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오피니언
‘Be together, to get over.’국토대장정은 ‘청춘’에 걸맞은 도전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깨달아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8.26  19:36:1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김현식 총학생회 홍보국장 (디지털미디어콘텐츠· 4년)
   
 

지난달 8일, 6박 7일간의 국토대장정이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시작됐다. 속초, 인제, 양구를 거쳐 춘천에 도착하기까지 약 200km에 걸친 여정. 출발 전부터 많은 부담과 걱정이 있었다.

국토대장정(국토)을 떠나기 전에 국토 참여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내게 조언을 해줬다. 또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냐” “굳이 가야하겠느냐” 등의 걱정 어린 우려도 있었다. 평소 걷는 걸 좋아했지만 이런 말을 듣다보니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대학생활에 큰 추억 하나를 남기는 것과 동시에 군 전역 이후 나태해진 나를 다시 채찍질하기 위해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출발 날 아침 국토를 함께할 대원들이 단체복을 입은 채 색색의 가방을 매고 일송기념도서관 앞에 모였다. 70여 명의 학우들이 다 도착한 뒤 대대별로 모여 인사를 주고받고 대대기(旗)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총장님의 격려사를 듣고 버스에 타자 날씨부터 걱정이 됐다. 폭염주의보. 잡생각은 접어두고 ‘최대한 많이 쉬어 두자’는 생각으로 버스에서는 노래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눈을 감았다 뜨니 바다가 보였고 곧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점심식사 후 우리는 통일전망대를 둘러봤다. 뜨거운 햇볕에도 불구하고 전망대 꼭대기에는 우리를 반기듯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관람도 잠시 이제는 정말 국토를 시작해야 하기에 우리는 대열을 갖추고 국토의 첫 번째 걸음을 뗐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고성을 떠나다

첫날은 발대식과 고성으로의 이동 등의 이유로 많이 걷지 않았다. 송지호오토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첫날 일정을 마무리 지었는데 오랜만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게 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직 많이 걷지 않아 그런 건지 몸도 가볍고 기분도 좋았다. 밥차에서 식사를 받아 송지호 바로 옆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미처 인사를 나누지 못한 대원들을 알아가고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지며 국토의 첫 번째 밤이 지나갔다.

둘째 날 아침, 전날 손세탁해 널어둔 빨래가 하나도 마르지 않아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습한 해풍을 몰고 온 송지호가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새벽이슬로 축축해진 신발과 빨래들을 뒤로하고 서둘러 아침을 먹었다. 선선한 것도 잠시, 8시가 채 되기도 전에 해가 쨍쨍하게 떴다. 핸드폰을 보니 ‘폭염주의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폭염주의보를 활용했다. 배낭에 빨래를 걸고 걷다보니 금방 말랐다. 동해안을 따라 속초로 걸어 내려가는 여정이어서 첫날보다 긴 행군이었지만 바다가 그리는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취업특강을 들었다. 나는 올해가 학생 신분으로서의 마지막 해이기에 취업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어진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그동안 친해진 대대원들과의 팀워크를 선보였고 모두가 어울려 즐거운 두 번째 밤을 보냈다.

폭염 속 미시령을 넘다

셋째 날은 해발 826m 미시령을 넘는 날이다. 여전히 이어지는 ‘폭염주의보.’ 둘째 날부터 슬슬 뒤처지는 대원들이 생겼지만 미시령을 넘어야 했기에 다들 비장한 각오로 임했다. 더워서 숨이 턱턱 막혔지만 고개를 오를수록 나타나는 장관에 시선을 뺏기며 걸었다. 부족한 물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고 사기를 북돋우는 대원들의 모습에 서로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휴식과 행군을 반복하다보니 어느덧 정상에 이르렀다. 미시령 정상에서 대대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서로 ‘고생했다’는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에서 국토 대원 전체의 단결과 협동심을 느꼈다. 미시령 정상에서 독도 방향을 배경으로 준비한 ‘독도는 우리땅’ 플래시몹도 진행했는데 미시령을 오른 힘듦 따위도 잊고 68명 모두가 하나 되어 즐겁게 했다. 미시령을 내려와 인제시 원통에 도착했다. 이날 숙박은 내린천 옆에 위치한 캠핑장에서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물놀이를 하며 세 번째 날을 마무리 지었다.

