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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호환(虎患)보다 무서운 학정(虐政)의 공포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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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1  13: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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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고사성어는 『예기(禮記)』『단궁(檀弓)』에 실려 있는 일화로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을 가진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이다. 탐관오리들이 득세한 지옥 같은 세상에 사느니 차라리 호환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깊은 산속에서 살겠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과연, 현재는 그때의 상황보다 나아졌다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가렴주구(苛斂誅求)’라는 말이 있다. 가혹하게 거두고 죽일 듯이 위협하면서 요구한다는 뜻인데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의 수탈 행위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행태로 인해 고통 받는 백성들의 공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성어이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는 뜻이다. 왜 잔인하고 혹독한 정치를 하필 호랑이와 비교했는지 궁금해진다. 이 이야기는 『예기(禮記)』『단궁(檀弓)』 하편에 실려 있다.

공자(孔子)가 태산(泰山) 곁을 지나가는데, 한 부인이 무덤 앞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가 수레 앞의 가로대나무를 잡은 채 우는 소리를 듣고는, 자로(子路)를 시켜서 그 까닭을 물었다. “부인께서 곡하는 것이 한결같이 거듭된 근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인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예전에 나의 시아버지께서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고, 남편이 또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으며, 이번에는 아들이 또 물려서 죽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어째서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습니까?” 부인이 말했다. “여기에는 가혹한 정치가 없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얘들아,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나운 것이다.”

한문 원문으로는 네다섯 줄에 불과한 이야기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가며 행간을 유추해 보면 이 여인이 살고 있던 당대의 정치가 백성들에게 어느 정도의 공포를 심어주고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첫 문장부터 천천히 따라가 보자.

공자가 태산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태산은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산이다. 공자가 태어난 곳이 산동성 곡부(曲阜)이므로, 태산은 그의 고향 근처에 있는 산인 것이다. 공자는 수레를 타고서 제자들과 함께 그 곁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부인이 무덤 앞에서 울고 있다. 원문은 ‘유부인곡어묘자이애(有婦人哭於墓者而哀)’라고 돼 있다. 순서대로 직역하면 ‘어떤 부인이 무덤에서 곡하고 있었는데, 그 울음이 슬펐다’라는 뜻이다. 슬프지 않은 울음이 있는가? 있다. 슬프지 않을 때도 곡을 해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집안의 어르신이 돌아가셨는데 만일 백 세 가까운 나이로 천수(天壽)를 다 누리고 돌아가셨다면 우리는 그런 상(喪)을 ‘호상(好喪)’이라 부른다. 상주가 곡은 하지만 그것이 한 맺힌 울음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공자가 듣기에 부인의 곡하는 소리는 특별히 ‘슬프다’라고 느낄 만큼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애통함이 있었다.

공자는 수레 앞의 가로대나무를 잡고서 그 소리를 들었다. 원문은 ‘부자식이청지(夫子式而聽之)’이다. 이때 ‘부자’는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공부자(孔夫子)’ 즉 ‘공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공자를 높여 부른 말이다. ‘식(式)’은 ‘식(軾)’과 통하는데 자전을 찾아보면 ‘수레 앞 가로대나무’라고 나온다. 수레 앞쪽에 있는 일종의 손잡이이다. 여기서는 ‘式’이 동사로 쓰여 그 가로대나무를 잡았다는 의미이다. 그 가로대나무는, 수레에 탄 사람이 선 상태에서 두 손으로 잡게 되면 약간 허리를 굽힐 정도의 위치에 있다. 가로대나무를 잡음으로써 허리를 굽히게 되고, 상대방에게 예를 표하는 형식이 되는 것이다. 여인의 모습을 보고 공자는 안타까운 마음에, 가로대나무 손잡이를 잡아 예를 표하는 자세를 하고서 그 울음을 들었다. 그리고 제자인 자로를 시켜 그 사연을 묻게 했다.

‘한결같이 거듭된 근심이 있는 듯합니다[壹似重有憂者]’라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울음이 한결같이 슬픈데, 마치 어떤 애통한 사건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자 여인이 대답한다. 알고 보니 예전에 이 부인의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고, 그 남편도 똑같이 호랑이에 의해 죽었으며, 오늘은 아들까지 그렇게 죽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연이어 3대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인이 엎드려 울고 있는 이 무덤은 아들의 무덤이리라.

자로를 시켜 사연을 물었던 공자는 수레에서 내려 직접 여인에게 묻는다. 그는 정말 궁금했다. “왜 이 곳을 떠나지 않습니까?” 연이어 3대가 죽을 정도면 그 부인이 사는 곳은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생각해 보면 호랑이는 사람이 많은 곳에 살지 않는다. 인적이 드문 곳, 인가가 없는 곳, 그곳은 깊은 산속이다. 그녀가 가족들과 살았던 집은 깊은 산속,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그런 곳에 있었던 것이다. 언제 호랑이를 만나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곳이다. 그렇다면 그 위험을 피해서 진즉에 이사를 갔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텐데, 왜 이사를 가지 않았는지 공자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자 여인의 한 마디. “가혹한 정사가 없습니다.[無苛政]” 공자는 충격을 받았다. 호랑이가 나오지 않을 만큼 안전한 곳, 그곳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관청이 있고, 백성을 다스리는 수령이 있고, 수령을 돕는 아전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정치가 가혹하다는 것이다. 왜 이 깊은 산속, 호랑이가 출몰하는 곳까지 쫓겨 왔는가. ‘가렴주구’하는 탐관오리들을 피해서, 몸은 좀 힘들고 호환(虎患 호랑이로 인한 근심)의 공포가 상존하고 있지만, 그래도 살기에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 가족은 마을로 내려가지 않았다. “거봐라, 얘들아!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법이야!” 제자들을 향한 공자의 일성(一聲)이다.

‘호환(虎患)’은 지금으로 치면 불의의 교통사고다. 교통사고를 예측할 수 없듯이, 산길을 가다 운 나쁘게 호랑이를 만나 물려죽는 사고 또한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사고의 빈도가 높은 위험지역이라면 그곳에서 살지 않는 것이 옳다. 그런데 여길 떠나면 다시 탐관오리들이 득세하는 지옥 같은 세상으로 가야 한다. 탐욕스럽고 더러운 관리들의 세금 독촉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닥쳐오는 예고된 공포이다. 흉년이 들고 식구도 많아 조세를 낼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협박은 계속된다. 으름장을 놓고 매질을 하고, 돈이 될 만한 물건을 강제로 빼앗거나 사람을 끌고 가기도 한다. 그런 공포 속에서 사느니 차라리 호환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깊은 산속에서 살겠다고 이 부인의 가족은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시 『애절양(哀絶陽 )』이 떠오른다. 군정(軍政)의 문란으로 인해 갓 태어난 사내아이를 군보(軍保)에 올리고, 죽은 사람에게까지도 군포(軍布)를 징수하던 지방관들의 횡포가 자행되던 시절. 학정을 견딜 수 없었던 한 남자가 자신의 생식기를 자른 사건이 있었다.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당한다”며 그는 절규했다. 사내아이를 낳는 것이 더 이상 축복이 될 수 없는 잔인한 시대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졌는가? 무급인턴을 채용하고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대표들, ‘시간 꺾기’로 알바생들의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사업주, 그리고 이 모든 부당하고 불법적인 노동착취를 암묵적으로 용인해 주는 관료들. “아빠, 콜수를 못 채웠어”라며 죽을 만큼 힘들었던 직장을 벗어나기 위해 저수지에 몸을 던진 어느 현장 실습 여고생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강지희(교양기초교육대 ·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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