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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기망양(多岐亡羊), 참된 학문과 진리의 기본 조건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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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8  10: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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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고사성어는 ‘갈림길이 많은 곳에서 양을 잃어버렸다’는 뜻을 가진 ‘다기망양(多岐亡羊)’이다. 『열자(列子)』 「설부(說符)」에 실려 있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웃집 양 한 마리가 없어진 사건을 통해 깊은 철학적 고민에 이른 양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떤 학문이나 이념, 종교로 비참한 결과에 이른다면 그것이 정말 참된 학문인지 생각해보자.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 가운데 ‘결정 장애’, ‘선택 장애’라는 말이 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고를 때, 물건을 살 때, 진로를 정할 때 등등 우리는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에 늘 맞닥뜨린다. 그때마다 가성비를 따져야 하고, 혹 이것을 선택하고 저것을 선택하지 않아 손해 보는 비용까지 계산해서 면밀하게 살핀 다음 가까스로 하나를 택한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고민은 더 깊어진다. 그 선택해야 하는 대상이 먹고 마시고 쓰면 없어지는 소비재일 경우엔 ‘이번 기회에 경험해 보자’ 하고 가볍게 접근해도 큰 문제가 없지만, 만일 진로를 결정하고 결혼 상대를 정하고 직업을 정하는 등의 중대한 일이라면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런 일들은 한번 실행되고 나면, 혹 잘못된 결정이라 하더라도 되돌리기에는 너무 과정이 복잡하거나 큰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문 탐구와 진리 추구 같은, 어찌 보면 삶의 방향을 정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어떠한가? 이에 대해 2,400여 년 전 심각하게 고민을 한 중국의 철학자가 있으니 바로 양주(楊朱)이다. ‘다기망양(多岐亡羊)’은 ‘갈림길이 많은 곳에서 양을 잃어버렸다’는 뜻으로, 양주가 고민했던 ‘선택의 문제’를 잘 보여주는 고사가 담겨 있다. 『열자(列子)』 「설부(說符)」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좀 길지만 한번 읽어보자.

양자(楊子)의 이웃 사람이 자기의 양을 잃어버려, 그 집 사람들을 동원한 후 또 양자네 하인까지 빌려주길 청하고는 양을 찾아 나섰다. 양자가 말했다. “어허! 한 마리의 양을 잃었는데 어찌 찾아 나서는 사람은 이렇게 많소?” 이웃 사람이 대답했다.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가 돌아오자 양을 찾았느냐고 물으니 대답하길, “잃어버렸습니다”라고 했다. “어째서 잃어버렸다는 거요?”, “갈림길에는 또 갈림길이 있더군요. 저로서도 갈 바를 몰라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양자는 근심스러운 듯 안색이 변해서 한참 동안 말도 하지 않았고 하루 종일 웃지도 않았다. 그의 제자들이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그에게 물었다. “양은 천한 짐승이고 또 선생님의 것도 아닌데 말씀과 웃음을 잃고 계시니 어째서입니까?” 양자가 대답을 하지 않아 문인들은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제자인 맹손양(孟孫陽)이 나와서 그 이야기를 심도자(心都子)에게 일러줬다. 심도자는 며칠 뒤 맹손양과 함께 들어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옛날에 삼형제가 있었는데 제(齊)나라와 노(魯)나라 지방을 노닐면서 같은 스승을 모시고 공부해 인(仁)과 의(義)의 가르침을 따라 행동하게 된 다음에야 돌아왔다 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인과 의의 길이란 어떤 것이냐고 물으니까, 맏형은 ‘인과 의란 우리가 자신을 사랑한 다음에야 명성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둘째는 ‘인과 의란 우리가 자기 몸을 죽여서라도 명성을 이루도록 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막내는 ‘인과 의란 우리가 자기 몸과 명성을 아울러 온전히 지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의 세 가지 방법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지만 똑같이 유가(儒家)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 것입니까?”

