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는 쓸쓸하다. 타의에 의해 고향과 가족, 삶의 터전을 떠나 갇힌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유배인(流配人)은 고통스럽다. 더구나 유배지가, 너무나 아름답고 이국적이기까지 한 곳이라면, 유배 생활은 그 풍광만큼이나 더욱 쓸쓸하다. 그래서 유배지에서 창작된 시는 때로는 독자를 울리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제 소개하고자 하는 김정(金淨)의 한시 역시 한국 유배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김정(1486-1521)은 호가 충암(冲庵)으로 조선조 중종 때 주로 활동했던 문인이다. 그가 우리 역사에서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1519년 발생한 기묘사화 때문이다. 그는 조광조와 더불어 사림을 대표하는 인물로 지목돼 충청도 금산과 전라도 진도를 거쳐 제주도에 유배됐다. 이 시기 시들은 그의 인생 최후의 작품들로 그가 얼마나 뛰어난 시적 재주를 가진 시인이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다음 작품을 보자.

海國恒陰翳  바닷가는 언제나 음산하고
荒村盡日風  황량한 마을엔 종일토록 바람이 분다
知春花自發  봄을 아는지 꽃은 절로 피고
入夜月臨空  밤이 되면 달은 허공에 떠오르네
鄕思千山外  저 멀리 고향 생각
殘生絶島中  남은 생을 외딴 섬에서 마치겠구나
蒼天應有定  하늘이 운수를 정해 놓았으니
何用哭途窮  길이 막혔다 울어본들 무엇하리요

인용시는 김정이 서울에서 유배를 떠나 제주도로 가기 직전 진도에 머물렀을 때의 작품이다. 바닷가 특유의 해풍과 소금기 등으로 인해 어촌은 언제나 음산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유배지의 봄날 밤에 시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인용시의 5-6구를 보면, 처음에는 저 바다 너머에 있는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은 점차 자기의 처지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앞날의 운명으로 옮겨간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은 것 같지 않고, 멀리 떨어진 이 절해의 고도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것 같다. 하지만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이 정해 놓은 운수인 것. ‘길이 막혔다 울어본들 무엇하겠는가?’ 참으로 쓸쓸하고 서럽다.

22살에 장원 급제해 환로에 오른 뒤, 34살의 젊은 나이에 형조판서 벼슬을 했던 조선 최고의 촉망받던 엘리트 청년이 기묘사화의 덫에 걸려 봄날의 꽃처럼 덧없이 사라지게 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에게는 정치를 개혁하고, 인민을 행복하고 잘 살게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 꿈을 미처 펼쳐보지도 못했는데,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지금 울고 있다. 그리고 그의 울음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를 울게 하고 있다.

/하정승(교양기초교육대 ·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