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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장님이 된 사내의 이야기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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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03  11: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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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다섯 소년 ‘미하엘’이 서른여섯의 ‘한나’를 만난다. 그러자 사랑의 폭풍이 소년을 휘감고는 단숨에 딴 세계로 이주시켜버린다. 왜냐하면 얼마 후 소년은 이렇게 토로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그 밖의 다른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사랑 행위에 몰입했다.” 이로써 소년은 눈이 멀고, 한나는 그의 종교가 된다. 사랑과 종교는 그것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이 무가치해지는 맹목의 사태를 초래하는 법이다. 사랑은 세계의 한곳만을 응시함으로써 나머지 세계를 지워버리는 선택적 장님이 되는 사태이니 말이다.

불행하게도, 소년의 황홀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한나가 별안간 그의 곁을 떠나기 때문이다. 이로써 소년의 충만한 시절은 종언을 고한다. 연인의 증발은 곧 세계의 상실일 테니까. 여기까지 보면 이 소설은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구현하는 진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성숙한 여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에게 사랑과 성을 전수하고 그 임무가 완료되자 소년의 곁을 미련 없이 떠나주는, 그리하여 홀로 남은 소년은 자신을 떠난 연인의 심오한 뜻을 미루어 짐작하고 비로소 자신에게 어울리는 또래 여성을 찾아 떠난다는, 남성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성적 입문기의 모범답안 말이다. 물론 저 환상적 의례란 따지고 보면 성과 여성에 대한 남성의 공포를 감추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통속물의 외투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전쟁과 나치라는 시대적 문맥을 괄호 치더라도 이유는 제법 된다. 그 가운데 하나는 바로 독서. 문맹이었던 한나는 자신의 사랑을 대가로 소년에게 책을 읽어줄 것을 요구한다. 물론 소년은 한나의 치부를 알 리 없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매번 이런 식이다. 소년은 학교가 파하면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샤워를 하고, 사랑을 나눈다. 그런 연후 그들은 한동안 침대에 머물다 오늘의 반복일 내일을 고대하며 헤어진다. 소년은 한나에게 『오디세이』와 『노인과 바다』 등 생소한 이야기의 세계를 들려주고, 그녀는 자신의 몸을 기꺼이 소년이 읽어내야 할 책으로 제공한다. 한나에게 소년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기대에 차 들춰보게 되는 신간 서적이라면, 소년에게 한나는 거듭해서 읽어내야만 할 고전이 된다.

이쯤에서 그들의 결별 연유를 짚어야 한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수영장에 한나가 나타났을 때, 소년이 그녀를 모른 척했다는 점이다. 흡사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초라한 부모를 외면하는 자식처럼 말이다. 해서 이들의 실연에는 소년의 부인 및 그에 따른 죄의식과 수치가 잠복해 있고, 이 정념이 소년을 첫사랑에 영원히 묶어놓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하엘은 장성해서도 사랑에 연이어 실패할 뿐 아니라 어떠한 여인에게도 머물지 못하며 심지어는 자식과 가정에도 안주하지 못했으니까. 십대에서 단 한 뼘도 자랄 수 없었으니 첫사랑은 그에게 축복이자 재앙일 터이다. 다른 하나는 한나가 누구에게도 밝히기를 꺼렸던 문맹의 수치다. 어느 날 직장 상사가 그녀에게 사무직으로 승진시켜주겠다 제안한다. 하지만 그녀는 새 업무가 자신의 문맹을 들통나게 할까 두려워 또 다른 직장(유대인 수용소의 경비병)을 구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그녀는 소년을 떠나고 진실을 회피한 대가가 얼마나 끔찍한 사태를 불러올지 미처 몰랐으리라. 결과적으로 한나는 무지가 역사 및 운명의 비정에 합류하는 유구한 비극 무대의 거주민이 된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덧 전쟁이 끝났다. 법대생 미하엘은 우연히 나치 전범 재판과정을 참관하게 되고 거기서 다시금 한나를 조우하게 된다. 괴물이 된 소년의 첫사랑. 무릇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보게 되는 첫사랑이란 그 자체로 괴물일 수도 있다. 그러니 무참히 변해버린 현실의 존재보다 기억 속의 첫사랑을 택하는 심사란 결국 괴물을 조우하지 않으려는 나르시스트의 것이기도 하다.

법정에서 미하엘은 문맹을 감추기 위해 자신이 주도하지 않은 부당한 혐의까지 뒤집어쓴 한나를 위해 증언하지 않는다. 대신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그녀에게 책을 녹음해 보낸다. 그렇게 또다시 십수 년의 시간이 흐르고 한나는 가석방을 앞두고 있다. 미하엘은 한나의 석방 일주일 전, 교도소 소장의 요청에 응해 한나를 방문한다. 소년은 중년이 됐고, 여인은 어느덧 노년의 초입에 들어섰다. 한나가 중년의 미하엘에게 말한다. “꼬마야, 너 무척 컸구나.” 그렇다면 미하엘은? 그는 그녀에게서 ‘노파의 냄새’를 맡을 따름이었다. 한나는 중년에게서 소년의 모습을 여전히 보았다. 반면 미하엘은 믿기 힘들 정도로 변해버린 그녀의 실상에 주목했다. 이 차이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여자는 연인의 현재의 모습에서 과거를 읽어내고, 남자는 연인의 변화된 현재에 압도된 나머지 그녀의 과거를 읽어낼 능력이 없다. 그는 이전과 동일한 장님은 아니었으나 여전히 눈이 멀어 있다. 결국 석방 하루 전 한나는 교도소에서 목을 맨다. 시신을 본 미하엘은 비로소 과거의 그녀(‘아름다움과 우아함’)를 발견하고, “왜 나는 일주일 전에 이러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인가” 자책한다. 깨달음은 항시 뒤늦게 찾아오는 법. 더욱이 한나의 죽음이 존재 갱신의 증거이기도 했으니 미하엘의 깨달음은 한층 통절할 수밖에.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나치 만행에 침묵하고 동조했던 다수의 독일인을 ‘잔혹한 짐승들 주위에 있던 불구의 무리’라 칭한 바 있다. 명령에 따랐다는, 달리 어찌할 수 없었다는 게 그 불구자들의 천편일률적 항변이었다. 아렌트의 말처럼, 그들의 변명이 소름끼치는 건 진부함 때문이다. 미하엘은 “주어진 과업에 무지비한 성실성”으로 임했던 연인 한나를 “나의 세대의 운명이고 독일의 운명”으로 수리했다. 미하엘이 경험했던 ‘변명과 성실성’은 서글프게도, 하수상한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대면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 창 범(교양기초교육대ㆍ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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