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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와 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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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24  08: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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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영문과 개강 총회 후 뒤풀이 자리에서 학생들과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다.

학생 A: 교수님, 이번 학기에는 무슨 과목 강의하세요? 나: 음, 전공과목 둘 하고 교양으로 “인터넷 시대의 호머 읽기”를 가르쳐. 학생 A: 호머가 뭐예요? 나: 으엉, 호머를 몰라? 학생 B: 호머 심슨은 아는 데요.ㅎㅎ 나: 아니, 『일리아드』, 『오디세이』의 호머를 모른단 말이야? 학생 A: 그럼, 교수님은 티아라 아세요? 나: 그건 무슨 새로 나온 걸그룹이냐? 학생 A: 예. 나: 아니, 어떻게 호머를 그런 걸그룹하고 나란히 비교할 수가 있지?

그때의 당혹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 학생들도 당혹했을 것이다. 선생이 뭔가 대단하게 여기고 당연히 알 것이라 여기는 호머를 읽는 건 고사하고 들어본 적도 없었으니까. 호머를 모른다고 해서 학생들을 나무랄 일만도 아니라는 걸 안다. 그들이 거쳐 온 교육과정이나 몸담은 문화적 환경은 그들에게 호머를 읽거나 주목하라고 말해준 적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한데 호머와의 비교 대상으로 티아라가 언급되는 것에는 당혹감을 금할 수 없다. 단순히 세대 차이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가치 인식의 간극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내가 호머를 즐겨 읽는 것과 학생들이 티아라에 열광하는 것이 취향은 제각각이라는 차원에서 동치(同値)가 될 수 있을까? 십수 년 전에는 학생들과 노래방에 가는 기회가 가끔 있었다. 그 후 언젠가 그런 일은 딱 끊어지고 말았는데, 학생들과 나의 레퍼토리 사이에 겹치는 부분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경우는 감성과 취향의 차이라고 이해했고, 그 차이를 넘어 내가 그들의 노래를 배우거나 그들이 내 노래를 배우는 건 부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첨단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친숙한 학생들이 걸그룹 등 이런저런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은 이젠 일상의 대세가 된 것 같다. 문제는 그런 즐거움과는 다른 종류,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접하고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 혹은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그들에게 『일리아드』 같은 근 3천년 전의 고전을 읽으라고 하면 아마도 그들은 진저리를 칠는지도 모른다. 왜 생고생을 자초하냐고 반문하면서.

고전을 읽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우리가 몸담은 삶의 환경과 조건에 너무나 익숙해져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면 우리 삶의 바깥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테두리에 갇히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면 우리와 다르게 살았던 이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알 필요가 있다. 문학 또는 역사를 통한 과거(또는 미래)로의 여행은 오늘 여기의 우리 삶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고 또 반드시 이런 꼴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긴요하다. 요컨대 현재와는 다른 삶을 상상하고 꿈꿀 수 있게 해준다. 이 또한 꼰대의 회고 취향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숨이 막힐 것 같다. 

/김번(영어영문 ·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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