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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 설립자 일송 선생 이야기 ① : 한림과 성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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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06  17: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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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일송 윤덕선 박사 자택 앞에서 윤덕선 박사 부부와 故 김수환 추기경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왼쪽에서부터 윤봉옥 여사, 김 추기경, 일송. 사진 일송기념사업회 제공

우리 대학의 설립자는 일송(一松) 윤덕선 선생이다. 우리는 공학관 앞에 세워진 그의 동상을 매번 지나가고 그의 호를 딴 ‘일송기념도서관’을 애용한다. 하지만 별 감흥이 없다. 사실 ‘설립자’란 얼마나 먼 존재인가. 그런데 과연 그렇게 멀기만 할까.

우리는 종종 사학 비리와 관련한 보도를 접한다. 그리고 몇 년 심지어 몇 십 년 동안 대학이 초토화되는 것을 본다. 잘 알듯이 사학 비리는 학교 재단의 문제이다. 경쟁이 치열한 요즘에는 대학 교육도 날로 어지러워진다. 어지러울수록 방향키가 중요한데, 방향키는 교육에 대한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같은 점들을 생각하면 재단의 성격이나 학교의 설립 이념 등이 학생 개인의 대학 생활에 암암리에 연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대학에서 그 같은 질문은 바로 일송에게 두어진다. 그는 무슨 생각에서 재단을 만들고 학교를 설립했을까. 어떻게 학교를 운영하고, 어떤 미래를 구상했을까. 앞으로 총 5회에 걸쳐 일송의 생애와 생각을 다루며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긍정적인 면모를 발견할수록, 평소 잘 느끼지는 못했지만, 우리 학교의 주춧돌을 실감할 것이다. 조금 더 파고들어 한국 현대사 속에서 그를 살핀다면, 우리 학교의 설립이 한국의 현대사에서 어떤 위치였는지도 새삼스럽게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사립대학에서는 찾을 수 없는 우리만의 자긍심이 되지 않을까.

오늘은 첫 회이다. 두 개의 키워드를 통해 일송의 삶을 정리해본다. 키워드 두 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 대학과 한림성심대학교의 교명인 ‘한림(翰林)’이 하나이고, 한림대학교 의료원에 속한 모든 병원에 들어 있는 ‘성심(聖心)’이 또 하나이다.

 

한림, 전인(全人)과 전문(專門)의 조화

일송은 식민지, 해방ㆍ분단ㆍ한국전쟁,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가 진행된 시대를 살았다. 사회의 격변만큼이나 우리의 일상, 문화, 가치관의 변화도 컸다. 그 변화를 일송의 삶에 대입해보자. 그는 의사였다. 한국에서 의학은 서양 문명의 힘과 우수함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학문 중의 하나였다. 그 점에서 보면 일송은 서양 문명, 근대의 세례를 받아 성장한 첫 세대라고 보아도 좋다. 그만큼 전통과의 단절이 커 보인다. 그런 그가 학교 이름으로 선뜻 ‘한림’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옛날 최고의 선비를 보통 ‘한림학사(翰林學士)’라고 불렀듯, 전통 용어인 한림은 일송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옛날 선비들의 학문 목적은 지금과 달랐다. 전문(專門), 즉 한 분야에 빠지는 일을 경계하고 당시 용어로 하면 군자(君子) 혹은 통유(通儒)를 지향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전인(全人) 교육을 중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빠른 근대화가 무조건 우선 순위였던 우리나라에서 전통의 부정은 자연스러웠고, 전인 교육도 사실상 말 뿐이었다. 일송이 굳이 한림을 택한 데에는 그 괴리를 메우자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일송은 학교 설립 초기부터 ‘4년 공부하는 동안 인생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졸업하는 교육’을 강조했다. 특히 교양 교육을 강조하며 ‘지식의 전달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슬기를 가르치자’고 했다. 전통과 근대의 장점을 두루 통합한, 아마 전인(全人)과 전문(專門)의 조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년에는 포부가 더 커졌다.

우리 인류의 역사는 20세기의 마지막 10년대로 접어들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 ‘제3의 물결’, ‘복지국가주의’ 등에서 예고되었듯, 종전과는 그 양상이 현저히 다른 새로운 가치, 새로운 질서, 새로운 사조로 그 문명의 방향을 전화(轉化)해 나가야 한다. … 우리 인류의 앞날에 빛이 되어 갈 길을 밝혀주고 길잡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학문뿐이다. 학문은 이제 한 차원 높은 새로운 탈바꿈으로 인류의 미래를 창조하는 원동력으로 제 구실을 다하여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다. (윤덕선, 1991)

일송의 도달점은 전통과 근대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학문, 가치,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25년 전에 쓴 이 글은 학문과 실용, 인문사회학과 과학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금을 겨냥한 듯하다. 과거를 발판으로 새로운 미래를 향하자는 그의 의지가 ‘한림’에 담겨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성심, 인간과 사회를 위한 병원 경영

일송의 삶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용어는 ‘성심(聖心)’이다. 성심은 가톨릭의 용어로 예수의 마음이자 사랑을 의미한다.

일송의 집안은 가톨릭이었고, 그 또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살았다. 교육에 처음 발 디딘 곳도 1956년 ‘성신대학 의학부’(현 가톨릭 의과대학)였다. 신앙인이었던 일송이 개인 차원에서 행한 자선이나 봉사는 일일이 소개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는 교육 기관이나 병원을 이끌면서도 사회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가톨릭 의대 시절의 무의촌 진료, 1970년대 독립한 후 자선병원 운영 및 장애인 후원, 1980년대 이후 열악한 환경의 빈민촌에 다수의 복지관 건립 등이 굵직한 사례이다. 영양ㆍ보건ㆍ위생과 관련한 많은 조사 연구, 예방 사업, 장학사업 등 보건ㆍ사회복지 사업도 일일이 손꼽기 힘들다.

물론 일송의 본업은 병원과 학교의 경영이었다. 그 점에서 그는 선배였던 장기려와는 달랐다.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린 장기려는 오로지 인술(仁術)의 시혜에 헌신하였다. 그에 비해 일송은 경영과 봉사라는 두 길을 병행했다. 일송과 같은 스타일은 이윤 추구와 사회 복지라는 두 가지 목적을 추구하는 요즘의 ‘사회적 기업’과 흡사하다.

경영과 봉사의 두 끈을 잘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일송이 평소에 무엇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관리’하려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자세는 아마 인간은 자연을 신에게 위임받았다는 겸손과 사랑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대학 병원에 모두 ‘성심’이 들어있고, 그래서 병원을 찾는 이들 가운데 가끔 가톨릭 병원으로 혼동하는 것은 정말 우연이 아니다. 사랑과 헌신의 자세로 사회를 위한 책임을 다했음은 우리 학교가 길러내는 인재상의 또 하나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 이경구(한림과학원ㆍ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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