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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보편적인 한국의 어머니상, 상징적으로 표출연극평 - 『어머니』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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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09.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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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마음 속으로 부르기만해도 코 끝이 찡한 우리들의 어머니가 한편의 연극 속에서 눈물과 웃음으로 흐드러진 꽃을 피워낸다. 화제의 연극 「어머니」는 지난 해 「문제적 인간-연산」으로 각종 연극상을 휩쓸고 우리 시대 최고의 연극인으로 우뚝 선 이윤택이 극본을 쓰고, 영화 「서편제」의 주역이자 연극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로 작년 현대연극상의 대상 및 연출상을 수상한 김명곤이 연출을 맡았다. 두 거장 예술가의 협동 사업을 더욱 탄탄하게 뒷받침한 사람은 올해로 개관 7주년을 맞이한 동숭아트센터의 김옥랑 대표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누구보다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포용하는 보편성을 지닌다. 첫 사랑의 아이를 잉태한 채 억지로 다른 남자와 결혼 할 수밖에 없었고, 징용에 끌려가 죽은 첫 사랑과 전쟁 통에 잃은 그의 아들을 평생 한으로 품고 살았던 어머니는 분명 특별한 어머니이다. 어쩌면 그녀에게 불륜과 부정의 올가미를 씌울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그것은 애초에 여자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과 불합리한 유교적 인습으로부터 초래된 불행이기에 오히려 동정의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녀는 게다가 바람기 많은 남편과 지독한 가난과 파란만장한 역사의 풍파를 ‘억척’과 ‘인내’로 이겨낸 한국의 모든 어머니상을 한몸에 다 끌어안아 표출한다. 많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시는 이유는 바로 무대 위의 ‘어머니’에게서 각자 자신의 어머니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의 어머니는 어찌보면 성격도 이중적이다. 한없이 강인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부끄럽고 수줍기만한 어머니이다. 젊은 날엔 무조건 희생하고 헌신하는 어머니이면서도 나이가 들면서 철없이 투정하고 변덕 부리는 괴팍스러운 어머니이다. 이러한 성격의 이중성은 곧 ‘어머니’가 되기 위해 ‘여성’을 숨기고 살았던 ‘모성’때문에 ‘자아’를 포기해야 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비극성이기도 하다.

  한편의 연극 안에서 극작가와 연츨가는 끊임없이 층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하고 부정적인 면모를 낳기도 한다. 이윤택은 매우 유별나고 극성스러웠던 자신의 어머니를 강하게 투영시키고 있는데 비해 김명곤은 자신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섬세하고 조용한 어머니상으로 이를 지긋이 눌러준다. 이는 바로 이 작품이 한 개인의 어머니가 아니라 보편적인 어머니, 사회 속의 어머니, 역사 속의 어머니로 확대되는 효과를 낳는다.

  처음으로 대극장 연출을 맡은 김명곤은 기대 이상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원작이 던져준 연출상의 가장 큰 난제는 어머니의 독백 부분과 그에 따라 유도되는 회상 장면을 극적으로 연결시키는 것과, 현실적 장면으로부터 회상 내지는 꿈의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공존시키거나 교차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일차적 해결점은 효과적인 무대 장치(박동우)에서 찾아진다. 기본적으로 개방된 무대는 아파트의 차가운 도시적 느낌과 과거 북방 시골에서의 따뜻한 정겨움을 동시에 표출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여기에 벽의 질감과 어머니가 앉아 있는 소파의 질감을 동일하게 처리함으로써 어머니가 퇴장하지 않아도 회상이나 꿈 장면에서 어머니의 현존이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무대 뒷편의 커다른 창은 헌실적으로 아파트의 베란다이면서 꿈의 공간에서는 망자가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초월적 공간으로 설정된다. 사실주의 연기 양식을 기본으로 깔면서도 상징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양식을 적절히 절충하여 현실과 환각의 공존을 매우 유연하게 허용한다. 그리고 이 두 세계를 효과적으로 매개해주는 중요한 오브세로서 호랑나비 가면과 고목나무의 활용이 탁월하다.

  처녀 시절의 ‘어머니'는 싱싱한 푸르름을 뽐내는 고목 나무에서 첫 남자 양산복과 가슴 떨리는 사랑를 나눈다. 이 고목 나무는 '어머니'가 양산복과 만나고 이별하는 모든 장면에서 나타나 그들 사랑의 심볼로 자리잡는다. 그리고 양산복이 사랑의 징표로 남겨준 호랑 나비 가면은 ‘어머니’가 신주 단지 속에서 그 오랜 세월을 컴컴하게 갇혀 있다가 어머니의 한풀이 과정에서 재등장하여 마지막에 손주에게 대물림되고 실어증에 빠져있던 손주의 말문을 틔워 놓는다. 첫 사랑과 죽은 아들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고 현재의 아들 내외가 베풀어 주는 망자굿에 의해 뼈 속 깊은 한을 풀어내는 장면은 관객들 모두에게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준다. 한을 씻은 후, 사랑하는 손주를 남겨두고 죽은 남편을 따라 저승 길로 떠나는 마지막 ‘어머니’의 모습은 오히려 홀가분하고 후련하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일평생을 희생했지만 결국 ‘혼자’떠나가야하는 죽음의 길은 절대 고독의 실존적 깨달음을 던지기도 한다.

  이 연극을 성공으로 이끈 데에는 ‘어머니’를 연기한 두 여배우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노년의 어머니를 맡은 나문회와 처녀 시절의 어머니로 분한 김민희는 연출이 요구한 캐릭터를 그 이상으로 융화하여 보여준다. 특히 아역 스타 ‘똑순이’로 기억되는 김민희는 어느덧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성장하여 이 작품에서 철부지 소녀로부터 현숙한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원숙한 무대 배우의 기량을 발휘한다. 미모가 많은 부분을 좌우하는 TV연기에 비해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연극 무대에서 두 여배우는 평범한 외모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 김미도(연극평론갇고려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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