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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박명(佳人薄命), 절세미녀였던 그녀들의 운명은 …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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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1  1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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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고사성어는 미녀를 묘사하는 말인 ‘경국지색(傾國之色)’, ‘미인박명(美人薄命)’, ‘침어낙안(沈魚落雁)’, ‘낙안미녀(落雁美女)’이다. 이러한 뜻의 고사성어는 어디에서 유래됐는지, 절세미녀였던 그녀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녀들의 운명이 어떠했는지 알아보자.

 

미녀를 묘사하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 경국지색(傾國之色), 단순호치(丹脣皓齒), 명모호치(明眸皓齒), 침어낙안(沈魚落雁) 등이 그것이다. 이 중 ‘단순호치’는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라는 뜻이고, ‘명모호치’는 ‘또렷한 눈동자에 하얀 치아’라는 뜻이다. 둘 다 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묘사한 말이다. 붉은 입술이나 선명한 눈동자, 하얀 치아는 지금도 여성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논할 때 필수적인 요소이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미적 기준은 크게 바뀌지 않은 모양이다.

‘경국지색’은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의 미인이라는 뜻으로, 한 무제(漢武帝) 때 협률도위(協律都尉)로 있던 이연년(李延年)이 지은 시에 처음 나온다. “북쪽에 어여쁜 사람이 있어/세상에서 빼어나 홀로 서 있네/한 번 돌아보면 남의 성을 기울이고/두 번 돌아보면 남의 나라를 기울인다/어찌 경성과 경국을 모르랴만/어여쁜 사람은 다시 얻기 어려운 법” 미인 때문에 성이 기울고 나라가 기운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수없이 증명됐지만, 그래도 미인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연년은 왜 이런 시를 지었을까? 음악적 재능이 풍부했던 그에게는 절세미인이었던 누이가 하나 있었다. 그는 누이동생의 아름다움을 칭찬해 무제 앞에서 이 시를 노래로 불렀다. 당시 한 무제의 정처였던 위 황후(衛皇后)는 이미 쉰 살이 넘어 황제의 총애를 받기에 부족했다. 이연년의 이 노래를 듣고 무제는 그런 여인이 과연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불려 나온 누이동생이 어여쁜 손을 놀리며 멋지게 춤을 추었다. 결국 이연년의 누이동생은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애첩이 됐으니, 바로 ‘이부인(李夫人)’이라 불리는 여인이다.

그런데 ‘미인박명(美人薄命)’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한 말일까. 황자 한 명을 낳은 뒤 그녀는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무제가 그녀의 임종을 보러 갔을 때, 이부인은 자신이 낳은 황자와 친정 형제들을 잘 돌봐줄 것을 여러 차례 부탁했다. 그러나 무제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고 끝내 자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단장하지 않은 얼굴로 황제를 뵙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하면서. 황제는 마음이 상한 채로 병실을 떠났고, 이부인의 자매들은 그녀를 책망했다. 잠시 얼굴을 보여주고 자신들의 일을 잘 부탁해주기를 그들은 원했던 것이다. 부인이 말했다.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내가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폐하께서 알고 계신 내 모습은 아름답던 예전의 나예요. 그런데 이런 추한 얼굴을 보인다면, 필시 질겁해서 내 친정 식구들을 보살펴주시지 않을 게 분명해요.”

그녀의 예감은 맞았다. 부인이 죽고 난 뒤, 무제는 그녀의 오빠인 이연년을 악부(樂部)의 장관인 협률도위로 임명하고, 또 한 명의 오빠인 이광리(李廣利)를 이사장군(貳師將軍)으로 삼았다. 죽은 이부인에 대한 무제의 그리움은 나날이 커져갔다. 어떤 도사(道士)가 그녀의 혼령을 불러낼 수 있다고 하자 무제는 제물을 차려 놓고 그 의식을 행하게 했다. 혼령이 나타났을 때 황제는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보고자 했으나, 도사가 황제의 접근을 금했으므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무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노래를 읊었다. “부인인가, 아닌가? 내 우두커니 그대를 바라보니/ 어이해 이다지도 하늘하늘 더디게 오시는가.” 뿐만 아니라 생전의 이 부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직접 한 편의 부(賦)를 짓기도 했다. 마치 이제 막 피어난 탐스러운 꽃 한 송이가 바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그 모습. 쓰러질 듯 기둥에 기댄 채로 나를 바라보던 그 요염한 눈빛은 얼마나 매력적이었던가. 젊고 아름다웠던 그녀가 이렇게 갑자기 떠나가다니. 왜 마지막 그 병상에서는 그렇게도 박정하게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았는지. 사후에도 오래도록 황제의 그리움 속에 존재했던 이부인은 나름 행복했던 삶을 살았던 것 아닌가.

