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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설립자 일송 선생 이야기 ⑤ 미래를 위한 주춧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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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04  14: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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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3월 8일 거행된 한림대학 제1회 입학식.
   
▲ 학자들과 함께 중국에서. 가운데가 일송. 가장 왼쪽은 이기백 교수, 그 옆이 현승종 한림대학교 초대 총장.

대학 설립

1970년대 후반 병원이 날로 확장하자 일송은 교육 기관을 세우려했다. 처음에는 의과대학 설립을 검토했었다. 외과대학을 세워 ‘교육-연구-진료’의 선순환을 이루는 것이 그의 오랜 꿈이었다. 1970년대 말 일송은 인천에 땅까지 구입했으나, 1980년 초의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그 구상은 무산되었다.

일송은 종합대학 설립으로 방향을 돌렸다. 마침 춘천에 자리 잡은 성심여자대학(현 가톨릭대학교)이 경기도로 이전하려 했으므로, 일송은 그 부지를 매입했다. 성심여자대학이 가졌던 이미지와 학교 시설을 이어받고, 지리ㆍ환경ㆍ지역의 이점이 컸던 것이 선택의 배경이었다.

큰 그림이 타결되자 나머지 절차는 빠르게 진행됐다. 의료 법인은 1981년에 ‘학교법인 일송학원’이라는 학교 재단으로 재편됐다. 일송은 전통적으로 빼어난 지식인을 일컫는 ‘한림(翰林)’을 떠올리고 새 대학의 이름으로 지었다. 인재 양성의 최고 기관인 대학의 명칭으로 최상의 선택이었다.

1982년 3월 한림대학은 영어영문학과, 사회사업학과, 생물학과, 의예과의 4개 학과로 출발했다. 의예과와 생물학과는 병원과 의학 연구 및 교육을 연계한다는 의미가 있었고, 영어영문학과는 국제적인 인재를, 사회사업학과는 사회복지에 헌신하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한림대학의 설립은 우리나라 대학과 의학 역사에서도 특기할 만하다. 한림대학과 비슷한 시기에 개교한 대학으로는 포항공과대학교가 있었다. 포항공대의 설립이 이공계를 대표하였다면, 한림대학은 의대와 함께 인문ㆍ사회학을 중시하는 대학으로 주목받았다.

또 한림대학 설립을 전후해서 인제의과대학(현 인제대학교), 순천향의과대학(현 순천향대학교)이 개교했다. 한림대학을 비롯한 이들 대학들은 의사들이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에 설립하였다. 모두 해방 후 개인종합병원을 성공적으로 창설한 의료인들이 고등 교육의 장을 개척한 사례라 할 수 있었다.

학교의 발전

1982년 3월 일송은 한림대학의 출발을 자랑스럽게 지켜보았다. 신생 한림대학은 미비한 점도 많았지만 무한한 가능성 또한 지니고 있었다. 일송은 한림대학에 파격적으로 투자했다. 지원의 1차 대상은 학생과 교원이었다. 일송은 전교생의 30% 이상에게 장학 혜택을 베푸는 과감한 장학제도를 도입했다. 일부 학생에게는 생활 장학금도 지급했다. 기숙사ㆍ도서관 등 생활과 학습을 위한 시설에도 대폭 지원했다. 훌륭한 교육을 위해 교수 초빙에도 열의와 정성을 다했다. 교수의 증원과 지원이 워낙 파격이어서 총장 등이 오히려 걱정할 정도였다.

지원의 하이라이트는 도서 구입이었다. 이 예산에 대해서는 ‘무한정 투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파격적인 지원은 도서관을 대학의 중심으로 강조한 일송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6년에 건립된 일송기념도서관에 일송을 기리는 일송기념실이 갖추어진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일송, 교직원, 학생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한림대학은 1989년 3월에 종합대학교로 승격했다. 4개 학과로 출발한 대학은 4개의 단과대학 및 22개의 학과, 8개 대학원 학과로 규모가 확대됐다.

일송학원의 교육 사업은 한림대학교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일송학원은 1983년 3월에는 춘천간호전문대학(현 한림성심대학교)을 인수했다. 춘천간호전문대학은 1939년에 설립되어 주로 간호 인력을 양성해왔다. 일송학원에서 인수한 후에는 보건ㆍ의료 외에 컴퓨터 전산, 관광, 건설, 예체능 계열 등이 꾸준히 늘어났다.

한림의 주춧돌

1980년대 말, 이념이 지배하던 냉전이 끝났다.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디지털 환경이 도래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민주화가 일정 수준에 올랐고, 자본주의가 첨예화되는 현상도 가속됐다.

일송은 1989년에 명예이사장이 되어 일선에서 물러났다. 항상 새 영역에 도전했던 그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한 가치관과 비전을 모색하고자 했다. 일송은 1990년에 한림과학원을 설립하고, 학계의 석학들과 함께 다양한 학술 활동 및 학술 지원 사업을 전개했다. 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경륜을 정리하는 글도 왕성하게 저술했다. 특히 1992년부터 1년 3개월 동안 매일 일기를 썼다. 일기에서는 역사와 민족, 세계와 사회, 교육, 생명ㆍ인간ㆍ종교, 경영 철학, 인생에 대한 성찰, 자연과 일상에서의 사색, 늙음과 죽음에 대한 명상 등을 종횡으로 오갔다.

1996년 3월 6일 한림과학원에서 제81차 수요세미나를 마치고 일송은 부인 윤봉옥 여사 등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욕을 마치고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간다’는 평소의 다짐처럼 그의 마지막은 허허로웠다.

일송이 선종한 후에 그가 주춧돌을 놓은 사업들은 더 크고 굳건해졌다. 한림대학교는 2016년 현재 6개의 단과대학과 국제학부, 60여개의 연구소를 거느린 사학 명문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림성심대학교는 6개 계열에 26개 학과로 확대됐다. 2004년 12월에는 서울 강남구에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가 개교하여 5개 대학원과 다양한 부속기관을 지니고 고급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한림대학교의료원은 1999년에 경기도 안양시 평촌에 ‘한림대학교성심병원’을 개원했고, 2013년에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을 개원했다. 한림대학교의료원은 2016년 현재 6개 의료기관에 총 4,000개의 병상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의료기관이 되었다. 의료원은 일송의 유지(遺志)를 계승하여 환자 중심의 병원, 사회 복지 구현, 환경 친화적인 병원 문화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송의 꿈은 우리 대학과 병원의 모든 구성원을 통해 21세기에도 더욱 깊고 넓어져 한국 사회의 건강과 성숙에 기여하고 있다. 그 모든 일의 기초에는 일송이 주춧돌로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 이경구(한림과학원ㆍ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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