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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1  15: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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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의 ‘걷기 예찬’에 나오는 말이다. ‘능동적 형식의 명상’이란 말이 걷기의 본질을 참 기가 막히게 잘 포착한 말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 가을이다.

아침에 춘천역에서 내려 학교까지 걸어왔더니 ‘S헬스’라는 애플리케이션이 1만보 이상을 걸었다고 알려준다. 애플리케이션에서는 하루 6,000보 이상 걷는 것을 권하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걸은 셈이다. 걷는 시간은 이제 더 이상 아깝게 지출되는 시간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 데 보탬이 되는 귀중한 시간이 됐다.

길을 걸으며 갖는, 아직은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한 이 좋은 느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허약체질이었던 칸트가 80세까지 장수하며 독일 철학을 집대성했던 것도 걷는 시간 덕분이었다.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지역을 돌아 주민들이 그를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프랑스 혁명으로 감옥에 갇힌 루이 16세가 우연히 두 사람의 저작을 읽고 “나의 왕국을 쓰러뜨린 놈은 바로 이놈들”이라고 했다던 루소와 볼테르 중 루소도 걷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걸으면서 사회 불평등이란 것이 ‘운명’이 아니라 제도에 의한 것이고 인간의 이성으로 극복이 가능하다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생각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세기의 악성 베토벤이 악보와 몽당연필을 들고 걷다가 멈춰 악보를 그리다 다시 걷는 모습들을 바라봤다는 회고도 전해오고 있다. 결국 3세기를 지나도록 세계의 관심을 잃지 않은 철학과 음악의 영감이 걷기의 과정에서 생성됐음을 짐작하게 된다. 베토벤은 귀가 멀어 세상 속에 섞이지 못하게 됐을 때도 걷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니, 걷기는 소리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상실감을 잊게 하는 힘을 가진 것일까.

이 ‘능동적 형식의 명상’은 현대에 와서도 이어지고 있다. 페이스북의 설립자인 마크 저커버그와 트위터의 공동 창업자 잭 돌시는 산책회의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걷기 실천의 효능을 뒷받침해주는 과학 연구의 보고도 이어지고 있다. 1주일에 10~14km 정도의 걷기는 뇌의 기억 중추인 해마의 용량을 키워 뇌의 축소를 억제하고 인지기능 저하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명의 허준도 약보다 음식이 낫고 음식보다 걷는 게 낫다고 동의보감에서 밝히고 있다.

“숲이나 길, 혹은 오솔길에 몸을 맡기고 걷는다고 해서 무질서한 세상이 지워주는 의무들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숨을 가다듬고 자신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갈고 호기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걷기 예찬론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걷는 습관을 들이기 딱 좋은 시간이다. ‘걸음’을 예찬할 이유는 각자의 길에서 떠오를 것이다.

 /주영기(언론방송융합미디어 ·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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