‘침어낙안(沈魚落雁)’이라는 말도 있다. 물고기를 물에 가라앉히고 날아가는 기러기를 떨어뜨릴 정도의 미녀라는 뜻이다. ‘침어미녀’는 춘추시대 월(越)나라 미녀 서시(西施)를 가리킨다. 그녀는 빨래하는 모습이 특히 아름다웠다고 한다.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던 월왕(越王) 구천(句踐)에게 발탁됐을 만큼 빨래하는 자태가 무척 매혹적이었나 보다. 그녀는 그 길로 왕의 수레를 함께 타고 궁으로 들어가 왕의 애첩이 됐다. 그런데 서시가 빨래를 하기 위해 물가에 서면 물고기들이 그녀의 모습을 보려고 몰려들었다가, 그 미모에 넋을 잃고 헤엄치는 것을 잊어서 물속에 가라앉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그녀를 ‘물고기를 가라앉히는 미녀’라고 부른다.

‘낙안미녀(落雁美女)’는 한 원제(漢元帝)의 후궁이었던 왕소군(王昭君)을 이른다. 그녀는 어쩌다 날아가는 기러기를 떨어뜨렸을까. 원제에게는 후궁이 너무 많아서 그들을 다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화공(畫工)을 시켜 후궁들의 모습을 그리게 하고, 그 그림들을 보고 후궁을 불러다 동침하곤 했다. 이때 화공은 모연수(毛延壽)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궁인들은 모두 화공에게 뇌물을 주고 그림을 잘 그려줄 것을 청하였다. 많게는 십만 냥을 바치기도 하고, 아무리 적어도 오만 냥을 밑돌지는 않았다. 그런데 왕소군만은 뇌물을 바치지 않았고, 이에 모연수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녀와 전혀 닮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 놓았다. 때문에 왕소군은 황제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북방에 사는 흉노족(匈奴族)의 추장인 선우(單于)가 입조(入朝)해 한나라의 미녀로 흉노의 왕비를 삼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 당시 북방의 흉노는 자주 한나라를 공격해서 황제로서는 그들과의 분쟁을 되도록 줄이는 데에 힘쓰고 있었다. 한나라 여인을 흉노의 왕비로 삼으려는 것은 화친정책의 일환이었다. 한 원제는 궁인들의 화첩을 살펴보고 왕소군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흉노로 떠나는 날 소군을 불러다 보았는데, 그 외모가 후궁 중에 가장 뛰어났다. 그녀와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행동거지가 무척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황제는 후회했지만 이미 정해진 일이라 번복할 수가 없었다. 분노한 원제는 이 사건의 전말을 추궁했고, 모연수의 자백을 받은 후 그의 목을 베어 거리에 매달았다.

마침내 왕소군은 흉노 선우와 나란히 말을 타고 호지(胡地 오랑캐 땅)로 향했다. 그녀가 애호하는 악기인 비파를 가슴에 안고서. 이때 북쪽으로 날아가던 기러기들이 이들의 행렬을 보게 됐는데, 왕소군의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날갯짓하는 것을 잊는 바람에 다 추락사했다는 이야기가 역시 전설처럼 전해진다.

왕소군은 흉노로 갈 때 많은 선물들을 가져갔다. 그녀는 흉노의 백성들을 아끼며 화목하게 지냈고 천 짜는 기술과 옷 만드는 기술, 그리고 농업기술들을 가르쳐줘서 흉노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왕소군은 아들 하나, 딸 둘을 낳았는데, 자식들 또한 한나라와 흉노 간의 우의를 위해 힘을 쏟았다. 왕소군은 중국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공적을 쌓은 미인이다. 왕소군이 흉노로 시집간 다음부터 흉노와 한나라는 서로 화목하게 지내면서 왕래가 많아졌고, 60여 년 동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도 매년 봄이 되면 그녀의 무덤 ‘청총(靑塚)’이 있는 내몽고에서 그녀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虯)는 ‘오랑캐 땅이라 화초가 없으니(胡地無花草)/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春來不似春)’라고 그녀의 심정을 노래했다. 과연 그녀의 운명은 기구했다고 우리가 단정할 수 있을까.

/강지희(기초교육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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