관에는 천경자 상시전시실이 마련돼 있어 언제든 무료로 천경자의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필자 역시, 10여년 전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해 그녀의 수작들을 마음껏 감상한 바 있습니다.

그림 3 올 7월 K옥션에서 8억6000만 원에 팔린 ‘막은 내리고’의 모습입니다. 국내에 실물로는 처음 공개된 이 작품은 천경자의 미인도 시리즈 가운데에서도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중국의 경우는 궁궐을 중심으로 후궁들의 인물화가 폭넓게 그려졌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요? 안타깝게도 궁궐에서 후궁들을 상대로 제작된 그림은 적어도 조선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작품이 없습니다. 아마, 후궁의 규모도 적었을 뿐 아니라 5백년에 걸친 지배적 통치 이념으로서의 유교가 중국에서보다 더욱 맹위를 떨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초 숙종 시대의 사람으로 조정을 뒤흔들었던 장희빈의 그림이 한 점도 남아있지 않은 사실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인터넷을 뒤져 보니 연산군이 사랑했던 장녹수란 여인의 그림은 있더군요. 하지만 조선 시대의 작품은 아니고 상상력을 동원해 현대에 그려진 것입니다.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장선환 화백의 작품으로 네이버 지식 백과에 게재돼 있습니다. 역시 살짝 색을 얹은 채색 수묵화이죠.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샜습니다만, 원래 이야기는 그루보다 줄기, 줄기보다 가지가 재미있는 법입니다. 그럼, 다시 인물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최근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언론을 통해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참고로 천경자 화백은 20세기의 한국 현대 미술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뿌린 미술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20세기 초반이 이중섭, 20세기 중반이 박수근의 시대였다면 20세기 후반은 단연 천경자의 시대였습니다. 

일찍이 도쿄 여자미술 전문학교에서 수학한 그녀는 한국 전쟁 당시 부산에서 개인전을 열며 세상에 그녀의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작품 ‘생태’라는 그림을 통해서였죠. 35마리의 푸른 뱀들이 서로 뭉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이후, ‘자살의 미’(1968), ‘꽃과 나비’(1973), ‘뉴욕 센트럴 파크’(1981), ‘두상’(1982) 등 기라성 같은 작품들을 발표한 그녀는 1990년 초, 미인도 사건으로 세간의 구설수에 오르게 됩니다.

사건의 정황은 이렇습니다. 먼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가 사형 당한 뒤 그의 재산이 국고로 환수됩니다. 이 때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그의 창고에서 나오고 지금의 문체부에 해당하는 문공부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에 귀속됩니다. 하지만 이 그림이 위작이라는 논란이 꾸준히 벌어지자 1991년, 천경자 화백이 직접 감정에 나섭니다. 당시 천경자 화백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라고 결론짓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음에 불거지기 시작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에 불복하고 한국화랑협회에 감정을 의뢰한 것이죠. 사실, 개인적으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한 상황에서 한국화랑협회에 감정을 의뢰한 국립현대미술관 측의 처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한국화랑협회는 2차에 걸친 감정 끝에 “진품”이라는 반대 결론을 내립니다.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고 말했음에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렇게 나오자 천경자 화백은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품으로 오도하는 화단 풍토에선 창작 행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을 남기곤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는 절필 선언을 합니다. 그녀는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직을 사퇴하고 자신의 작품 93점을 서울시립 미술관에 기증한 후, 영원히 한국을 떠납니다. 1998년도의 일입니다.

그리고 1년 뒤. 또 다른 반전이 발생합니다. 고서화 위조범 권춘식씨가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했다고 증언한 것이죠. 화랑 하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소액을 받고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다시 한국화랑협회에 감정을 의뢰합니다. 그리고 한국화랑협회에서는 국립과학수사 연구소에 의뢰해 진품 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여기에 반전 하나가 다시 발생합니다. 지난 11월 13일 종편채널, JTBC가 뉴스를 통해 보도한 내용입니다. 2015년의 국정 감사에서 미인도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노웅래 의원이 국과수에 감정 여부를 물어보자 “감정서를 작성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필자가 추정해 보는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먼저, 김재규가 위작을 삽니다. 투자는 “부동산으로 시작해서 그림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벌어서 졸부의 경지에 이르면 미술품에 투자를 한다는 것이죠. 감상도 하고 또 가만히 놓아두면 값이 뛰는 것이 미술품이다보니 당대의 유명 화가 그림을 투자 차원에서 사 두는 것이지요. 실제로 고가의 유명 미술품은 절대로 값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졸부와 거부들이 다른 부자들의 미술품을 탐내기 때문이지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재규는 그렇게 수많은 그림들을 싹쓸이 하며 사들이던 도중, 천경자의 위작을 구입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자신의 창작품들을 사진 찍고 카탈로그로 만드는 도록집도 내놓지 않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서양에선 필수적인 영수증도 없고 진품 증명서도 없었던 시대이지요. 독재 정권 아래에서 축재 및 탈세와 맞물려 당시에는 불법적인 거래가 암암리에 행해졌을 겁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부터 천경자의 말을 존중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위작을 진품인 줄 알고 지녔다는 것이 부끄러울까봐 한국화랑협회에 감정 여부를 맡긴 것이 더 큰 화근을 불러오고 맙니다. 결국, 원작자가 부정하는 작품을 제대로 감정할 능력이 없는 한국화랑협회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이름을 빌려 진품임을 판정받았다는 쪽으로 정리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권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이나 한국화랑협회 모두 자신들의 말을 뒤집기 힘든 상황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천경자 화백은 지난 2008년에 미국에서 타계한 것으로 밝혀졌고요. 

그럼, 다음 시간에는 초상화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인물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심훈  언론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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