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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同病相憐), 때로는 얼마나 위험한 감정인지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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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12  11: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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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고사성어는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의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백비를 믿었다가 그에게 모함을 당해 자살을 택했던 오자서의 일화가 소개돼있다. 이 일화를 통해 타인을 보는 시각을 가짐에 있어 같은 부분과 다른 부분을 면밀히 살피는 안목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의 ‘동병상련(同病相憐)’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감정, 즉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혼자서 힘들고 외롭게 삶을 꾸려온 사람, 청운의 꿈을 품고 이른 시기에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 자수성가한 사람, 사랑에 실패해 깊은 실연(失戀)의 상처로 쉽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 이처럼 인생에서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고난의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처지에 있는 타인에 대해 그저 무심하게 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에게는, 아주 극단적인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대체로는 남의 아픔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있는 능력이 있고 그 기저에는 자신의 과거, 신산(辛酸)했던 삶의 경험이 깔려 있다. ‘동병상련’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상한 감정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감정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고 때로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성어가 유래한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 춘추시대 정치가였던 오자서(伍子胥)는 본래 초(楚)나라 사람이었으나 아버지와 형이 역적의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 뒤 오(吳)나라로 망명했다. 그는 오나라 공자 광(光)을 만나 마침내 초나라에 대한 복수를 하게 된다. 이때 오자서를 공자 광에게 추천한 사람은 관상을 잘 보는 피리(被離)라는 사람이었다. 피리는 오자서가 거지 행세를 하며 오나라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 오자서가 천하 영웅임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공자 광은 결국 오자서의 도움으로 오나라의 왕이 되었으니, 그가 바로 춘추오패(春秋五霸) 중 한 사람인 합려(闔閭)이다. 합려는 즉위한 뒤 곧 오자서를 불러 행인(行人-외무 대신급)으로 삼고 함께 나랏일을 도모했다.

그즈음 초나라에서 백주리(伯州犁)의 손자 백비(伯嚭)가 오나라로 망명했다. 백주리도 오자서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비무기(費無忌)란 간신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에, 백비는 몸을 의탁하기 위해 오자서를 찾아온 것이다. 오자서는 자신과 같이 비무기 때문에 망명해 온 백비를 동정하여 그를 합려에게 천거했고, 합려는 그를 대부로 임명했다.

이때 오나라 대부 피리가 한가한 틈을 타서 오자서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백비를 보자마자 믿으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오자서가 대답한다. “나의 원한이 백비와 같기 때문이오. 그대는 ‘하상가(河上歌)’를 들어보지 못했소? ‘같은 병을 앓는 이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같은 근심 있는 이는 서로를 구해주네. 놀라 나는 새는 서로 따라 날고, 여울 아래 물은 흩어졌다가 다시 함께 모여 흐른다네[同病相憐, 同憂相救. 驚翔之鳥, 相隨而飛. 瀨下之水, 因復俱流]’. 호마(胡馬)는 북쪽 바람을 향해 서고, 월나라 제비는 햇빛을 찾아 노는 법이오. 누군들 육친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누군들 그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며 슬퍼하지 않겠소?” “그대는 그의 겉만 보고 말씀하신 것이니, 아마도 저의 의심을 풀어줄 다른 뜻이 있으시겠지요?” “아니, 나는 그 이상은 보지 못했소.” 피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그의 사람됨을 보니, 그의 눈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범을 닮아서 공을 독차지하고 사람을 마구 죽일 성격입니다. 가까이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오자서는 피리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백비를 끝까지 후원해 태재(太宰) 벼슬에까지 오르게 했다. 백비는 그 뒤 적국인 월(越)나라로부터 뇌물을 받고 충신 오자서를 모함해 자살하게 만들었다. 오자서와 백비의 이야기는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과 조엽(趙曄)이 지은 「오월춘추(吳越春秋)」 「합려내전(闔閭內傳)」 등에 기록돼 있다.

오자서는 강철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오로지 아버지와 형의 복수만을 위해 온갖 고초를 다 이겨내고 오나라로 망명했다. 사마천은 「오자서열전」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극찬한다. “원한이 맺힌 사람이 끼치는 해독은 정녕 무섭구나! 임금이라도 신하에게 원한을 사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끼리야 어떠하겠는가? 일찍이 오자서가 아버지 오사(伍奢)를 따라 함께 죽었다면, 하찮은 땅강아지나 개미와 무슨 차이가 있었겠는가? 그는 작은 의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어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겼으니, 그 뜻이 참으로 비장하다! 오자서가 장강에서 오도가도 못 하는 위급한 상황에 놓이고, 또 길에서 빌어먹을 때도 어찌 초나라의 수도 영(郢)을 잠깐인들 잊었겠는가? 그는 모든 고초를 참고 견뎌내어 공명을 이룰 수 있었다. 강인한 대장부가 아니면 어느 누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오자서의 형 오상(伍尙)은 간신 비무기의 모함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그것이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아버지 오사가 있는 서울로 갔다. 오자서의 생각은 달랐다. 아버지와 함께 죽을 바에야 차라리 외국으로 망명해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다. 형 오상은 오자서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알았지만, 망명해서 혹 원수를 갚지 못하면 아버지를 버린 아들이라는 세상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함정인 줄 알면서도 비무기의 계략에 빠진 평왕(平王)의 무도한 명을 받들어 서울로 갔고, 그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사마천이 ‘작은 의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었다’고 한 것은 오자서의 이 같은 결단과 실행을 가리켜 한 말이다.

그는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의 고국 초나라를 떠나 오나라로 갔다. 노잣돈이 없어 인가가 나오면 밥을 빌어먹어야 했고, 산으로 들어서면 냇물을 마시고 풀뿌리를 씹어야 했다. 굶주림 때문에 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기도 여러 번. 그의 고생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는 마침내 오왕 합려의 신하가 되어 초나라를 공격하였고, 평왕에 대한 복수를 감행한다. 그때는 이미 평왕이 죽은 후였으므로 그는 평왕의 무덤을 찾았다. 오자서는 무덤을 파헤치고 평왕의 시체에 철장(鐵杖) 삼백 대를 치는 것으로 분을 풀었다. 이른바 ‘굴묘편시(掘墓鞭屍)’이다.

이렇듯 그는 철저하고 강인한 성품의 소유자였지만 한편으로는 동정심 많고 따뜻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오나라로 넘어온 백비가 오로지 의탁할 곳이 없어 그를 찾아왔을 때, 그는 같은 초나라 사람이라는 것과 비무기에 의해 가족이 살해당한 아픈 과거를 공유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조건 없이 받아들였고, 합려에게 천거하여 벼슬자리도 주었으니 말이다. 관상을 잘 보았던 피리의 말을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면 백비에게 배신을 당해 자결을 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비를 본 그의 안목과 판단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근거한 것이었다. 타인을 보는 시각에는 크게 두 가지 극단적인 관점이 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것과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다”라는 판단이 그렇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공존한다. 어떤 부분이 같고 어떤 부분이 다른지 면밀하게 살피는 안목이 필요하다. 특히 그 같고 다름이 본질적인 것인지 비본질적인 것인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오자서와 백비는 같은 아픔을 겪었다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으나, 두 사람의 성향은 완전히 달랐다. 오자서는 오로지 의리를 위해 자신을 던졌지만, 백비는 사리사욕만을 앞세워 악행과 배신도 마다 않는 비열한 인간이었다. 꼭 피리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버린 오자서의 오판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강지희( 교양기초교육대학 ·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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