단지 3일을 함께 자고 걷기만 했을 뿐인데 어느새 우리 대원들은 가족처럼 가까워져 있었다. 넷째 날이라 피곤할 법도 한데 전날 가장 큰 고비였던 미시령을 넘어서 그런지 우리 대원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물론 4일간 지속된 행군으로 인해 물집이 생긴 대원들도 많았고 뒤처지는 대원들도 속출했다. 그래도 우리 대원들은 노래를 틀고 함께 흥얼거리며 장난도 치고 서로 격려하면서 뒤처지는 대원들을 끝까지 챙기는 데 힘썼다. 오전 행군을 마치고는 너무 더워진 날씨 때문에 휴식시간을 가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발령되는 폭염주의보가 원망스러웠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농촌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오미자 밭에 자란 잡초를 제거하고 밭비닐을 씌우는 작업이었는데 대원들 모두 열심히 일손을 도와서인지 생각보다 빠르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일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먹는 수박은 꿀맛이었는데, 뒤이어 생각지도 못한 복불복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야외 취침과 야식을 걸고 진행되는 복불복이었다. 다들 힘들었지만 실내 숙박과 야식을 따내기 위해 치열하면서도 화기애애하게 게임에 참여했다. 제기차기, 이어그리기 같은 간단한 게임이었는데 이게 어찌나 재미있던지 다시 돌이켜도 즐거운 추억이다. 그렇게 복불복 게임 후 대대별로 피자와 치킨을 야식으로 먹으면서 우리의 네 번째 밤을 지나보냈다.

침묵행군, 생각은 깊어지고

다섯째 날 아침에는 이어지던 폭염주의보 대신 이슬비가 찾아왔다. 다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우비를 걸쳐 입고 행군에 나섰다. 계속되는 강행군에 대원들의 발은 물집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통증 때문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베이비파우더를 바른 뒤 다시 행군에 나서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대원들의 모습은 나에게 큰 동기부여가 됐다. 비를 흠뻑 맞을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장대비로 이어지지 않고 이슬비로 끝났다. 대원들은 우비를 벗고 운동화로 갈아 신고서는 걸음을 이어갔다. 오후에는 아주 특별한 행군을 했다. 바로 침묵 행군이다. 지도 교수님의 제안으로 시작된 침묵 행군. 다들 말없이 깊은 생각에 빠진 표정이었다. 나도 취업 등 졸업 이후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양구에 진입했다. 이제 곧 춘천. 행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쁜 한편 국토가 끝나간다는 생각, 대원들과 헤어질 생각에 아쉬웠다. 대원들과 깔깔거리며 라면을 먹으며 아쉬움을 달래며 그렇게 또 다섯 번째 밤을 기억에 담았다.