양자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 황하 가에 살면서 물에 익숙해지고 물에서 움직이는 일에 용감해지자, 배에다 사람을 실어서 물을 건네주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그는 백 명의 식구를 먹여 살릴 만큼 이익을 얻었다. 그러다보니 양식을 싸 짊어지고 배우러 오는 자들이 무리를 이루었는데, 물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거의 반이나 됐다. 본래 그들은 물에서 일하는 법을 배우려던 것이지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배우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익을 얻고 해를 당한 것이 이와 같았다. 그대는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잘못 됐다고 생각하는가?”

심도자는 말없이 나와 버렸다. 맹손양이 그를 꾸짖었다. “어찌 그렇게 당신의 질문도 비현실적이고 선생님의 답변도 괴팍하오? 나는 더 헷갈리기만 합니다.”

심도자가 말했다. “큰 길은 갈림길이 많아서 양을 잃게 됐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방법이 많아서 목숨까지도 잃게 되는 것이오. 학문이란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며, 근본은 하나일 뿐인데 학문을 하는 결과의 차이는 이와 같지요. 오직 결과가 같아서 동일한 곳으로 돌아가야지만 얻고 잃는 것이 없게 되는 법입니다. 당신은 선생님 밑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익혔으면서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슬픈 일이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양자’의 ‘자(子)’는 ‘선생님’ 정도의 뜻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양자’는 ‘양주’를 높여서 부른 말이다. 양주는 이웃집 양 한 마리 없어진 사건을 통해 깊은 철학적 고민에 이르렀다. 양주가 갑자기 말도 안 하고 웃지도 않고 우울한 얼굴로 하루 종일 있게 된 까닭은 제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단지 양을 못 찾아서가 아니었다. 갈림길이 너무 많아 결국 양을 찾지 못한 것처럼, 학문도 하다보면 갈림길을 많이 만나게 된다. 같은 근본에서 시작해도 그 말단(末端)에 이르면 결과가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벌어지는 것을 우리는 종종 목도한다. ‘이단(異端 끝이 다름)’과 ‘사이비(似而非 비슷하지만 진짜가 아님)’도 그래서 나온 말이다. 심도자가 한 질문과 양주의 대답은 마치 불교의 선문답(禪問答) 같지만 사실 진리 탐구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적시하고 있다.

질문에 나오는 삼형제가 제나라와 노나라 지방에서 스승을 모셨다는 것은 그들이 공자의 가르침을 따랐다는 뜻이다. 공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인(仁)’과 ‘의(義)’였다. 굳이 지금의 말로 풀자면 ‘인간에 대한 사랑’과 ‘사회적 정의’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수준까지 인과 의를 실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삼형제의 대답은 각기 다르다. 내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아니면 내 몸을 우선한 다음에, 아니면 둘 다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상태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은데, 양주가 비유를 들어 설명한 것이 마음에 와 닿는다. 황하 가에 살았던 사람은 이미 물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사람들을 배에 싣고 물을 건네주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장사가 잘 됐는지 백 명의 식구를 먹여 살릴 만큼 이익을 얻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익만 보고서 이 일을 배우러 달려든 사람들이었다. 평소 물에 익숙하지도 않은데 그 일을 배우려니, 배우던 중에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반이나 됐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보았다고 해서 그 일이 꼭 나에게 맞으라는 법이 없다. 그 일을 할 만한 환경과 자질을 얼마나 갖추었느냐가 중요하고, 무엇보다 목숨을 담보하면서까지 그 일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심도자는 양주의 대답을 듣고 이것을 학문에 적용해 설명한다. 학문은 결국 ‘진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대에서는 이념이나 종교 등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분명 숭고한 측면이 있다. 또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는 유명한 말도 있다. 그런데 어떤 학문이나 이념, 종교로 인해 자유를 얻거나 살신성인을 이루기는커녕, 돌이킬 수 없는 비참한 결과에 이른다면? 크게는 자신의 목숨을 잃거나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 일, 작게는 인간관계가 깨지고 가정이 파탄 나는 그런 결과 말이다. 이럴 때는 그것이 정말 최종의 궁극적인 진리인가, 참된 학문인가 깊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강지희(교양기초교육대 ·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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