다시 돌아온 춘천

드디어 D-1. 여섯 번째 아침이 밝았다. 한걸음씩 대장정을 이어가는 대원들의 모습에는 활력이 넘쳤다. 힘들어하는 대원도 늘었지만 다들 포기하지 않고 행군을 이어갔고 며칠 동안 폭염주의보를 헤치며 걸은 덕분인지 햇살도 우리의 행군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춘천에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끝이 다가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이날 행군에서는 대원들의 얼굴에 힘듦 따위를 느낄 수 없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학생처장님과 교수평의회, 총동문회에서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 고기를 챙겨서 방문해주셨다. 덕분에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고기를 먹었다. 이어서 국토의 모든 일정을 담은 영상 상영과 대원들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영상을 보면서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신나게 웃었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촛불을 들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의 힘듦이 터져서인지 여기저기서 눈물을 보이는 대원도 있었다. 우는 동료 대원을 다독이는 대원들의 모습에는 협동심을 넘어 끈끈한 전우애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웃고 울고 떠들며 아쉬운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춘천으로 귀환하는 날. 금세 소양강이 보였고 하늘도 우리들의 귀환을 반기듯 매우 맑았다. 깨끗한 하늘과 소양강 바람에 이끌려 걷다보니 우리 대학 학생생활관 8관이 저 멀리서 아주 작게 눈에 들어왔다. 학교가 가까워지자 우리들의 발걸음은 더 가벼워졌다. 소양2교를 건너자 소양강 스카이워크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잠시 발길을 돌려 스카이워크에서 사진을 찍으며 대원들과 국토 마지막 날의 추억을 남겼다. 명동을 거쳐 정문에 가까워질수록 대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정문을 지나 학교에 들어서자 우리를 위해 스프링클러로 시원하게 해둔 아스팔트 바닥을 밟을 수 있었다. 첫날 모였던 도서관 앞 광장, 일주일 만에 돌아온 학교. 완주라는 정상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모두 함께 대학본부로 향하는 오르막을 뛰어 내달렸다. 대학본부 앞에서는 총장님이 마중을 나와 우리를 반겨주셨다. 학생복지관 앞에 도착한 우리는 모자를 던지며 완주 기념사진을 찍었고 68명 모두 총장님으로부터 ‘국토대장정 완주증’을 받았다. 정문을 오를 때의 벅참과 완주증을 받을 때의 성취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6박 7일간의 국토대장정을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끝마쳤다.

함께라는 의미를 마음에 새기다

각자 다른 사람들이 만나 하나 되어 고락을 함께하고 서로를 의지하던 국토대장정이 끝났다. 난 그 모든 여정이 바로 ‘함께’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약 200km의 구간을 걷는 동안 우리가 보낸 소소한 시간들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잠에서 덜 깨 초췌한 모습, 물집 가득한 발, 야식과 실내취침을 사수하기 위한 치열한 표정... 우리는 그런 민낯을 스스럼없이 보이며 가족애를 나눴다.

이런 경험은 앞으로 내가 수십 년을 더 살아도 얻지 못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겪어보니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냐”는 친구들의 말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 국토를 통해 신체적인 고됨과는 비할 수 없는 추억과 성취감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해. 국토대장정은 ‘Make A Difference’, 그 이름값을 하듯 내게 남들은 쉽게 얻지 못할 것들을 주었다. 나약함을 던지고 ‘청춘’에 걸맞은 도전을 하게 해주었으며 그 어떤 여행보다도 의미 있게 오래 기억될 기억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나로 하여금 ‘함께하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게 했다. 6박 7일 동안 기꺼이 나와 함께해준 대원들을, 우리의 순간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 김현식 총학생회 홍보국장 (디지털미디어콘텐츠 · 4년)

 

한림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후보자 정책 공청회, 올해도 아쉬움 남아
2
[보도] 잊지 말고 신청하자, 동계 계절학기 수강신청
3
[보도] 너의 관심사를 보여줘! ‘한림 덕후 파이터’ 대회
4
[보도] ‘한강전’ 추위도 날린 열정…종합우승은 놓쳐
5
[보도] 유학생ㆍ재학생 모두 함께한 김장봉사
6
[보도] 봉사와 함께한 1년 ‘우수봉사자 선발대회’ 열려
7
[선거특집] 쏟아진 256개 공약, 다양해진 선택지
8
[선거특집] 단과대 경선 토론회, 치열한 공방 이어져
9
[시사] 빈살만 방한…국내 기업과 ‘네옴시티’ 계약 체결
10
[시사] ‘화물연대’ ‘학비노조’ 등 노동계 잇단 총파업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혜수(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